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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말미에 손자바보가 되어보니
손우익(경북대 명예교수·토론토 거주)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16 2022 04:44 PM
코비드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창궐로 온세상에 난리가 나서 재미없이 조심조심 살아가는 와중에 아들 내외가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 꼬물거리는 아기 ‘이든’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가 탄생하다니.. 아내를 보니 금방 천사의 얼굴로 변하고, 나는 타고난 직업병이랄까 생명탄생의 신비로운 과정에 빨려 들어간다. 방안에 아기를 눕혀놓고 내려다 보면서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네 사람의 모습을 보면 낙원이 따로 없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아들집에서 돌아오면서 내일 아기를 보러 갈 시간이 빨리왔으면 좋겠다고 애들처럼 좋아했다. 이렇게 우리는 손자를 보러 매일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애기 얼굴과 고사리 손을 만지고 싶어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걱정, 샤워와 손 씻는 것 잊지말라고 부부가 서로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어느 날 애기 울음소리가 제법 길어서 울리지 말라고 하니, ‘겨우 버릇을 고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망쳐놓으면 우리는 너무 힘들어요’라고 아내는 말했다. 그래도 1분간 참고 타이르니 애기가 눈치로 알고 그쳤다. 문헌을 찾아보니 찬반 의견이 반반인데 버릇 고친다고 오래 울리는 것은 잔인하다.
시간은 어찌 그리도 빨리 가는지, 애기는 벌써 뒤집기 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기저귀가 촌수를 알아본다’더니 냄새가 나도 소화가 잘되는지에 신경이 간다. 애기는 무럭무럭 커서 생일축하 촛불을 입김으로 불어서 끈다. 그리곤 깔깔거린다. 온가족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기쁘다. 애기는 이제 공원과 놀이터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어느 날 아들네가 집수리 한다고 모두 우리 집으로 왔다. 침대 두 개를 붙이고 사방에 긴 쿠션을 둘러 안전한 둥지를 만들어 애기를 안고 자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애기가 내 배 위에서 잠들면 숨쉬는 소리, 심장이 뛰는 소리, 보들보들한 피부의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애기는 아침 8시가 되면 “야야, 워워”하고 나를 깨운다. 이렇게 손자와 3대가 한 집에서 즐겼는데 며느리가 둘째 ‘이안’을 가져 경사가 연속했다. 둘째도 뽀얀 피부에 귀엽기는 큰 애와 같다. 예뻐서 안고 뽀뽀하고 싶어도 혹시나 큰 애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신경이 쓰여 자제한다. 거실에서 마구 뛰어 노는 큰놈과 방긋방긋 웃는 둘째 놈을 지켜보면서 나는 인생 말년에 이런 축복이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흐뭇하다. 아들은 효성이 지극하고, 며느리는 예쁘고 성격도 좋다. 인생 말년에 복이 터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아들이 육아휴직으로 한국에서 1년 2개월 체류한다면서 출국했다. 피어슨공항에서 멀어져 가는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집에 오니 애기들 소리로 가득 찼던 낙원이 갑자기 적막이 흐르는 빈 새둥지로 변했다. 그나마 나는 시골 출신이라서 조용하고 골프장 가깝고 타운센터가 가까운 새 동네에 살면서 산책도 하고 매일 꽃을 가꾸는 재미가 좋은데, 도시 출신 아내는 산책을 즐기지 않는다. 심어놓은 꽃에도 물 한번 주지 않는다. 대신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다운타운에 가는 것을 원한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집 밥을 먹은 지 까마득하다. 옛말에 ‘얼굴 예쁜 것은 몇 달이면 시효가 끝나도, 음식이 안 맞으면 평생 고생한다’고 하더니...
한국에 간 아들은 매일 손자들 근황을 동영상으로 보내오는데, 큰놈은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심이 없다. “1년만 참으면 아이들 본다”고 기다렸는데 며느리가 직장을 얻었다. 아들도 취직해서 좀 더 살겠다 하니 우리는 오랫동안 빈 둥지를 지키게 생겼다. 바보 시리즈에 ‘손자 바보’는 미친 X’ 이라고 하지만 심신이 피곤할 때도 애기와 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건강이 좋아진다. 전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30개월 넘은 손자를 안고도 거뜬하게 오르내린다. 허벅지에 근육이 살아났다. 무엇보다 애기들이 주는 기쁨으로 인해서 분비되는 행복호르몬이 건강과 수면연장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나중에 ‘고부갈등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데, 사실 이 문제는 인류역사 이래 조금도 변하지 않은 DNA 구조 때문에 정답이 없다. 단적인 예로, 전에 우리 연구실에 천사같이 착한 연구원이, 어느 날부터 안절부절 스트레스 최고조 상태가 며칠간 지속되길래 무슨 연유인지 물어봤다. ‘밴쿠버에 사는 시어머니가 며칠 후 미국가는 길에 토론토에 들려 아들에게 ‘Hi’ 한다는데 생각만해도 미치겠어’라고 말했다. 아들 집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도 아닌데…
“시어머니가 이 도시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미치게 해요.” 착하다는 평판을 듣던 여성이 이렇게 다를 수가? 한국에서도 시부모가 음식전달 핑계로 아들 집에 오는 것이 싫으니 “아파트 관리실에 놓고 가세요” 한다더니, 아예 음식을 갖고 오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전화도 자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당찬 며느리도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싫다고 파혼을 불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것은 조물주의 DNA 구조설계상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알기로는 DNA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데 ‘코비드’ 같은 미생물과 일부 식물을 제외하고 인간은 환경이 바뀐다고 유전자 구조가 쉽게 바뀌기 어렵고, 또 바뀐다 해도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거니와 시간은 억겁 년이 될지도 모른다 하니, 그때 까지는 너무나 먼 세월이다. 최근에 한국에는 같은 단지에 따로 살던가, 같은 아파트 동에 따로 사는 분양시장이 뜬다는데, ‘바로 이거다’ 하고 뜨거워질까? 아파트를 준대도 같은 동네라고 파혼까지 하는 세상에 “오 하나님, DNA 구조를 다시 설계 하소서!”
손우익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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