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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32)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3 2021 11:41 AM
20. 벌 받다
나는 집으로 왔다. 추리 하우스에 오를 수 없는 겨울이면 창밖 온타리오 호수를 바라보며 삼뽀냐를 불었던 어머니의 집, 내 방이었다.
토해내야 할 말은 찼지만 나는 속에다 가뒀다. 입을 다무니 무슨 일이 있었던지 알 리 없는 식구들은 내 주위를 맴돌며 애만 태웠다. 다만 마이클의 음주를 차마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했을 브라이언만이 그 밤에 날 홀로 남겨둔 탓이라며 자책을 할 것 같았다.
‘네 탓 아니야, 브라이언.’
그 말은 하고 싶은데 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는 일조차도 하기 싫었다. 말을 한들 달라질 것이 없었다. 사는 것이 너무 어이없고 시시해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집에 오던 길을 잃어버리신 어머니의 심정이 이랬을까? 가던 길 위에서 길이 사라졌다고 했다.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꿈처럼 찾아 온 생명, 내 아기도 반나절의 환희와 함께 홀연히 가버렸으니 나도 어이없다. 너무나 어이없다. 내 길도 사라진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마이클 탓만 아니었다. 이미 몇 주 전에 찾아왔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 탓이었다. 엄마라고 찾아 온 그 생명, 낯설어 미처 안착하지 못했을, 미숙했던 제 새끼를 알아차리지 못한 내 탓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던 사람이었다. 길고 추운 겨울에 시달리다가 짧은 봄 햇살에 취해 어렸던 브라이언이 유괴를 당한 줄도 몰랐던 어머니보다 더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억울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누운 채 떠오르는 사람 아무에게나 소리 없는 시비를 걸었다. 고왔을 때도 있었을 텐데 왜 늘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느냐고, 이 세상에도 없는 페루의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브라이언 넌, 왜 마마니였던 날 ‘애나’라고 불러 이 땅으로 오게 했느냐며 시비를 걸었고, 나쁜 기억으로 평생 미워하도록 두지 왜 만나자고 먼저 전화를 했느냐며 마이클에게 시비를 걸었다.
‘힘들게 와 놓고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아가야!’
급기야 이 세상에 없는 아기에게까지 시비를 걸었다.
긁고 할퀴며 날 못살게 굴었다.
나도 사라지고 싶었다, 흔적조차도 없이.
길을 잃고 운전 면허증을 반납한 이래로 우울해 하시던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더운 음식을 내 방으로 들이셨다.
그러나 나는 먹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았고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얼굴만 보고 가겠다며 아침저녁으로 마이클이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았고 마이클의 부모님이 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애나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조앤.”
시어머니는 내가 임신을 하고도 가족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셨고 그 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던 어머니는 그래서 더 난감하셨으리라.
“마이클이 아직도 술을 마시는 줄은 몰랐어요.”
일의 시작은 마이클의 음주 때문이었으므로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으로 아신 어머니는 그 점을 들먹이셨다. 이미 다 극복했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거짓이었다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분노하셨다. 한 번도 나로부터 또는 브라이언으로부터 마이클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신 적은 없었다. 병원 침대 곁에서 울며 흘린 마이클의 말 부스러기를 통해 짐작하시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쩌면 유산도 마이클의 음주와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측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 확실한 이유는 모른 채였다.
어머니는 그래도 내게 친구 같은 수아가 곁에 있어 다행이라 여기실 것이다.
나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늦여름을 즐기고 싶은 시 두(Sea Doo)가 굉음을 지르며 하얀 물거품을 뿜었다. 물속의 모터사이클이라 불린다고 마이클이 말했던가. 나는 그렇게 또 마이클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천천히 바람결에 움직이는 세일보트 보다 시가 보트라고도 불리는 스피드보트를 즐겼다.
‘어지러워, 천천히 가!’
처음 마이클의 보트에 올랐을 때 보트가 뒤집어질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었다. 눈을 감은 채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었으니 멀미가 더 치받혔었다.
‘멀미 몇 번 해야 해! 그래야 즐길 수 있어!’
굉음 때문에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해야 했다.
그러면서 나도 서서히 마이클이 되어 스피드를 즐기고 있었다. 마이클과 나는 집 앞 나이아가라 강에서 보트를 띄워 미국과 연결된 철로의 교각과 피스 브리지의 교각 사이에 급히 흐르는 물을 거슬러 다시 이리 호수로 가곤 했다.
어머니의 집 추리 하우스에서 내려다보는 온타리오는 내게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가 되는데 스피드보트로 물을 가를 때는 티티카카호수를 느낄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티티카카 호수엔 갈대숲이 있고 새떼와 짙푸른 하늘과 햇빛, 고기잡이배와 볕에 탄 피부 빛을 한 사람들의 지극히 소박한 삶이 있었다. 그러나 스피드보트가 굉음을 내지르고 물이 몸을 뒤집으며 나대신 허옇게 거품 멀미를 하는 곳에선 나는 그 질박한 삶의 현장을 떠올릴 수 없었다. 스릴과 쾌감만 있을 뿐이었다.
