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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연극이라면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Apr 29 2022 10:53 AM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극(劇) ‘As You Like It’에 나오는 위 인용문은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이다. 셰익스피어가 은유적으로 묘사한대로 세상은 연극 무대이고 인간은 배우이며 일생동안 여러 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면 나의 연극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나는 무슨 역을 맡아 연기를 했나?
어린 시절에 나는 참혹한 6.25 전쟁 와중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부산까지 걸어 내려 가서 피난민으로 살며 일찌감치 인생의 쓴 맛을 보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나라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으나 그래도 나는 대학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그런대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자위한다.
나는 군복무와 학업을 마치고 미국 은행에 취업하여 일을 시작하였고 그 후 캐나다 은행, 호주 은행으로 옮겨 다니며 30여년간 한국, 캐나다, 싱가포르, 일본에서 국제 금융업에 종사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내가 가족을 위해서 가장 잘 한 일은 일찌감치 캐나다로 이주하여 아들과 딸이 한국의 입시지옥에서 벗어 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진 교육을 받으며 건실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학업을 마치고 자립하여 자기들의 가정을 꾸렸다.
큰 짐을 벗은 나는 은퇴자가 되어 인생 2막을 시작하였다. 은퇴하고 나니 매일 외출할 필요가 없어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지루하지 않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역사, 철학, 종교,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나 보다 앞서 이 세상을 살다 간 인생 선배들, 그리고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으나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들의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학창시절에 이렇게 열심히 독서를 했다면 소시민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은퇴자로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살고 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을 할 수 있다. 나는 서울에서 자라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캐나다로 건너왔기 때문에 고국에서 여행을 별로 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매년 고국을 방문하여 죽마고우들과 어울려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다.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해외 관광 여행도 한다. 낯선 곳을 찾아 가는 여행은 틀에 박힌 일상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청량제이다.
나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국문과 영문으로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캐나다와 한국에서 지인들은 물론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 주고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보람이 없다. 또한 글쓰기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든 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재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어떤 은퇴자는 자신이 사회에서 밀려난 듯한 착잡한 심정으로 살고 있다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반평생 충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 당당히 물러 났으니 미련이 없다. 나는 본디 범인(凡人)으로 태어났으니 청사에 기록될 큰 일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치게 된 것을 아쉬워할 이유도 없다. 은퇴자로서 나는 비로소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캐나다 사회 안전망(social safety net)의 온갖 혜택을 누리며 편하게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나의 인생 연극은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다. 내가 언제 무대에서 내려오게 될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자족(自足)하며 또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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