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33)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4 2021 03:00 PM
21. 페루를 그리다
병원에서 나온 이후 나는 어머니 집에서 머물고 있다.
내가 다시 마이클이 있는 집엘 가게 될지 나는 모른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떨어져 지내며 서로에 대해, 우리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내린 벌이다.
‘집에 가면 많이 쉬자, 애나.’
그 날 병원에서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마이클은 날 데리고 집으로 갈 준비를 했었다. 그것은 유산을 한 이유와 그것으로 인한 내 심정과 상관없던, 당연한 일이었다.
‘애나는 내가 데려가겠네, 마이클.’
그런데 수아와 함께 오신 어머니가 마이클의 말을 무시하고 날 데리고 어머니 집엘 가겠다고 하셨다. 그것은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나는 어머니와 마이클 사이에서 잠시 난감해 했다.
‘애나는 집에 가서 쉴 거야. 언제가 되든 애나가 가고 싶다고 할 때 보낼 테니 그리 알게.’
‘어머니!’
가시가 묻은 단호한 어머니의 말에 나도 어리둥절할 지경이었고 마이클은 어이없다는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애나가 갈 집이 어째서 어머니 집이냐는 표정이었다. 내 귀에도 어머니의 말은, 자네를 못 믿어서 못 보내겠네, 하는 의미로 들렸다.
그래도 나를 집에 데려가겠다고 할 것 같던 마이클이 잠시 굳은 얼굴을 했다. 어머니의 말의 기세에 기가 꺾인 것 같았다.
‘가자, 집에.’
‘집까지 제가..’
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그럼 며칠 쉬었다 오라며 날 어머니 집까지라도 데려다 주겠다던 마이클은 ‘걱정 말게, 마이클’ 하고 말을 자르던 어머니 앞에서 결국 그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그토록 냉정하고 그토록 단호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게 처음이었다. 마이클과 집에 가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던 나도 두 말도 하지 못하고 수아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없는 말도 때로는 필요하단다, 애나야.’
집으로 오던 길에 자동차에서 어머니가 하신 말이었다. 의도적으로 마이클에게 냉정했다는 의미였다.
‘엄마가 있는 곳이 네 집이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보내지 않을 참이야.’
어머니는 여전히 완강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어머니 집에서의 시간 대부분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정원 일이며 과일조림 만드는 일, 바느질이며 요리를 즐겨하시던 어머니, 어느 하나 어머니의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이 없고 일을 하며 내게 노래하듯 방법을 들려주시던 그 어머니가 알고 있던 것을 조금씩 잊으면서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는 일도 점점 잊어버리시는 것 같았다. 집안 분위기를 밝고 화사하게 하던 어머니가 말수를 줄이자 식구들도 목소리를 줄였다.
누구보다도 기운을 잃으신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더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치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 같았다. 돌이켜 보니 집안의 화사한 기운은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로 비롯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화사한 기운이 공기처럼 늘 집안에 채워질 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시지 않았다.
웬만큼 내 몸이 회복되자 어머니는 잊으셨을 성 싶던 일까지 기억해 내며 소회를 하셨다.
‘엄마가 또 방심했구나.’
어머니는 당신의 방심으로 어렸던 브라이언이 유괴를 당했듯이 내가 겪고 있는 불행도 당신의 방심 탓이라 자책하셨다. 함께 자란 브라이언과 나를 떼어 내가 날 던지듯 마이클을 선택하게 했다고 어머니는 자책했고, 내가 마이클과 잘 살고 있으려니 한 것도 방심이었다며 자책하셨다.
‘자식들 인생에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머니가 가슴을 치셨다.
길을 잃은 이후로 천천히 기억을 잃기 시작하는 어머니는 정작으로 잊어도 될 것은 너무나 선명히 기억해 내며 당신 자신을 긁었다
어머니 집에서 나는 자주 마이클을 생각했다. 다시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피폐하게 하고 그래서 또 치료를 받게 될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마이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마이클에 대한 내 생각은 원망보다 아직은 그를 걱정하는 것으로 시작해 걱정하는 것으로 맺었다.
그렇게 결과를 빤히 알면서도 나는 냉정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생각하고 걱정하면서도 나는 전화를 하거나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애당초의 약속이었고 우리에게 내리는 벌이었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마이클에 대해 묻지는 않으셨다. 딸을 이렇게 만든 사위에 대한 괘씸 증과 마이클에 대한 언급은 오히려 날 아프게 할 뿐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었다.
날씨가 추워져 추리 하우스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어머니와 놀며 가끔 삼뽀냐 연주를 했다. 마이클과 함께 하면서 손에서 내려 두었던 삼뽀냐였다.
“엘 콘도르 파사가 듣고 싶구나, 애나야.”
