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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23)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27 2021 10:47 AM
10. 그를 만나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식구들은 파이어 플레이스를 중심으로 자주 한 자리에 모였다. 얼마나 많은 눈이 와 길을 덮든, 얼마나 차고 모진 삭풍이 호수를 훑으며 불어오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따뜻하고 화사했다.
어머니는 뜨개질로 늘 손을 움직이시고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낙이 생겼다. 가끔 이안을 안고 창밖에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포도농원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품에 안긴 아기 이안에게 아버지는 말하셨다,
‘이안, 보아라, 저 포도농원을. 네 것이란다.’ 라고.
끝 간 데 없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포도농원을 손자에게 보여주며 어린 가슴에다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아버지 나름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내 손을 잡고 아버지는 그러셨어, 봐라, 브라이언, 네 것이다, 라고. 이담에 크면 나는 당연히 포도농원 주인이 돼야 하는 줄 알았지.’
언젠가 브라이언이 내게 한 말이었다.
아버지 나이 열여섯에 영국에서 이주해 오던 배에서 멀미하던 열다섯 살의 소녀, 조앤에게 건넨 박하사탕 하나가 인연의 고리가 되어 결혼하셨다.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작은 농장을 시작으로 이 동네에 정착하셨는데 이제는 멕시코나 자메이카에서 오는 인부들이 아니고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대농장과 와이너리로 확장되었고 모두가 브라이언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브라이언은 어느 날 아버지에게 ‘포도주로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오래되고 원대한 꿈을 꺾을 수도 있던 말이었다.
‘브라이언, 모든 일에는 절제가 필요하단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식하면 배탈이 나지. 내가 와인을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을 취하게 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게 하기 위해서란다. 즐거울 때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한 잔의 와인은 와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다만 절제는 각자의 몫이야.’
술에 대한 아버지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술에 대한 유혹이 많은 일을 하지만 과하게 마시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알맞게 즐길 뿐이었다.
이제 아버지는 브라이언에게 했던 말들을 아기 이안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말을 알아듣든 아직 알아듣지 못하든 아버지는 아들에게 들려준 말을 손자에게 되풀이하면서 아침을 여셨다. 이제 시작했으니 이안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농장의 주인의식을 갖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브라이언은 와인 비즈니스 때문에 중국이며 3년 간 지낸 적 있는 코리아에 다녀오기도 했다. 코리아에 갈 때는 수아도 가고 싶어 했지만 아직 아기가 어려 장거리 여행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포기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바깥출입이 잦지 않은 어머니는 이안이 조금 더 자라면 쓸 털모자와 장갑을 뜨고 모유를 수유하는 수아는 계속 뭔가를 먹었다.
‘어머나, 또 늘었어요, 애나!’
수시로 저울 위에 올라가 기울어지는 눈금에 자지러지면서도 수아는 먹을 것을 들고 있었다.
‘입맛이 달아서 다행이다, 수아야. 너는 두 사람 몫을 먹어야 한단다. 몸무게 좀 불면 어때? 젖 뗀 후 운동하면 되지, 우리 셋이서 수영 다니자꾸나.’
어머니는 과일 조림을 내 놓으셨고 수아는 ‘안 되는데..’ 하면서 계속 먹었다.
나는 수아에게 허락을 받고 아기 이안을 업어주기도 했다.
‘예전엔 코리아의 어머니들도 아기를 업어 키웠어요.’ 라며 내가 이안을 업고 싶다고 하면 수아는 포대기를 여며주었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갈 때 나는 가끔 이제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를 디에고를 생각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 이곳에서의 경험이 녹았을 스토리가 궁금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농장 인부들의 세계, 사랑과 희망과 배신이 있다고 했던가? 그의 상상력까지 가미되었을, 브라이언과 내가 만든 소문도 스토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만일 그렇다면 그 소문은 디에고의 상상 속에서 어떻게 날개를 달아 소설적인 이야기로 표현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독자로서 아직 출간되지도 않았을 그의 소설을 기다렸다.
