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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36)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9 2021 01:28 PM
24. 샬 위 댄스
마이클은 레스토랑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나!”
마이클이 자동차에 내리던 날 대뜸 안고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입을 맞추며 기꺼워했다. 그는 그렇게 깍듯하던 절제된 행동은 다 잊은 것 같았다. 이제야말로 그도 내가 아는 내 남편 마이클이었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냉랭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우리가 마치 열애 중인 것 같았다.
시아버지로부터 물러 받은 와이너리와 함께 마이클이 시작한 레스토랑은 그의 열정과 애정을 기울이는 비즈니스였다. 그러나 마이클과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마이클은 내가 만드는 음식을 좋아했고 무엇보다도 식구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일을 내가 원하지 않아서였다.
마이클이 날 에스코트해 들어서자 웨이터가 내 코트를 받았다.
레스토랑은 디너 타임이었음에도 고요했다. 불빛은 저들끼리 은은하고 음악은 잔잔했다. 음악이 귀에 익다 싶었는데 ‘외로운 양치기’였다.
‘마이클, 당신!’
내가 미소 지었다. 마이클이 날 위한 음악을 준비한 것 같았다.
“당신 비즈니스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휘 둘러봐도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조만간에 문 닫을 것 같아.”
조만간에 문 닫을 비즈니스 주인의 말 마련하고는 지나치게 유쾌했다.
테이블엔 유리그릇에 든 초가 수줍게 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음악만 잔잔할 뿐 발을 들이는 손님이 없는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매일 이렇게 고요해?”
야심차게 시작했다더니 급기야 문을 닫게 된 지경인 것 같았다. 가정이 편치 않아서 비즈니스도 순조롭지 않았던 것일까? 마이클과 나 사이의 편치 않았던 관계의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커 보였고 큰 그 일에 내 고집과 어깃장이 한 몫을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들어오면서 세워둔 안내문 못 봤구나, 오늘 저녁은 사정으로 손님을 모실 수 없다는 안내였는데.”
“나 때문에?”
“아니, 당신과 나 때문에.”
마이클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예약한 손님들은 다른 날 우리가 대접하기로 하고 양해를 구했어.”
마이클이 경쾌하게 말했다.
그 때서야 내가 마이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자신감과 여유가 그 얼굴에 있었다.
“정말 문 닫겠네.”
내가 농을 하는 사이에 웨이터가 와인 병을 들고 왔다. 술을 마시는가 보았다.
웨이터가 내 잔에다 먼저, 그리고 마이클의 잔을 채웠다.
“무알콜 와인이야. 우리 꺼야.”
“당신 이제?”
“안 마셔, 와인은.”
마이클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다시 마실 수 있겠어?’ 라고도 했다.
“그랬구나.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말했다.
“당신 없이 지내는 것보다는 쉬웠어.”
마이클이 또 농을 하는지 진심인지 나는 얼른 알 수 없었다.
“마이클, 당신 마음먹으면 정말 해 내는 사람이구나!”
내가 살짝 칭찬을 했다.
“응, 단 하나만 제외하고.”
그 때 웨이터가 음식을 나르고 마이클과 나는 식사를 시작했다.
“내가 페루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마이클은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늘 마음속에다 고향을 품고 살았다는 사실은. 어머니는 아셨다, 내가 삼뽀냐를 연주할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애나야, 너랑 나랑 페루 가자. 라고 하셨을 것이다.
“난 몰랐어, 당신이 고향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내가 물은 적도 당신이 내게 말 한 적도 없었잖아. 실은 내가 어머니와 자주 통화를 했어.”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그 일을 겪은 후부터 어머니도 마이클에 대해 큰 반감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자주 통화라니, 더구나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한 적 없는 말이었다.
“당신과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어머니께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어, 식사는 잘 하고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매일.”
‘매일?’
“응. 당신이 어머니와도 통화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마이클의 표정이 천연덕스러웠다.
‘그래서 나 모르게 매일?’
공모가 아니고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어쩌면 그렇게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을까?
“그러면서 어머니의 기억력 증세도 알게 되었고 나중엔 어머니 안부도 궁금하더라.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자꾸 되돌아보면서 붙잡고 계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당신과 아홉 해나 살면서도 몰랐던 이야기들, 아니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래서 당신도 내게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당신과 함께 페루에 가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도 알았어.”
