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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22)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24 2021 11:18 AM
9. 디에고는 가고
여덟 시간의 진통 끝에 드디어 수아는 남자 아기를 출산했다.
오랜만에 집안에 아기 울음소리가 있자 아버지는 종일 ‘허허..’ 웃으셨고 어머니는 마치 한 번도 아기를 키워본 적 없는 듯 ‘이안이 배가 고픈가 보다.’ 라며 위층을 올려다보며 애를 태우셨다. 아기는 기저귀가 젖어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아기가 정말 배가 고파 울어도 수아는 퉁퉁 불은 가슴을 하고도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으니 동동거리는 사람은 브라이언이었다.
‘아빠노릇, 쉽지 않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브라이언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브라이언의 아들 이안, 아직은 먹고 잠만 자는 아기를 나는 어서 업어주고 싶어 속으로 안달했다. 페루의 고향에서는 엄마들이 아기를 업어 키우고 기억은 못하지만 나도 엄마 등에 업혀서 자랐을 것이다.
집안에 새 생명이 태어났고 햇빛은 풍성하고 비도 알맞았던 여름이었다. 부지런한 인부들의 손길과 날씨까지 좋았으니 포도는 오달지게 여물어가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에 테이블에 오를 포도를 수확했다. 단맛이 제대로 든 포도를 따 와인용이 아닌, 과일로 먹기 위해서였다.
작황이 좋아 농장마다 주인들도 인부들도 흡족해 했다. 첫 손자를 얻으신 아버지는 인부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면서 연주자들을 불러 음악에 와인을 곁들였다. 그들의 손에서 자라고 수확된 포도로 빚은 와인이었다.
신명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내 눈에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맛나게 먹고 마시고 음악이 있으면 춤도 출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디에고도 그들 속에 있었다.
지난번에 갑자기 브라이언과 언쟁 아닌 언쟁을 했을 때, 농장 일은 이 해가 마지막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 말은 곧 이번에 가면 농장 일로 다시 올 일은 없다는 의미였고 우리 집 관리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제 겨우 사람을 알아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디에고를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아직은 사람들 속에서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데 벌써 서운했다.
그렇게 여름도 다 가고 이제 시월 중순을 넘기면서 인부들은 자메이카나 멕시코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그들은 겨울의 끝자락 즈음인 내년 2-3월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없는 겨울엔 이곳에 거주하는 인부들이 주변의 그린 하우스에서 겨우내 자라는 식물들을 돌보고 아이스와인 용 포도를 수확하기도 한다.
기온이 내려가면 잔디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동네에서는 잔디 깎기 기계소리가 멈추는데 오늘은 디에고가 올 해 마지막으로, 그리고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잔디를 깎는 날이었다.
창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니 다시는 없을 우리 집에서의 잔디 깎는 일인지라 디에고가 더 정성을 쏟아 구석구석 손질을 하는 것 같았다. 디에고가 잔디를 깎는 동안 나는 추리 하우스에 올랐다. 나또한 날씨가 더 추워지면 추리 하우스를 비워야 해서 아쉬운 마음에 삼뽀냐를 챙겼다. 긴 겨울 동안 찾는 이 없을 추리 하우스는 늙은 오크나무 품에서 깊은 동면에 들 것이다. 내가 연주한 삼뽀냐 음률과 브라이언과 내가 남긴 수많은 대화를 품고, 또 만날 봄을 기대하며 그렇게 길고 깊은 겨울잠에 들 것이다.
내게 추리 하우스는 가끔 몰래 뚜껑을 열어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형형색색의 추억이 깃든 보물 상자다. 상자의 뚜껑을 열면 짙푸른 티티카카 호수 면을 차고 오르는 물새가 있고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와 뚜르차를 잡아 집으로 오던 해거름의 아버지와 삼뽀냐를 불던 마리오 오빠가 있다. 어떤 날 상자엔 뜨개질하던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책을 읽던 브라이언이 있고 뜨개질 하면서 브라이언의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던 내가 있다. 사다리를 두고도 나무를 타고 오르던 브라이언과 나, 어머니가 구우신 쿠키가 담긴 쟁반, 희고 긴 손으로 아닌 척 하며 날 만지던 이미 변성기를 맞은 브라이언, 악몽에 시달리다 유괴의 기억을 털어놓던 브라이언과 어설프던 내 위로의 순간이 있고, 삼뽀냐를 불던 내 뒤에서 날 안고 가만히 있던 브라이언이 있다.
