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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37)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20 2021 10:42 AM
25. 콘도르를 만나다
드디어 마이클과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페루에 가는 비행기다.
얼마 만인가?
일곱 살 때 떠난 고국에 남편과 함께 가는 것이다. 어머니와 가기로 한 여행이었다.
나와 페루에 가고 싶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은 나와 마이클을 보내기 위한 작전이었을까?
그렇다면 어머니의 작전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25. 콘도르를 만나다 드디어 마이클과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페루에 가는 비행기다. 얼마 만인가? 일곱 살 때 떠난 고국에 남편과 함께 가는 것이다. 어머니와 가기로 한 여행이었다. 나와 페루에 가고 싶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은 나와 마이클을 보내기 위한 작전이었을까? 그렇다면 어머니의 작전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엄마한테도 사생활이 있단다, 애나야.’ 마이클과 매일 통화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한 마디도 말하지 않으셨느냐는 내 말에 어머니는 그렇게 받으면서 까르르 웃으셨다. ‘너는 모르게 할 수 있겠던데 네 아버지는 실패했어. 네 아버지가 ‘당신 요즘 연애하오?’ 그러지 않겠니?’ 마이클인 줄 다 알면서 질투 하더라며 어머니는 또 까르르 웃으셨다. 기억에 혼란이 온 이후 처음으로 건강했을 때처럼 내신 웃음소리였다. ‘말마라, 애나야. 실은 입이 근질거려서 혼났단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어. 내가 마이클을 제대로 알아야 했거든. 내 딸 인생이 걸린 중대사였잖아.’ 딸의 인생이 걸린 중대사를 위해 자꾸만 사라지려는 기억을 붙잡고 어머니는 매일 씨름하신 건 아닐까? 아, 내 어머니 조앤 힐스 여사 때문에 나는 또 헷갈려야 했다. 치매라기엔 어머니는 너무나 스마트 하고 계획적이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병을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만 믿기로 했다. 이제 마이클과 나는 페루로 간다. 그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도 마리오 오빠도 없는 그 곳. 무엇이 날 기다릴지 내가 기억하는 어떤 것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 나는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다. 티티카카 호수가 있고 갈대가 무성하던 곳, 더운 볕과 거친 바람에 시달린 사람들의 지난한 삶이 있던 그 곳. 그 곳은 아직도 그렇게 있을까? 그 넓은 땅, 잉카의 유적지를 둔 내 나라에 대해 내가 보아 알고 있던 지극히 작은 부분도 그나마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희미하다. 그러나 희미한 것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나는 내가 페루의 딸이란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주오’ 추리 하우스에서 티티카카 호수 같은 온타리오 호수를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날을 삼뽀냐 음률로 그 땅을 그리워했던가. 나는 그 쿠스코 광장을 향해 남편 마이클과 가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릴 콘도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란 그 이름은 정말 큰 새 모양을 하고 있을까? 페루의 아버지는 콘도르가 전설의 불멸의 새라고 하셨다. 쿠스코에서 마이클과 나를 기다릴 그 전설의 새는 새 엄마 아빠의 품을 기다리는 아기 형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장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니? 내 가슴으로 낳은 애나가 내게 준 기쁨은 늘 과분했단다. 내 딸과 사위는 분명 좋은 부모가 될 거야.’ 마이클과 내 결심을 안 어머니가 하신 말이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마이클과 내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매일 흐뭇한 다짐을 하게 할 아기, 마이클과 나를 좋은 엄마 아빠로 만들어 줄 아기, 마이클과 내가 가슴으로 낳을 그 아기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희미한 기억만 붙잡은 페루의 딸이 또 다른 페루를 품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말처럼 콘도르는 불멸의 새가 틀림이 없었다. 드디어 천천히 구르던 비행기가 굉음을 앞세우며 속도를 재촉했다. 더는 구를 수 없을 지점에서 마침내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치켜날기 시작했다. 나는 마이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렸던 브라이언과 함께 떠났던 그 곳엘 마이클과 가고 있다. 낯선 땅에서 만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아이, 그 아이가 자라 남편이 되었고 또 혹독한 위기를 겪었지만 둘 사이를 가리고 있던 지독한 미움과 지독한 그리움의 껍질을 깨고 우리는 다시 부부로 태어난 것이다. “어서 안아보고 싶어, 우리아기.” “나도.” 마이클의 어깨에 기대며 내가 말했다. 마이클과 내 품에서 다시 태어날 콘도르다. 끝
‘엄마한테도 사생활이 있단다, 애나야.’
