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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가기가 겁난다
이용우 | 언론인 (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13 2022 04:15 PM
서양음식 주문하기 어려워 진땀
평소 영어를 거의 쓰지 않다가 갑자기 돌발상황에 맞닥뜨리면 말이 안나와 당황한다. 비근한 예로 이곳 현지 레스토랑에 가면 적잖이 곤혹스러운게 사실이다.
수년 전 한국에서 친지가 다니러 와서 우리는 좀 괜찮은 스테이크 하우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분은 자기는 모르니 우리가 알아서 맛있는 메뉴를 시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현지음식을 자주 먹어봐서 잘 알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럴 때 평소 한국·중국음식만 먹어온 내가 무엇을 추천하고 주문할지 막막했다. 솔직히 이실직고 하면서 “우리는 한국음식만 먹어서 잘 몰라요” 할까. 속으로 땀이 흘렀다. 나는 도대체 이곳에 살면서 음식메뉴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고시공부하듯 애꿎은 메뉴판만 뒤적거리고 있는데, 마침 아내가 재치있게 메뉴를 시켰다. 그래서 나도 슬그머니 “나도 그걸로 하지 뭐…” 하고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메뉴를 능숙하게 오더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한식당에 가서도 무얼 먹을까 하면 대개 “아무거나!”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 복잡하기 짝없는 양식요리를 세세히 주문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말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을 했다. 앞으로 혹시 서양 레스토랑에 갈 일이 있으면 아예 사전에 메뉴를 정해놓고 오더할 말도 미리 준비를 하자고. 그야말로 남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기 싫으면 그렇게라도 해야겠다고.
언어는 필요이자 습관이다. 평소 영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고 일상생활이 습관화돼야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민 와서 5~10년 이내에 영어 환경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멀어져간다. 동족끼리 어울리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민연조가 오래되신 어르신들이 더 언어장벽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이민연수(年數)와 영어습득은 되레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에 그리 오래 사셨다면서 영어를 못하세요?”란 말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평생을 언어 불편자로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새로 이민 온 ‘프레시맨(Freshman)’들에게 가능한 현지사회와 어울려 살아갈 것을 권한다. 장차 “내가 영어만 잘하면 뭐든지 자신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집에 자녀가 있으면 도움 좀 청하면 좋을 것이다. 나의 경우 둘째딸이 집에서 근무중이라 궁금한 영어가 나오면 수시로 물어본다.
지난주 골프를 치는데 앞서가는 조가 너무 더디게 플레이를 했다. 그래서 마샬(marshal)에게 “Those guys are so slow…”라고 불평을 했다. 이야기를 들은 딸은 “The group in front is holding us back”이라고 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좀 더 근사한 영어가 아닌가.
그런데 사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얘기다. 아이들이 한국말 잊지 않도록 집에서 한국말만 쓴 결과 아이들은 한국말이 자연스러운 반면, 부모는 그만큼 영어 쓸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배움에 너무 늦었다란 말은 없다(“It's never too late.”). 배우고 익혀 이곳 문화를 즐기며 당당하게 살자.
이용우(언론인·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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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