오늘은 어머니가 곡명을 정확하게 기억하셔서 내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삼뽀냐를 손에 들었다. 내 표정의 의미를 안 어머니가 말하셨다,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니, 내 딸이 연주하는 곡인데.’ 라고.
나는 삼뽀냐에다 닿을 듯 말듯 아랫입술을 얹고는 혀로 윗입술을 쳐 뱉듯이 숨을 불었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게 해 주오
‘혀끝에 얹힌 공기를 뱉어내면서 소리를 만들어야 해.’
마리오 오빠가 삼뽀냐를 불 때 내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혼자 소리로 말하곤 했다. 뱉어내듯이, 그리고 칠 할은 날려버리고 남은 숨이 만드는 소리,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서걱거리는 소리였고, 이미 사라져 잡을 수 없는 날숨을 그리워하는 소리였다.
오빠는 공기를 혀끝에다 얹어두고 마치 갖고 놀듯이 음률을 만들었는데 내 귀에서는 왜 늘 슬펐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마리오 오빠가 왜 사람을 죽였을까?
오빠가 감옥에서 왜 죽었을까?
슬픈 노래만 연주하다 간 슬픈 오빠의 삶이 오빠가 남긴 삼뽀냐에 고스란히 남아 연주를 할 때마다 나는 슬펐다.
엄마가 실로 뜬 오색 끈으로 아버지가 갈대 관을 묶어 만든 악기, 엄마와 아버지의 손때, 오빠의 숨소리까지 스민 삼뽀냐가 멀리 캐나다까지 날 따라 온 것이다. 오빠가 감옥에 가면서 내게 주고 간 삼뽀냐를 아버지가 가방에 넣어주며 말하셨다, ‘잊지 마라, 넌 페루의 딸이다.’ 하고.
티티카카 호수가 있고 물새들이 날고 엄마의 흔적과 아버지, 오빠가 있던 그 곳, 삼뽀냐로 엘 콘도르 파사를 연주할 때면 그 때 그곳이 그리웠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동네를 벗어나 본 적 없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잃어버린 태양의 도시, 잉카의 공중정원 마추픽추, 그림들 중의 하나가 콘도르가 분명하다고 아버지가 말한 신비의 기하학적 형태의 도형이 있는 나즈카 사막, 모두가 언젠가는 가서 볼 내 그리움의 실체였다.
“애나야, 네가 연주하면 나는 왜 눈물이 날까?”
창밖 멀리 온타리오 호수를 티티카카 호수라 여기며 앨 콘도르 파사를 연주하는데 어머니가 말하셨다.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기억을 잃으면서 어머니는 말수를 줄이셨고 또 자주 눈물을 보이셨다.
“그 때 어렸던 네게 오빠와 아버지, 고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나도 자식 잃은 고통을 겪었으면서 널 보내야하신 아버지와 오빠의 심정을 내가 살피지 못했어.”
삼뽀냐 음률이 어머니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부른 것 같았다. 어렸던 브라이언이 유괴란 무서운 일을 겪은 후라 누군가 브라이언과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혔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넌 내게 과분한 복이란다. 그러나 미안하구나, 애나야. 널 내 딸로 키운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나이 든 지금은 그것이 내 이기심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구나.”
“어머니!”
어머니의 주름지고 마디진 손을 감싸 쥐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마음 아프신 것이 나는 싫었다.
“애나야. 우리 페루, 갈까?”
어머니가 눈을 반짝 빛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내 속의 그리움의 정체를 아셨다.
“예, 어머니, 쿠스코에도 가고 티티카카 호수에도 가요.”
옛 잉카의 후손들이 불멸의 새 콘도르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 잉카의 수도 쿠스코, 그리고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엄마와 아버지, 오빠의 삶의 터전이던 티티카카호수였다.
“그래 가자, 나랑.”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때부터 어머니와 나는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바로 어머니와 내가 처음 만났던 그 곳, 내 고향으로 같이 가는 것이었다.
안데스 설산의 녹은 물이 만든,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하늘 호수 티티카카, 잉카 문명이 비롯되었다고 믿는 호수다. 가난한 삶이지만 잉카 사람들의 정신은 하늘 호수보다 높고 깊었다. 황금빛 노을이 번지는 티티카카 호수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쿠스코가, 마추픽추가 있으리라. 불멸의 새 콘도르의 정신을 품은 사람들이 사는 페루. 이제는 기억에도 흐릿한 그 땅, 아버지가 뚜르차를 잡고 오빠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연주하던 삼뽀냐 소리가 있던 그곳이 머릿속으로 지나가며 또 그리움을 불렀다. 떠나온 이후 한 번도 가지 못한 고향이었다. (계속)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