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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집에 가다
소설가 김외숙
- 권도진 기자 (press2@koreatimes.net)
- Dec 13 2021 04:54 PM
집에 가다
그날, 내가 왜 집을 나섰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분명하지 않다. 하고 많은 갈 곳을 두고 장 볼 일도 없으면서도 그 혼잡한 경동 시장통에다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보아 내 속이 뭔가로 진창 같았나보다, 그래서 그것에 휘둘리고 있었나보다,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경동시장을 걸으며 웬만큼 마음을 다스려 놓고, 그래놓고 기어코 그 진창의 기억 속으로 걸어간 것은 내 기억에 의하면 분명 그 수족관 때문이었다. 시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요량으로 대로를 따라 걷는데 바로 길옆, 활어 횟집이란 간판 아래에 놓여있던 쌀 뒤주만 하던 그 수족관. 이제는 헤엄도 버겁다는 듯 배를 깔고 바닥에 누운, 손바닥보다 큰 물고기들과 잔챙이들이 흐릿한 물속을 어지럽게 유영하던 그 수족관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내 정신 아니게 걸은 것이 오히려 집과는 반대 방향인 청량리 쪽이었는데, 아마도 날생선 몇 마리에 낮술 걸친 불콰한 얼굴로 이쑤시개를 물고 횟집을 나서던 남자들 때문이었으리라.
물고기들이 현란하게 유영하는 수족관은 늘 내 기억 속의 유리관과 통유리와 휘황찬란한 불빛을 불렀다. 웬만큼 잊고 이젠 살만하다 싶은데도 문득문득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키듯 기억의 화살촉이 내 느슨해지려는 정신에 내리꽂히면 나는 그것에 휘둘려 몸부림하다가 집을 뛰쳐나가곤 했다. 회한을 끌어안고 찾은 곳들이 산지사방에 허다하니 그만큼 날 휘두르는 기억이 집요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주로 분주한 곳을 찾았다. 내 속에 깊이 내린 기억의 화살을 뽑아낼 만한 곳이었다.
어수선하고 산만한 시장통이나 어깨 부딪는 일 없이는 결코 걸을 수 없는 명동거리나 종로통 같은 곳. 그러나 기억의 뿌리는 그럴수록 더 깊고 질겼다.
그런데 그날, 경동시장 그 어수선한 곳을 거쳐 이제는 집에 가자며 나선 길에 다시 청량리의 그곳에 내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러니까 화살촉을 안은 채 그 화살촉을 뽑아낼 시도는커녕 화살을 다발로 맞겠다는, 그래서 이젠 맘대로 하세요, 라며 내 모진 기억 앞에다 목을 들이미는 행위에 다름아니었다.
대낮이었음에도 그곳은 여전히 불빛으로 화려했다. 붉고 푸르고 보라로 분홍으로 빛의 수족관과 같던 그 통유리 관. 그곳엔 그 옛날의 내가 나이에 맞지도 않은 화장을 덕지덕지하고 교태로운 웃음을 흘리며 가발 같은 긴 머리칼을 손가락 끝으로 감으며 불콰한 얼굴들을 부르고 있었다. 입으로 웃으며 눈으로는 ‘살려주세요, 데려가 주세요!’를 외친 아이. 넌더리 나던 그 개기름 얼굴들이라도 행여 탈출의 밧줄이 될까 은밀한 애원의 눈길을 보낸 그 아이가 있던 곳.
얼마나 많은 날, 나는 그러고 살았던가.
갓 잡아 올린 생선보다 더 팔딱대던 내 설익은 젊음이 엇길로 나가 통유리의 휘황찬란한 불빛에 갇혀 아니,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던 연결고리에 묶여 뒤늦은 후회를 하던 그때였다.
‘그래, 나, 저 속에 있었어.’
그러니까 나는, 꿈에서도 돌아보고 싶지 않던 그 기억의 현장을 직시하며 이젠 맘대로 하라며 목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게 너야. 진창이면서 고고한 척하지. 너 같은 족속 땜에 기억이 존재하는 거야.’
내민 내 목에다 기억이 시퍼런 비판의 칼날을 얹었다.
기억, 날 오래 휘두른 그 집요한 기억의 성질일 것이었다. 사노라면 때로 의도치 않은 오류를 만나게도 된단다, 라며 한 번도 다독여 잊게 하기보다 그렇지 않아도 진창인 가슴에다 벼린 화살촉만 퍼붓던 모진 기억의 성질이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더 이상 그 모진 기억에 있지 않았다. 저 화려한 불빛 아래서 위태로운 차림으로 눈웃음을 날리고 있는 저 아이들, 그 속의 어렸던 나. 불콰한 얼굴조차 탈출의 밧줄이기를, 구원이기를 은밀한 눈빛으로 갈구해야 했던 그 아이, 마침내 저 두꺼운 유리관을 탈출하고서도 마음은 여태 그 속에 갇혀 기억에 시달리고 있는 그 아이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것이 관심일 뿐이었다.
‘가자, 집에.’
기억의 칼날이 목에 얹혔음에도 내가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잔뜩 의혹을 품은 아이를 향해 내가 웃어 보였다.
‘이리 와, 집에 가게.’
내가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이윽고 그 위태로운 옷차림의 아이는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되어 유리관을 벗어나 내 품으로 포르르 날아왔다. 내가 그러도록 기억은 지켜보기만 했다. 아마도 새 기억을 저장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기억은 내게 여전히 시퍼런 날을 세우고 있었어도 나는 외려 담담했다. 기억은 다만 기억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란 이해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류가 같은 오류를 저지를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확신이 기억보다 더 깊이 내 속에다 뿌리내릴 것을 유리관 속의 아이가 내 품에 뛰어들던 순간에 내가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돌아서서 천천히 걸었다, 유리관 속에 갇혀 아주 오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 어렸던 내 손을 잡고서.
기억도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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