‘일종의 과시였어, 나는 약하지 않다는. 그런데 물살을 가르고 공기를 가르다보니 내 고질적인 나약함도 다 날려버리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더라.’
마이클이 처음 보트타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마이클처럼 나도 스피드의 쾌감을 느꼈다. 나는 점점 고요보다 굉음과 쾌속에 적응되었고 그렇게, 스릴을 즐기는 마이클이 되어가고 있었다.
“들어가도 돼요, 애나?”
보트가 지나간 헝클어진 수면을 바라보며 마이클을 생각하는데 수아가 노크했다. 방문을 열고 비켜섰더니 커피를 쟁반에 받쳐 든 수아가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함께 커피 마시고 싶어서요.”
커피로 수아는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애태우시던 어머니 생각이기도 하리라.
수아가 코리아서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이 스쳤다. 눈이 우물처럼 깊던, 부모님의 질문에는 ‘예스’, 또는 ‘노’라며 미소만 짓던 고요한 여성이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수아는 더 이상 고요할 수가 없다. 이안이 어렸던 그 때, 앞만 보고 뛰듯 걷던 이안을 따라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던 그 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수아가 아이 눈높이에 맞춰 얘기를 주고받느라, 내게 아이 자라는 얘기를 하느라 더 이상 고요할 수 없겠구나, 하고. 더구나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고마워요, 수아.”
커피 잔을 받아들며 내가 말했다.
그러나 막상 날 찾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수아는 커피 잔만 만지작거렸다. 나도 입을 다문 채였다. 둘 사이에 안개가 자욱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애나.”
수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울음이 비어져 나올 것 같은 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커피 잔을 탁자 위에다 얹었다. 그리고는 수아의 손을 잡았다. 브라이언이 사랑했던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을 말하기 위해 하기 힘들었을 자신의 과거를 드러낸 날, 내가 수아의 손을 잡은 후 처음이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요, 수아.”
“그래도,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요, 너무 가혹하잖아요.”
갑자기 수아가 내게 대들듯 격하게 말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도 왜 참기만 하느냐, 왜 그렇게 침착하냐고 원망을 하고 있었다. 툭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쓱 손바닥으로 닦는 낯선 모습도 내 눈에는 격해 보였다. 두 아이를 둔 엄마의 심정에서 비롯되었을 행동일 것이었다.
분명 원망이었는데 원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속에 갇혀서 부피를 불리고 있던 덩어리 하나를 충동질하는 것 같았다. 울 자격조차도 없다며 우겨넣은 채 버티고 있던 울음덩어리였다.
나는 대답 대신 배를 끌어안았다. 생명을 건사하지 못한, 쭉정이였다. 조금씩 매일 부풀어 올라 만삭의 흐뭇함을 누려야 할, 그러나 숨소리대신 슬픔과 분노와 억울한 절규의 응어리로 채워진 배였다.
“아주 잠시였지만 엄마였잖아요, 엄마가 자식을 잃은 거잖아요,”
말이 안 되도록 가혹한 사실보다 침묵을 고집하는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수아가 다시 대들었다. 자식 잃은 어미가 의식할 것이 무엇이 더 있어서 맘대로 울지도 못하느냐는 말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자식을 잃었다는,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수아의 원망이 불씨가 되어 내 속의 응어리에다 불을 댕겼다. 순식간에 파르르 불꽃이 일더니 내 분노에 옮겨 붙고 내 서러움에 번졌다. 그리고 지지고 태우기 시작했다.
내 속이 순식간에 화덕이 되었다.
열기가 치솟았다. 지져지고 타고 오그라드는 가슴을 끌어안고 몸을 뒤틀었다.
“엄마!”
신음이 케추아 어로 터졌다. 오기로 버티던 눈에서 먼저 넘쳤다. 이어 더운 머릿밑을 적시고 이마에서 흥건하더니 목덜미로 흘렀다. 눈이 감당하지 못한 눈물이었다.
수아가 날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저녁에 다시 마이클이 온 것 같았다.
마이클은 부모님의 눈치를 봤을 것이고 부모님과 브라이언은 반갑게 마이클을 맞지 않았으리라.
비록 내가 입을 다문 채이지만 나와 마이클 사이에 큰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식구들은 모두 하고 있을 것이다. 힘겹게 찾아온 생명은 유산되었고 나는 마이클이 있는 집에 돌아가지 않은 채 집에 와 침묵하고 있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님과 브라이언은 그래서 온갖 상상을 하며 마이클을 고분고분히 대할 수가 없으리라. 무엇보다도 내가 마이클을 외면하기 때문이었다.
“애나를 봐야겠어요, 어머니.”
이미 며칠 째 아침저녁으로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는 나를 오늘은 기어코 만나야겠다면서 마이클이 어머니에게 간청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이클? 자네는 알 것 아닌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마이클은 묵묵부답일 것이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나 보러 갈게요, 어머니.”