마이클과는 어차피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지만 어머니, 한 집에서 매일 얼굴보고 차 마시고 얘기 나누는 어머니가 그 모든 과정을 비밀로 하셨다니 서운하기보다 놀라웠다. 그 많은 시간 함께 식탁에 앉고 함께 차 마시고 함께 게임하고 얘기 나눈 시간이 얼만데 어머니가 무심코 흘리는 실수조차도 없도록 단속을 하셨다니 나는 그만 헷갈렸다, 어머니의 기억이 정말 심각하거나 아니면 전혀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사실 사이에서.
“어느 날 어머니가, 마이클 자네가 애나 데리고 페루에 갈 수 있겠나, 장거리 여행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여쭈었어, 어머니, 저 믿으세요? 하고.”
마이클도 어머니가 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때, 유산 후 병원에서 집엘 가야했을 때, 어머니가 마이클의 제의를 단호히 자르고 강권적으로 날 어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가신 그 일을 마이클이 떠올린 것 같았다. 그 때 어머니가 마이클을 불신하신다는 느낌은 나도 느낀 것이었다.
“참 솔직하시더라, 어머니. 이 시점에 달리 방법이 없네, 마이클. 내가 자넬 한 번 믿어 보려고, 그러시더라.”
그 말씀으로 실은 어머니가 저를 이미 믿고 계신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마이클이 말했다.
“미안해, 애나. 내 아이디어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제부턴 알려고 애 쓸 거야. 당신을 다 몰라서 술기운 빌어 애꿎은 말하고, 힘으로 당신 힘들게 하고 결국 우리 아기까지...그 붉은 두 줄이 날 꾸짖는 것 같았어.”
마이클이 애써 덮어두려던 지나간 일을 끄집어 올렸다.
“그런데 얼마든지 날 원망할 수 있었고 얼마든지 탓할 수 있었는데 왜 아무 말 하지 않았어, 당신? 그 때 정말 두려웠어.”
실은, 붉은 두 줄로 인해 취중의 자신의 행위를 이미 낱낱이 기억하게 된 사람에게 나까지 되풀이 할 수가 없었다. 괴로운 일은 스스로 떠올리며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형벌일 테니까.
“나는 당신을 다 몰랐어도 당신은 날 다 알아, 나, 당신 없으면 안 된다는 거.”
마이클이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손을 끌었다.
‘나는 마이클을 다 아는가?’
결코 다 안 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는 지금 보이고 있는 마이클의 이런 모습도 나는 알지 못했다. 날 더 알기 위해 어머니와 매일 통화를 했다는 사실도 몰랐고 붉은 두 줄이 자신을 꾸짖는다고 생각하는 줄도 몰랐고 그리고 날 두려워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티켓예약하기 전에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
내가 말했다.
“내가 말했으면 당신 ‘노!’ 라고 했을 거잖아.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실은 애나가 자라면서 ‘노!’ 라고 말해야 할 때 ‘노!’라고 못 하고 자랐어, 하고. 이번만큼은 ‘노!’ 라고 말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애나가 분명 ‘예스!’라고 하고 싶을 거라고. 그래도 난 당신의 ‘노!’ 가 두려웠어.”
‘아, 어머니!’
어머니는 나 어렸을 적의 대답의 습관을 이미 알고 계셨다. 브라이언은 거침없이 할 수 있던 그 대답, ‘노!’를 나는 늘 ‘예스!’로 바꿔 했다는 사실을. 그것이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내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당신 대답, ‘예스!’로 알아도 돼?”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이 다시 잡은 내 손에다 힘을 주었다, ‘고마워 애나.’ 하면서.
“그리고 나, 할 말 있어. 페루 여행은 어머니 아이디어였지만 지금부터 하는 말은 내 생각이야. 그래서 만나야만 했어.”
마이클은 오늘 말을 많이 했다. 마이클이 잠깐 마음을 가다듬었다.
“애나, 당신, 입양을 어떻게 생각해?”
“입양?”
그것은 정말 뜻밖의 말이어서 내가 다잡아 앉으며 마이클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응, 입양. 당신은 분명 좋은 엄마가 될 것이고 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이클의 눈빛은 진지했고 목소리는 침착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하셨잖아.”