그리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나는 어머니와 함께 식구들이 즐기는 음식을 만들고 가끔 삼뽀냐를 불었다. 겨울잠에 든 추리 하우스에는 갈 수 없어 내 방에서 창 너머 온타리오 호수를 바라보며 삼뽀냐를 부노라면 수아가 기척 없이 와서 듣고 있었다.
‘눈물 나요, 애나.’
수아는 정말 눈물을 흘렸다.
‘브라이언이 왜 애나의 삼뽀냐 연주를 들으면 착해지는 것 같다고, 울고 싶다고 했던지 알 것 같아요.’
수아는 그렇게 말하며 또 우물 같은 깊은 눈에서 눈물을 길어 올렸다.
와이너리에서 집으로 오는 길 양쪽에 도열한 단풍나무는 이미 몇 번이나 눈을 입었다가 벗기를 되풀이하며 온타리오 호수 바람에 쓰러질 듯 흔들리고, 키 작은 포도나무행렬, 앙상한 가지끼리 와이어로 이어져 서로 결속한 채 겨울을 나고 있는 포도나무는 호수를 할퀸 겨울바람이 아무리 모질게 후려쳐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 날도 나는 내 방에서 삼뽀냐를 불고 있었다, 마리오 오빠가 즐겨 연주한 곡들이었다. <엘 콘도르 파사>를 끝내고 <외로운 양치기>를 연주하고 있을 때 수아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전화 받아보세요, 애나’ 라고 했다.
나는 연주를 멈추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머니가 날 향해 수화기를 흔드셨다.
“전화 받아봐라. 마이클이라는 구나.”
분명히 마이클이라고 어머니가 말하셨는데 갑자기 들은 이름이라 나는 마이클이 누군지를 잠시 헷갈려하고 있었다. 마이클이란 이름을 한 사람이 날 찾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마이클이야.”
어머니가 수화기를 내게 넘기며 작은 소리로 말하셨다. 어머니는 긴장과 호기심이 어우러진 것 같은, 아주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마이클, 어렸을 적의 그 마이클 요?’
나는 눈으로 어머니께 그렇게 묻고 있었고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애나 힐스입니다.’ 하고 상대방에게 날 알렸다.
“애나!”
마이클이란 남자가 마치 아주 친근한 관계인 듯 내 이름 ‘애나’를 불러놓고는 가만히 있었다. 분명 할 말이 있어 한 전화였을 텐데 막상 내가 받으니 말이 막혔을까, 그는 그러고 있었다.
“마이클 에반스?”
심호흡을 한 번 한 내가 오히려 침착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응, 나 마이클이야. 잘 있었어, 애나 힐스?”
그 목소리는 어렸던 마이클, 날 놀리던 개구쟁이 마이클의 목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고마워, 내 전화 받아줘서.”
마이클은 조금씩 긴 문장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전화를?”
나는 몹시 사무적인 언어로 말했다.
내 말에 잠시 주저하던 마이클이 대뜸 말했다, ‘한 번 만나고 싶어서.’ 라고.
그 때서야, 길모어 부인의 수다와, 브라이언의 반대, 그리고 어깃장을 부리듯 마이클을 만나보겠다는 말을 한 기억이 줄줄이 떠올랐다. 지난여름의 일이었다.
“사실은...많이 늦었지만 사과를 하고 싶어서, 애나.”
‘사과?’
사과란 말에 나는 가만히 수화기를 든 채 있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불편한 기억들이 우루루 들고 일어나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다투어 일어나는 기억들은 하나 같이 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탓에 행여 길가다가라도 마주치게 될까 두려워했었는데 다행히 우연으로도 스친 적이 없었다. 지난여름 길모어 부인이 마이클을 나와 연결하겠다고 한 후, 그래서 오기로 한 번 만나보겠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실현 가능성은 없었다. 그것은 내 진심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내게 마이클은 나쁜 기억의 악연으로 이름조차도 잊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나고 싶다니, 사과하겠다니, 두근대던 가슴은 더욱 벌렁거리고 그럴수록 진정하기 위해 나는 수화기를 움켜쥐었다 수화기를 쉰 손바닥이 땀으로 젖었다.