마이클과 매일 통화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한 마디도 말하지 않으셨느냐는 내 말에 어머니는 그렇게 받으면서 까르르 웃으셨다.
‘너는 모르게 할 수 있겠던데 네 아버지는 실패했어. 네 아버지가 ‘당신 요즘 연애하오?’ 그러지 않겠니?’
마이클인 줄 다 알면서 질투 하더라며 어머니는 또 까르르 웃으셨다. 기억에 혼란이 온 이후 처음으로 건강했을 때처럼 내신 웃음소리였다.
‘말마라, 애나야. 실은 입이 근질거려서 혼났단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어. 내가 마이클을 제대로 알아야 했거든. 내 딸 인생이 걸린 중대사였잖아.’
딸의 인생이 걸린 중대사를 위해 자꾸만 사라지려는 기억을 붙잡고 어머니는 매일 씨름하신 건 아닐까?
아, 내 어머니 조앤 힐스 여사 때문에 나는 또 헷갈려야 했다. 치매라기엔 어머니는 너무나 스마트 하고 계획적이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병을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만 믿기로 했다.
이제 마이클과 나는 페루로 간다. 그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도 마리오 오빠도 없는 그 곳. 무엇이 날 기다릴지 내가 기억하는 어떤 것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 나는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다. 티티카카 호수가 있고 갈대가 무성하던 곳, 더운 볕과 거친 바람에 시달린 사람들의 지난한 삶이 있던 그 곳. 그 곳은 아직도 그렇게 있을까? 그 넓은 땅, 잉카의 유적지를 둔 내 나라에 대해 내가 보아 알고 있던 지극히 작은 부분도 그나마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희미하다. 그러나 희미한 것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나는 내가 페루의 딸이란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주오’
추리 하우스에서 티티카카 호수 같은 온타리오 호수를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날을 삼뽀냐 음률로 그 땅을 그리워했던가.
나는 그 쿠스코 광장을 향해 남편 마이클과 가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릴 콘도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란 그 이름은 정말 큰 새 모양을 하고 있을까? 페루의 아버지는 콘도르가 전설의 불멸의 새라고 하셨다.
쿠스코에서 마이클과 나를 기다릴 그 전설의 새는 새 엄마 아빠의 품을 기다리는 아기 형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장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니? 내 가슴으로 낳은 애나가 내게 준 기쁨은 늘 과분했단다. 내 딸과 사위는 분명 좋은 부모가 될 거야.’
마이클과 내 결심을 안 어머니가 하신 말이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마이클과 내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매일 흐뭇한 다짐을 하게 할 아기, 마이클과 나를 좋은 엄마 아빠로 만들어 줄 아기, 마이클과 내가 가슴으로 낳을 그 아기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희미한 기억만 붙잡은 페루의 딸이 또 다른 페루를 품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말처럼 콘도르는 불멸의 새가 틀림이 없었다.
드디어 천천히 구르던 비행기가 굉음을 앞세우며 속도를 재촉했다. 더는 구를 수 없을 지점에서 마침내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치켜날기 시작했다.
나는 마이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렸던 브라이언과 함께 떠났던 그 곳엘 마이클과 가고 있다.
낯선 땅에서 만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아이, 그 아이가 자라 남편이 되었고 또 혹독한 위기를 겪었지만 둘 사이를 가리고 있던 지독한 미움과 지독한 그리움의 껍질을 깨고 우리는 다시 부부로 태어난 것이다.
“어서 안아보고 싶어, 우리아기.”
“나도.”
마이클의 어깨에 기대며 내가 말했다.
마이클과 내 품에서 다시 태어날 콘도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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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