마이클의 말이 하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이어서 내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당신과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내내 한 생각이야. 기관을 통해 알아보기도 했는데 더 중요한 건 당신 의견이어서 이 날을 기다렸어.”
‘그래서 빨리 대답을 들려달라고 했구나.’
내가 지독한 오해를 한 그 말의 이유였다.
“마이클, 당신 아기 좋아해?”
그가 얼마나 아기를 기다렸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응, 당신한테 부담 줄까봐 표현은 안 했지만 많이 기다렸어. 친구 모임을 꺼려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그랬지, 그 때부터 당신은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거칠어지기 시작했지.’
내가 생각했다.
“마이클, 나, 자라면서 쉽지 않았어.”
내가 좀 냉정하게 말했다. 어차피 일시적인 감상으로 시작할 일이 아니었다.
좋은 환경에서 날 키우셨어도 부모님도 모르는 아픔은 내 속에 있었다. 그 아픔은 나로 하여금 ‘노’라고 하고 싶은 일에도 ‘예스’를 하는 아이가 되도록 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도록 했고, 내 속에다 늘 요만큼만이라는 한계를 품어 하고 싶은 일에도 소극적이게 했다. 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나 스스로 극복해야 했던 내 문제였는데 뿌리내린 고질적인 습관처럼 제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컸어, 애나.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었어도 나는 늘 문제를 만들며 부모님의 환상을 깨뜨렸지. 나, 우리 엄마 눈물 많이 봤어도 모른 척 했을 정도로 나쁜 아이였어. 그럴수록 아이들은 부모 품에서 커야 한다고 생각해. 각자 다른 이유로 우리가 겪었던 지독한 성장 통이 우리로 하여금 자식을 이해하는 부모로 만들지 않을까?”
“마이클!”
아이 심정을 이해하는 부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날 좌절하게 한, 그래서 긴 시간동안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내 남편 마이클인가?
“나는 그 아기를 당신과 함께 그곳에서 만나고 싶어.”
“그 곳? 쿠스코에서?”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마이클, 당신 오늘 여러 번 날 놀라게 하네!”
그렇게 간절히 기다린 생명을 잉카의 그 땅에서 만나려고 했다니 어떻게 그 생각을 다 하게 되었을까? 나는 마이클을 바라보았다.
“우리,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마이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당신과 내가 함께 할 건데 당연하지.”
“그래!”
잉태의 희망을 잃고 주저앉을 것 같던 내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도록 솟구쳐 오르는 어떤 기운을 느꼈다. 내 품에 안길 아기, 그것은 설렘이기도 했고 기쁨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이클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한 확신이기도 했다.
“만일 어렸던 개구쟁이 마이클처럼 누가 우리 아이 괴롭게 하면 그 땐 내가 나설 거야, 브라이언이 그랬던 것처럼.”
마이클이 씨익 웃었다.
“그 때, 내가 당신 괴롭게 했을 때마다 브라이언이 나타났잖아? 실은 브라이언이 무척 부러웠어. 나보다 작은 애가 나보다 더 크게 보였을 때가 갑자기 나타내 주먹 모아 쥐고 내게 대들 때였는데 어렸던 내 눈에 흑기사 같았다고나 할까? 나도 브라이언처럼 하고 싶었어. 그래서 브라이언에게는 시기심, 경쟁심 같은 것이 있었어, 그것도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렇게 마이클은 이제 와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듯이 드러내 보이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속에 넣어둔 채로 참아야 했으니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는 알 것 같았다.
“당신은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했네? 고마워, 당신이 더 많은 생각을 해 줘서.”
이번에는 내가 마이클의 손을 잡았다. 실은 안아주고 싶었다.
“당신 나 안아주고 싶지?”
마이클이 눈을 찡긋하며 농을 했다. 아마도 결혼 전 파크웨이에서의 자동차 안에서 마이클이 알콜중독에 대해 자신을 드러냈을 때 내가 안아주고 싶다고 했던 그 말을 기억한 것 같았다. 첫 키스의 그 날이었다.
내가 ‘응’ 하고 마주 웃었다.
그 때였다, 마이클이 멀찌감치 서 있던 웨이터를 향해 손짓을 하자 가라앉은 듯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이 한순간 다른 곡으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큰 레스토랑을 압도했다. 마치, 기세도 좋게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분수 같았다.
