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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뿔
윤치호 선집 우순소리 <4>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5 2022 01:04 PM
제4화 사슴의 뿔
하루는 사슴이 냇가에서 물을 먹다가,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뿔 그림자를 보고 좋아서 하는 말이, “멋진 뿔이로다, 훌륭하구나. 뿔을 보면 내가 천하일색인 것이 틀림없건만, 내 다리가 장대같이 길어서 분하구나.”하고 탄식하는데, 갑자기 사냥개가 쫓아왔다. 자신이 업신여기던 긴 다리로 나는 듯 뛰어서 위급한 경지를 면했으나, 그 멋진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버려, 달아나지 못하고 잡혀버렸다. 사슴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 “외면 치례만 하면 몸을 망치고 말지!”했다.
겉모습만 보고 친구 사귀지 말라.
윤정남의 해석
이 우화는 1905년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호소문과 상소를 고종황제에게 올린 윤치호의 상소문과 일맥 상통한다.
상소문 가운데는 물론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말하지만, 결국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손에 넘어가게 된 이유중의 하나를 “외면치레”에 두었다.
즉, “황제 폐하께서 하찮은 소인들에게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에, 궁실을 꾸미는 데만 힘쓰게 되니 토목 공사가 그치지 않았고, 기도하는 일에 미혹되니 무당의 술수가 번성하였고,
충실하고 어진 사람들이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니 아첨하는 무리들이 조정에 가득 찼고, 심지어 최근 새 조약을 강제로 청한 데 대하여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끝끝내 거절하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따랐기 때문”등 임을 지적했다.
‘외면치레’가 많아질수록 태산 같은 장애물에 막힌 경우에 대한 경종이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요긴치 않은 겉치례는 열심히 꾸미고, 정말 중요 한 일은 돌아보지 않음을 빗댄 우화이다.
윤치호의 생각
“조선인은 돈이 없어도 체면을 위해 화려한 옷을 입는다.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조선인의 민족적 결점이다. 사촌 치소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몇 년 전에 치소는 황우영(黃祐永)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황우영의 작은 초가집에 물이 심하게 새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옹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황우영은 왕자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입는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어마어마한 직함, 텅 빈 주머니에 현란한 복장, 의미 없이 거창하기만 한 표현은 모두 지난 조선왕조 시대의 특징이다.
조선왕조는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특징들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울 정도로 완강하게 조선 민족에 달라붙어 있다.”- 1920년 1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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