내 보물 상자가 품은 브라이언과의 추억은 돌이켜보니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일로 어머니가 사다리에서 떨어지셨고, 어머니가 평소엔 은근히 경계하시던 브라이언과 나 사이를 남매란 분명한 언어로 경계선을 강조하시자 말씀을 거부할 수 없던 나 때문에 브라이언이 코리아로 떠났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어깨를 감싸 안던 손길과 내 목덜미에 묻힌 브라이언의 숨결, 그리고 심장박동까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추리 하우스란 보물 상자는 시각 뿐 아니라 청각까지 일깨워 들려준다. 내가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입양 이전의 삶과 일곱 살에 시작된 입양 후의 삶의 소리다. 상자 뚜껑을 열면 티티카카 호수와 함께 ‘예쁜 우리 마마니!’ 라고 부르던 살았을 때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마니, 나와서 이 고기 좀 봐!’ 하고 뚜르차를 잡아들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 심지어는 ‘아랫입술 끝에다 관을 걸치고 혀끝에 얹힌 공기를 날리듯 뱉어낼 때처럼 관에다 숨을 불어넣어야 해.’ 라며 삼뽀냐를 불어보이던 마리오 오빠의 목소리까지 들려준다. 마리오 오빠는, ‘칠 할의 숨은 날아가고 남은 삼 할이 관을 치며 소리를 불러. 날아간 칠 할의 소리를 부르는 그리움의 소리야.’라고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생각했다, 삼뽀냐는 티티카카 호수의 갈대숲에 이는 서걱대는 바람소리를 부르고 때로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고독한 악기라고.
머나먼 페루를 그리워하며 삼뽀냐를 불던 곳, 브라이언과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곳, 브라이언과 내가 가장 많이 얘기를 나눈 곳, 브라이언과 내가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던 곳, 그래서 추리 하우스는 내 마음의 눈과 귀로 보고 듣게 하는, 보물 상자다.
유괴의 기억으로 지하실을 두려워 한 브라이언을 위해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나와 브라이언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이제 브라이언 곁에 수아가 있고 아기 이안이 있으니 브라이언은 찾을 일도 찾을 겨를도 없다. 그러나 그 많은 추억과 그리움을 품은 보물 상자, 내 몸과 마음을 키워 지금의 나 이도록 한 추리 하우스로의 발걸음을 나는 그만두지 못한다.
디에고가 마지막으로 잔디를 깎을 때 그래서 나는 길고 깊은 겨울잠을 잘 추리 하우스에 올라 삼뽀냐를 불며 이제는 아이 아빠가 된 브라이언과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소음이 사라진 걸 보니 디에고가 잔디 깎기를 다 마친 것 같았다.
그런데 추리 하우스에서 내려와 휘 둘러보아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기계를 창고에 들이고 있을 것이었다. 창고속의 여러 장비는 우리 식구보다 디에고가 더 잘 알아서 때마다 필요에 따라 전기톱이나 긴 전정가위, 그리고 잔디 깎기 기계(Ride On Lawn Mower)를 다루었다.
디에고가 있어 남정네들이 주로 감당하는 집안의 일은 우리식구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디에고가 지난 번 브라이언과 언쟁하고 있었을 때 말했었다, 올 해로 마지막이라고. 늘 그 자리에 있으려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참으로 아쉽고 쓸쓸할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아버지가 서운해 하실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신실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복이라고 브라이언에게 말하셨을 정도로 아버지는 그를 믿으셨다.
자주 대화를 나눈 적도 없으면서 디에고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그와 나의 비슷한 빛깔의 피부, 생김새, 그러니까 아무리 동화되었다고는 해도 절대로 브라이언처럼은 될 수는 없는 그 외양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내가 고향을 떠나와 사는 입장 때문일 것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부모님은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브라이언은 아기 이안을 무릎에 안은 채 책을 보고 있었다. 수아와 내가 준비한 차를 즐기려던 즈음에 초인종이 울렸다. 티브이에 가 있거나 책에 가 있던 눈길이 ‘누구야, 이 시간에?’ 하며 서로 쳐다보았다. 나는 디에고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디에고.”
문을 연 브라이언 앞에 소국 다발을 든 디에고가 서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 실례합니다.”
