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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된 휴식
이용우 | 언론인 (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7 2022 02:21 PM
카카오톡이 먹통 되니 오히려 홀가분 때론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봐야
요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 치고 카톡(KakaoTalk)을 사용하지 않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카톡의 사용자는 탄생지 한국에선 거의 전 인구(약 5천만 명)가 쓰고 있고 해외에서도 급속히 늘고 있다.
국내외 누적 가입자 1억명, 하루 평균 송·수신 메시지 120억건의 거대 플랫폼으로 폭발 성장한 카톡은 해외동포들에게까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통신무기로 자리잡았다. 카톡의 모기업은 한국 최고의 재벌 반열에 올라 있다.
카톡은 이른바 프리웨어(freeware)로 사용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 전통적 통신수단이던 집전화가 무용지물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지난 수십년간 의사 소통의 총아로 군림해온 인터넷 이메일도 한물 가는 추세다. 이제는 스마트폰, 그 중에도 종합 메신저로는 카톡이 단연 대세이다.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 받는 것은 기본이고, 무료전화에 사진.동영상 전송 등 모든 것이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니 이처럼 편리한 기기가 없다. 지구촌에 퍼져 사는 사람들도 많게는 수백 명씩 그룹을 만들어 채팅을 하니 늘 가까이서 모임을 갖는 기분이다.
카톡은 개인의 통신수단을 넘어 국가 행정업무에까지 파고 들었다. 한국 병무청은 현역 입영과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카톡을 통해 발송한다. 보건복지부는 복지서비스 수급자(약 49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안내문을 카톡으로 보내준다.
많은 지자체들도 민원처리, 행사, 일자리 정보 등 소식을 전할 때 카톡을 쓴다. 카톡은 민간 사기업임에도 전 국가적 통신망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같은 이민사회에서도 카톡은 생활의 필수 소통수단이 됐다. 웬만한 약속 등 교신은 카톡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그룹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이런 필수통신수단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지난 주말 SK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한민국이 멈췄다. 이 센터는 카카오톡이 임대해 입주해있는 곳으로 지하 전기실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서 시작됐다. 이 불로 배터리 1개가 탔다. 추가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화재의 여파는 상상 외로 컸다. 전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카카오톡의 먹통 사태가 빚어졌다.
메신저 점유율 90%의 카톡 서비스가 10시간 넘게 중단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개인간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행정도, 금융도, 교통도, 가게 영업도, 직장 업무도 올스톱됐다. 메신저는 물론 포털사이트 다음, 쇼핑서비스 카카오 선물, 결제서비스 카카오페이, 지도 서비스 카카오맵이 멈추면서 이에 의존했던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했다.
평소 당연한 듯 사용하던 카톡의 지배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한탄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카톡이 먹통되고 나니 비로소 그 위력과 고마움을 실감하겠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토론토 동포사회도 마찬가지. 특히 단체로 연락을 주고 받던 곳의 혼란이 컸다. 주말 골프모임이 예정돼 있던 어느 단체는 그날 오전에 마침 비가 내려 예정대로 행사가 치러질지 몰라 문의를 하려 해도 카톡이 불통이라 일일이 전화로 통화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오히려 편안함과 해방감을 느꼈다는 소리들도 많았다. 카톡에 얽매어 중독자처럼 살던 일상에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퇴근 후에도 카톡으로 일을 지시하던 상사의 갑질을 안 봐도 정당한 사유가 됐고, 의무적으로 답해야 했던 문자 메시지나 동영상에 답을 안해도 되니 얼마나 속이 편한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들이 넘쳤다.
가기 귀찮았던 저녁 약속도 연락이 안 된다는 핑계로 가지 않아도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중독에서 해독되는 것)나 하자”는 반응도 이어졌다. 카톡이 재개통됐다니 오히려 아쉽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의 경우도 매일 카톡방을 통해 주요뉴스를 업데이트해오고 있는데, 그날은 속수무책이었다. 처음엔 당황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럴 때 차라리 느긋하게 주말이나 즐기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분주하고 정신없이 살아왔다. 단 한시도 스마트폰이나 카톡이 없으면 불안하고 왠지 고립된 느낌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잠시라도 그런 황망한 삶에서 벗어나 보면 그 강제된 휴식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도 그랬고, 지난 7월의 캐나다 로저스 먹통사태도 그랬고, 이번 카톡 마비 사태도 그랬다. 우리는 일상화된 디지털 중독의 허황한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강제된 휴식이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의 선물임을 깨닫자.
이용우(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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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