“그래? 나, 그 사과를 받아야겠어, 마이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
그렇게 마이클과 만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사과를 받아야겠다느니 할 말이 있다느니 했던지 마치 횡설수설한 것 같아 수화기를 놓자마자 후회부터 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할 말이라니, 도대체 마이클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기에, 내가 언제 그에게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대뜸 할 말이 있다고 했는지 나의 경솔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 거였다.
“마이클이 왜 전화했대, 애나?”
당장 어머니가 굳은 얼굴로 물으셨다. 어머니에게도 그리 유쾌한 기억을 안긴 사람이 아닌 탓이었다.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나는 좀 담담한 심정이 되어 말했다.
“사과를? 마이클이? 마이클이 또 내 딸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난 반갑지 않구나.”
경계부터 하시는 어머니의 심정을 나는 이해했다. 마이클 때문에 아들 앞에서 이미 난감한 지경을 겪으신 어머니였다. 그러니까 마이클은 우리 식구 모두에게 유쾌한 기억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과는 받아야겠다며 대뜸 약속부터 한 나는 그래서 더 후회하기 시작했다.
“더 만날 일 없을 거예요, 어머니.”
어차피 약속했으니 한 번은 만나지만 더는 만날 일 없을 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식구 아무도 반기지 않는, 무엇보다도 내가 싫어하는 마이클이 사과를 했다고 다시 만나거나 하는, 관계를 이어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정한 약속날짜, 그 시간에 나는 마이클을 만나기 위해 동네의 호텔에 갔다. 한 때 어머니와 함께 수영을 다닌 호텔이었다.
‘행여 마이클이 예전처럼 또 무례하면 그 자리서 일어나 오너라. 그 때는 내가 나서마.’
마치 딸을 적진에 보내는 것처럼 어머니는 당부하고 또 당부를 하셨고 나도 아닌 척하며 속으로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이 나이에 다시 마이클에게 휘둘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나잔다고 대뜸 약속에 응한 내 태도는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얕잡아 무시하고, 약 올리고, 브라이언의 말처럼 집요하게 괴롭히던 그 마이클이 어른이 되었다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었다. 그러나 어차피 왔으니 사과를 듣고 내 할 말만 하고 일어서야지, 하며 호텔에 들어갔다.
파이어 플레이스가 타오르고 있는 호텔라운지에는 평일이라 빈 테이블이 많았다.
나는 두루 살피지 않은 채 파이어 플레이스를 등 뒤에 두도록 한 테이블에 가 앉았다. 웨이터가 다가와 마실 것을 주문하겠느냐고 했을 때 마이클을 기다릴까 하다가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이클,
내가 어떻게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일곱 살 그 때, 새 부모님과 이 땅에 와 부모님이 브라이언과 함께 입학을 하게 했을 때 그 때부터 가까이에 있었던 마이클이었다. 마이클은 브라이언보다 키가 컸고 둘은 친구이면서도 마이클이 나를 괴롭게 하던 바람에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
‘애나, 넌 왜 다르니?’
‘네 집으로 가라, 애나!’
‘넌 왜 말을 못하니, 벙어리래요!’
케추아 언어를 썼던 나는 마이클이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놀리는 소리로 무슨 의미인지 짐작만 했을 뿐 같이 대들며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마이클이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애나는 바보래요!’ 하며 어머니가 땋아주신 양 갈래 머리를 잡아당기며 놀리면 휙 하고 어디선가 브라이언이 나타나 씨근대며 이미 붉어진 볼과 주먹을 쥔 채 마이클 앞을 가로 막곤 했다.
‘그러지 마, 애나한테!’
저보다 큰 마이클에게 힘으로는 못하고 말로 브라이언이 대들면 마이클은 또 놀렸다, ‘브라이언 넌 뭐냐? 넌 왜 애나와 다르니?’ 하고 놀려댔다.
그렇게 잘 참던 브라이언도 한 번은 마이클에게 힘으로 대든 적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휙 마이클을 덮쳐 패준 일이었다.
그 일로 둘은 선생님에게 불려가 주의를 들어야 했고 그래도 마이클의 버릇은 여전했다. 그래서 마이클이란 이름만 귀에 들어가도 브라이언은 치를 떨었고 나와 엮일까봐 한사코 반대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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