잠시 멈칫하던 디에고가 실내로 들어오며 손에 든 소국 다발을 가까이에 선 내게 건네기에 ‘고마워요.’ 하면서 받아들었다.
“디에고씨에게 차 한 잔 대접할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말하기 전에 나는 이미 찻잔을 준비했다. 차를 준비하며 어쩌면 디에고가 이별의 인사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서는 이듬해에 꼭 다시 오기를 몇 년 째 되풀이 한 그가 무슨 본업이 있기에 이제 농장 일은 마지막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진중한 그가 농장 일은 끝이라고 했으니 내년에는 볼 수 없겠다, 생각하며 또 서운해 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마음에다 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었다. 디에고는 자신이 보여준 만큼의 흔적을 우리 모두의 마음에다 남길 것이었다.
“이제 또 잘 마무리 하고 갈 날이 다가오네요?”
어머니가 예사롭고 다정한 대화를 시작하니, ‘수고했네, 디에고.’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몇 년 간 좋은 경험했습니다.”
“아니,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말하는 군요?”
어머니가 말하셨다.
“실은 올해로 농장 일을 그만 두려고요.”
“그만두다니, 왜?”
아버지가 소파에 기대고 있던 허리를 벌떡 세우셨다.
“이제 돌아가면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덕분에 유익할 경험을 했어요.”
디에고가 공손히 말을 하자 참지 못한 브라이언이 말했다, ‘그 본업이란 것이 도대체 뭐요?’ 하고.
디에고가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한 번 씩 웃었다.
“실은 제가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많은 멕시칸들이 캐나다로 와 일을 하는 현장을 작품으로 구상하면서 농장 일을 계획하게 되었죠. 농장 일을 알아야 했거든요.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길어졌고요.”
“자네, 작가란 말인가?”
“예.”
디에고가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우리가 몰랐네, 작가였구나!”
어머니가 작가에게 너무 험한 일을 시켰다는 송구한 표정을 지으셨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고요. 농장주와 인부들과의 관계, 다른 문화끼리 만나 어떻게 서로 도우며 사는지, 그리고 멀리 남의 나라에서 온 인부들은 이 땅에서 어떤 대우와 어떤 환경 속에서 일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경험한 것을 토대로 완성한 초고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다듬으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그만두게 되었고요.”
디에고가 조근 조근 말했다. 디에고는 말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었다.
“자네가 사람을 놀라게 하네, 그려.”
아버지 뿐 아니라 식구 모두가 감탄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경험이 필요한 나이라 어르신들 속에서 일하며 배운 것이 많아요.”
“여러 번 놀라게 하네요, 디에고.”
브라이언이 말했다.
“아, 지난번에는 내가 무례했어요, 브라이언. 그리고 애나씨에게도 고맙다는 말 하고 싶었어요.”
디에고의 무례란 표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일 있었기에? 하는 표정으로 브라이언을 바라보았지만 브라이언과 디에고는 웃기만 했다.
“두 분 어르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절 믿고 집안 일 다 맡겨 주셔서요. 베풀어주신 것 작품 속에서 다시 감사드리려고요.”
“가만있자, 우리가 섭섭하게 한 적 없던가?”
아버지가 농을 하자 모두 웃었다.
“그래, 어떤 종류의 글을 쓰는가, 디에고?”
어머니가 작품의 구체적인 장르를 물으셨다.
“소설을 쓰고 있어요. 농장에서 일 하는 세계에도 사랑이 있고 이별이 있죠. 가족을 두고 남의 나라에서 한 해의 절반을 일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있고 기다림의 희망과 배반도 있고요. 그 작업을 위해 일하며 돈도 벌었으니 이젠 작품에 몰입하려고요.”
“멋지다, 디에고!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며 삶을 즐기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탄성을 냈다.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여기지 말고 언제든 또 오게. 우리는 자네가 그리울 거야.”
아버지도 정말 아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예, 어르신, 언젠가 다 쓴 작품, 책으로 내면 그 땐 책 들고 오겠습니다. 그 때도 잔디 깎을 철이면 잔디도 깎고요.”
“디에고 올 때까지 잔디 깎지 않고 둬야겠네!”
어머니의 조크에 우리는 또 웃었다.
아직 눈앞에 있음에도 나는 자꾸만 디에고가 그리웠다. (계속)
(주말은 연재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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