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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김동길 교수
최금란 전 밴쿠버 한인회장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20 2022 03:44 PM
지난 4일 김동길(사진) 교수가 돌아가셨다.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처럼 긴 여운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분의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다정했던 오라버니와 이별한 것처럼 가슴 한쪽이 아팠다. 그만큼 김 교수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그분 생전에 나와 수십 통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어떤 때는 200자 원고지로 적어 보냈고, 어떤 때는 여행길에 그림엽서를 보내주셨다. 간략한 안부를 물었고, 어떤 때는 마치 연인에게 글을 보내듯 장문의 서신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정성이 깃든 편지는 그것 자체가 문학이며, 명문이었다. 2005년에 성탄절 즈음에 받은 편지에는 영국 시인 로벗 브라우닝 (Robert Browning)의 시를 원문으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나와 함께 늙어가세.
최고의 순간은 이제부터네.
인생의 끝을 위해 처음이 지어졌으니”
나는 문진(文鎭)을 수집한다. 영어로는 paperweight, 또는 서진(書鎭)이라고도 한다. 글을 쓰거나 읽을 때 종이가 안 움직이도록 종이 위에 두는 무거운 물건이다. 자연적인 돌일 경우 누름돌이다. 문진은 나라마다 하나의 예술 장식품으로 발전했다. 언젠가 김 교수는 내가 문진을 수집하는 것을 알고 직접 구입한 문진을 소포로 보내주셨다. 이런 경우에서 보듯이 그분은 사람의 애기를 깊게 듣고, 상대를 배려하며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김동길 교수 특강'을 위해 2002년 11월 밴쿠버에 오셨다. '태평양 새 시대가 온다!'는 주제로 강연하셨다. 한인회관 지붕의 보수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이벤트였다. 코퀴틀람의 이그제큐티브 플라자 호텔에서 개최된 강연회에 입추의 여지 없이 한인들이 참석했다. 그는 강연료를 받지 않았다. 호텔이 아니라 웨스트 밴쿠버 우리 집에서 묵으셨다. 우리 남편과 저녁 늦게까지 격의 없이 담소하셨다. 함께 시워크 해안 길을 걸으면서 정담을 나누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한 장의 엽서에도 한마디의 전화에도 금란의 정성과 품격이 스며 있어요.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 꿈 많던 젊은 날의 장밋빛 구름을 오늘도 그리며 지치지 않고 굿굿하게, 떳떳하게 살아가는 그대.
2003년 1월27일자 편지는 200자 원고지에 적으셨다.
"지금은 새벽 3시, 이 일 저 일을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이 잠 안 오는 밤에 이 붓을 듭니다.
나는 나 개인보다는 나의 조국이 더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편지에서 나단 해일(Nathan Hale)의 말을 인용하셨다. “I only Regret I have but one life to lose for my country." 나단 헤일은 미국 독립전챙 당시 장교로 임관하여 조지 워싱턴 장군을 도왔다. 그 후 그는 첩보 임무 수행 중 영국군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았다. 바로 이때 그는 '조국을 위해 잃을 목숨이 단 하나뿐인 것을 다만 후회한다”고 했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께서는 나단 헤일의 역사적 사건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몇 차례나 옥고를 치르며 독재에 항거했던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가끔 서울에 나가면 그분이 사셨던 서대문구 대신동의 아담한 가옥을 찾았다. 방안은 책들로 기득 찼다. 혼자 사는데도 무적이나 정갈하고 운치가 있었다. 그분은 매년 생일 때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서 냉면 파티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해군 제독으로 예편한 내 남동생도 꼭 초청해서 맛있는 냉면을 맛보게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행복이다. 젊은 시절 살았던 스웨덴, 그리고 캐나다에서 많은 지인과 인생을 함께했다. 많은 사람 중에 김동길 교수는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은 분이다. 인생의 선배였고, 삶의 길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셨다. 그분이 몸소 실천하고 가르쳐 주신 나라사랑, 인간 존엄의 깊은 뜻을 늘 새기며 그분을 추억하고 싶다.
최금란 전 밴쿠버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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