‘엘 콘도르 파사!’
그것은 삼뽀냐 홀로 한숨처럼 뱉어낸 고독한 흐느낌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에 안겨 리듬에 몸을 맡겨버리고 싶게 하는 충동질의 소리였고 몸을 조이고 있던 긴장의 매듭을 풀어헤치게 하는 관능의 음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가 이끄는 대로 그 속에서 소리와 하나가 되라는 색소폰의 절규였다.
나는, 날 묶고 있던 긴장의 매듭들을 죄다 풀어헤치고 싶었다.
그 때였다, 마이클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가 건너 편 자리에서 내게로 오더니 날 향해 정중히 한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샬 위 댄스, 미세스 애나 에반스(Evans)?"
그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고 뭔가 머릿속에서 부글거리다 마침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나는 엉겁결에 그의 손에다 내 손을 얹었다. 그가 낚아채듯 날 그 앞에 세웠다. 그리고 한 쪽 팔을 내 허리에다 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색소폰 선율에 우리를 맡겼다.
“얼마만이야 우리, 애나?”
스텝을 밟으며 하는 마이클의 목소리는 내 귓속에 넣어주는 속삭임이었다. 얼마 만에 추는 춤이야, 란 의미가 아니라 얼마 만에 우리가 서로 안고 있는 거야, 하는 의미란 것을 나는 알았다.
“십년은 된 것 같아.”
이렇게 안기지도 못한 채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계절들을 보냈을까, 하고 내가 생각했다.
“혼자는 싫어, 다시는 안 할 거야.”
마이클이 투정했다. 우리는 소곤소곤 말하면서 음악에 맞춰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누볐다. 오늘 밤엔 손님이 있어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나도 안 할 거야, 다시는.”
그러면서 내 얼굴을 그의 가슴에다 묻었다. 내 귀에 그의 심장 박동이 들어왔다.
마이클이 두 팔로 내 허리를 안았다. 나의 두 팔은 어느 사이에 그의 목에 감겨 있었다.
‘엘 콘도르 파사’
서러운 곡, 늘 눈물을 부르던 이 곡이 우리를 춤추게 할 줄 몰랐다. 마이클과 함께하면서 눈물이 춤이 되었다.
“아, 꿈 아니지, 애나?”
내가 그의 품에서 ‘응’하고 대답했다.
“애나, 나는 당신이 ‘엘 콘도르 파사’를 좋아하는 줄도 몰랐고 얼마나 간절히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어. 도대체 당신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있기나 했을까?”
날 안고 춤추며 마이클은 계속 말을 했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말일 거였다.
“마음먹어도 할 수 없는 단 하나는 뭐야, 마이클?”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란 내 말에 ‘단 하나만 제외하고.’ 라 던 그의 말을 상기한 질문이었다.
“아, 그거? 당신하고 헤어지는 거. 그래서 나, 너무 무서웠어, 나는 안 되는데 당신은 된달 까봐.”
‘나도 무서웠어, 마이클. 당신이 준 봉투도 선뜻 열 수 없었을 정도로.’
내가 소리 없이 속삭였다.
“다시는 날 만나지 않겠다고 할까봐...”
그러면서 내 목덜미에다 얼굴을 묻었다. 얼굴을 묻은 채 마이클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움직이면서도 나는 내 목덜미에 닿는 미세한 떨림은 감지할 수 있었다.
“난 당신 없이는 안 되겠는데 당신은 날 ...”
그러면서 또 말을 멈췄다.
“오, 마이클!”
내 허리에 둘러진 마이클의 팔이 내 어깨를 안고 내 손은 그의 얼굴을 감쌌다. 이제 색소폰 음률은 허공으로 솟구치며 절규하다 마침내 서로를 휘감아 안고 서로를 적시며 떨어지는 두 줄기의 분수였다.
“나도 너무 두려웠어, 다시는 당신 못 볼까봐.”
감싼 내 손 안의 젖은 그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내가 그의 입술을 찾았다.
우리는, 둘 다 젖은 뺨으로 서로를 부비고 젖은 입술로 서로를 느끼고 젖은 채 몸부림하며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웨이터들이 보고 있어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서로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한 부부이므로, 그것으로 다 이해가 될 것이므로.
그리고 우리는 지금 재회의 춤을 추고 있으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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