그리고 계단을 밟는 마이클의 발소리가 들렸다. 완강했을 것이므로 어머니는 차마 저지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허용했을지도 몰랐다.
“애나.”
닫힌 방문 앞에 선 마이클이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 오늘은 당신을 봐야 해. 당신 만나지 않고는 가지 않을 거야.”
쌓인 할 말은 너무나 많았고 다 쏟아놓지 않고는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자 잠시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던 마이클이 방문 손잡이를 틀었다.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올 태세였다. 나는 문을 잠그지 않았다.
“애나!”
완력으로라도 열려다가 너무 쉽게 열리자 오히려 마이클이 놀란 채 선뜻 방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주춤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섰다.
“당신 얼굴이 왜 이래?”
마이클의 목소리에 이미 울음이 배어 있었다. 그 말을 하는 마이클의 얼굴도 피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시점에 우리 둘의 얼굴빛이 정상이면 그것이 비정상일 거였다.
“오, 애나, 어떡해!”
마이클이 와락 나를 안았다.
“나, 봤어! 당신이 보여주려던 붉은 두 줄 ...오, 하나님!”
마이클이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치 오래 전 마이클의 놀림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내 모습 같았다.
그러니까 마이클의 말은 그 날 선명 하던 두 붉은 줄로 아기의 존재를 알린 그 진단기를 의미했다. 들고 하늘에 오를 듯이 기뻐하다가,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 생각하다가, 그래도 마주보며 선물처럼 안기겠다며 탁자 위에다 놓고는 그 사달이 일어난 후 나는 잊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짧은 단 두 개의 붉은 줄로 각인시키고 떠난 생명, 그걸 이제 본다고 달라지는 것이 뭔데,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 어떻게 해?”
‘몰라, 나도. 나도 길 잃었다고!’
내가 속으로 마이클을 향해 소리쳤다.
“그 날 당신이 어떤 심정으로 날 기다렸을지, 내가 무슨 짓 저질렀는지 그거 보면서 다 기억해 냈어.”
마이클이 두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감싼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 기억해 내?’
붉은 두 줄로 자신의 존재를 내게 보여줬던 아기가 나대신 깜깜하던 취중의 아빠의 기억을 끌어올린 것이 분명했다.
“그만해, 마이클.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겠어.”
그러나 나는 냉정했다. 할 말이 많았는데, 이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다 기억해 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다 안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할까? 그 생명에게 당당하지 못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힘들게 찾아온 우리아기한테..”
마이클이 허리를 뒤틀었다.
한탄하는 아비 몫의 눈물은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마이클이 울어도 달래지 않았다.
“내가 뭘 해야 할까, 애나?”
눈물이 덮인 얼굴을 한 채 마이클이 날 올려다보았다.
“가, 마이클! 다시는 오지 마!”
나는 외면했다. 마이클의 눈물 앞에서 모질어야 했다.
“그러지 마, 애나!”
‘그래, 또 술 마시고 다시 중독되고 그렇게 폐인이 되든지 맘대로 해!’
나는 차마 소리로 내지는 못했다.
마이클의 두 손이 내 발을 잡았다. 내 발등에 눈물이 후루루 떨어졌다.
울음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도 나도 붉은 줄의 생명에게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둘 다 욕심만 있었을 뿐 준비는 없던 부부였다.
나는 무릎을 굽혀 마이클을 일으켰다. 마이클이 일어나며 날 바라보았다.
내가 치맛자락으로 그의 얼굴을 닦았다. 다 갖추고도 누리지 못해 반항하고 방황하고 젊은 나이에 중독이 되고 급기야 자식까지 잃은 사람이었다.
갉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갉지 않아도 스스로 괴로울 사람이었다. 평생 그 짐을 지고 살 사람이었다. 그것이 벌일 거였다.
“우린 벌 받아야 해.”
마이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이클이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벌, 내가 받을게. 오지마란 말은 하지 마, 애나.”
마이클이 애원했다.
“그게 벌이야, 서로 떨어져 이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거.”
“애나, 당신 무슨 생각하는 거야?”
마이클이 내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난 그럴 거야. 다시 생각할 거야. 당신도 그래야 해, 마이클.”
그렇게 떨어져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다시 만나는 것이 둘의 결론이라면 내가 집에 돌아갈 것이고 둘 중 하나라도 아니라면 그대로 헤어지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정도의 벌도 없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너무 염치없잖아?”
나는 이미 완강했다. 서로 떨어져 냉정하게 이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이클의 눈이 공포에 질린 것 같았다. 치료의 그 시간을 떠올릴지도 몰랐다.
그것도 벌일 것이다, 마이클에겐.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던 그 과거를 다시 자초한 잘못, ‘알아들었다’던 그 말을 믿은 내게 실망을 안긴 잘못까지 더한 벌이었다.
“우리관계에 대해 생각할 마지막 기회일 거야.”
나는 끝까지 다정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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