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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축제
손정숙(나이아가라)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03 2022 09:19 AM
내가 종이신문을 보는 이유는 패턴으로 고착화된 오랜 생활습관 때문이다.
매일 새벽 6시경이면 토론토스타와 한국일보를 묶어서 문 앞에 던져주고 간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현관문을 열고 새벽공기와 함께 활자냄새를 맡으며 신문을 집어드는 순간의 그 기쁨을, 그 흐뭇함을 상상할 수 있을지. 내 조국을 만나고 세계를 품에 안는 신선한 포만감은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한국일보 창간 51주년이 되었다.
동포사회 일간지로 51회 생일을 맞이하였으니 척박한 이민의 땅에서 흘린 신문사 발행인으로부터 책임 있는 모든 분들의 열정과 노고, 이룩한 업적에 한없는 축하를 보내 드린다.
그간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51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인생으로 말하자면 성숙기의 후반, 가장 힘있게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청장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점을 찾아내어 그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사업을 중흥시킬 기술과 판별력, 추진력을 고루 갖춘 시점이라는 뜻이다.
발행인의 서신은 어깨가 내려앉는 무거운 전언이었다.
‘종이신문 가정배달 중단의 건’은 9월30일까지만 가정배달을 하고 그 후는 중단되며, 거동이 불편한 독자들과 토론토 외곽, 타주 독자께 죄송하다고 하였다.
대형식품점, 주요기관, 식당, 교회 등 지역별로는 무료배달 배부를 계속하며 “주5회 종이신문 발행과 디지털 신문을 더욱 보강하여 한인사회에 크게 기여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요약하면 한국일보 종이신문은 토론토를 중심으로 발행 배부되며 외곽이나 타주에서는 디지털 신문을 봐달라는 것이다.
한국일보의 나이만큼 삶의 일부를 나누어 온 나로서는 신문사의 고충을 헤아리기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듯 약자의 허탈감이 세차게 밀려왔다. 눈물마저 흘렀다.
뉴스의 어원은 중세 영어에서 새로운 것(New things)을 뜻했던 newes, newys가 변화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new가 명사로 쓰이면서 복수형으로 s가 붙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나무위키). 하지만 보편적으로 신문 NEWS는 원래 동(EAST), 서(WEST), 남(SOUTH), 북(NORTH)의 첫자를 따서 지구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소식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인터넷 서핑을 잠시만 하면 고국 소식은 이미 전날에 다 알아낼 수 있다. 특히 현지발행 신문을 읽으면 때때로 교민신문은 새 소식이라기보다 오히려 구문인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신문을 기다린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종이신문에서 소식만이 아니라 생동하는 사람을 만난다.
담화하는 정치인의 목소리를 듣고, 기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취재하는 보도기자들의 바쁘게 돌아가는 숨소리가 들린다.
전자신문은 소식이 갇혀진 활자들의 기록물이지만 종이신문은 어깨를 치면 돌아보고 대화할 수 있을 듯 활력을 주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밀린 신문을 한 장씩 젖히면서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가벼운 느낌의 교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이신문에서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지만 웹에서는 차가운 기계가 만져진다.
신문은 새 소식뿐 아니라 소식을 매개로 한 사람과 삶의 교류를 유유하게 해주는 연결고리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
무엇보다도 전자신문은 컴퓨터를 열어야 하지만 종이신문은 닫는다. 글쓰기를 하기 위한 작업도구를 끄고 작업에서 벗어난 여유로운 시간의 동반자인 것이다.
반세기를 자라온 교민 일등신문이 토론토 내에서만 유통되다가 슬며시 거리가 멀어지려는 것인가. 난감하여 허둥거리는 자신을 슬프게 바라본다. 전자책을 읽는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타박 주는 이도 있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축제의 소리가 깊은 한숨만 불러온다.
캐나다 한인 이민역사가 반세기가 넘었는데 정갈한 일간지 하나 회생시킬 재력가가 없을까. 민족적 자부심을 살리기 위해 모금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10월1일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새벽 현관문을 열고 동녘에 솟아오르는 예명을 바라본다.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새 날이 분명코 오리라. 슬픔의 축제가 희망의 축제로 밝아 온다. 한국일보 51주년 생일을 축하합니다.
손정숙(나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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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