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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1일 11시를 아시나요?
신순호(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31 2022 03:33 PM
11월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막대과자 광고가 나오고,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고백하듯이 막대과자를 나눕니다. 한편에서는 그냥 과자파는 사람들의 상술이라고 휘둘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비슷한 모양의 가래떡을 나누어 먹자고도 합니다. 과자든 떡이든 어쨋든 이날이면 실컷 먹을 수 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아이들끼리 나누어 먹기에는 막대과자가 더 편했습니다. 건수도 11월 11일을 맞아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막대과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몇개월만 지나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이번 마지막 ‘막대과자의 날’이 더욱 의미있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때,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촌누나 새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새미누나는 건수보다 1살위인 중학교 1학년입니다.
“너, 11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
“누나가 막대과자의 날을 어떻게 알아? 캐나다 애들도 그런걸 해?”
“에이… 그거 말고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말이야.”
“그게 뭔데?”
“아… 실망이네.”
어리둥절한 건수에게 새미누나는 혀를 끌끌 차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지금부터 71년 전인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평화롭던 우리나라는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순식간에 서울을 빼앗기고 바람앞의 등불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비보는 급히 전 세계로 전해졌고, 16개국에서 용감한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모였습니다. 그때 캐나다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26,791명의 군인을 파병했는데, 거기엔 이제 중학교를 겨우 막 졸업한 만 16세의 빈센트 코트니씨도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캐나다로 돌아와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참전했던 한국전쟁을 잊지 않고 평생토록 참전용사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도 80세가 넘어가면서 참전 군인들 중 대부분이 사망했고, 그런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를 안타까워 하던 코트니씨는 2007년에, 11월 11일 11시에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원래 11월 11일은 1차대전 종전일이었고, 캐나다에서는 리멤버런스데이(현충일), 미국은 베테랑스데이(재향군인의 날)라고 하여 1차대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여러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러한 코트니씨의 제안은 점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이를 한국 정부에서도 인정하여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 세계인이 이 날에 맞춰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을 하고 있습니다.
“건수야, 캐나다뿐 아니라 영국, 호주, 뉴질랜드에는 가평(Kapyong)이라는 도로 이름이 많단다. 6.25 전쟁 때 중공군이 북한군 편으로 참전하면서, 잘못하면 서울을 다시 빼앗길 위기에 처했대. 그때 경기도 가평에서 영연방 연합군들이 자기들보다 10배나 더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전투를 해서 끝내 지켰다는 거야. 그래서 기세가 등등하던 중공군이 더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되면서,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대. 그때 함께 가평을 지켰던 군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뒤, 그 전과를 기념해서 가평이라는 도로이름을 지은 거래. 너, 여기 놀러왔을 때 갔던 와사가 비치 기억하지? 거기 갈때 보던(Bodern)이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그 곳에도 ‘가평(Kapyong Rd)’ 길이 있어. 나도 그동안 몰랐는데, 이번에 알고서는 일부러 다녀왔다니까.”
“와, ‘가평’이라는 길 이름이 캐나다에 있다니 정말 신기하네. 더구나 내가 지나가 본 길이었다니… 근데 ’턴 투워드 부산’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어. “
“코트니씨가 이런 제안을 해서 실행한지도 벌써 1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니 참 안타깝지?”
“그러게 말야. 내일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어. “
“그래. 여기 캐나다 학생들도 해마다 11월 11일이면 한국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용사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데, 한국의 어린이가 막대과자나 먹는 날로 알면 되겠어?”
“그 말이 맞아. 그런데 코트니라는 할아버지는 겨우 16살에 참전했다는게 정말이야?”
“6.25전쟁때 코트니 할아버지 말고도 제임스 패트릭 도은트라는 분도 17살에 참전했는데 안타깝게도 전사하셨어. 한국에서도 겨우 중학생 밖에 안되는 이름없는 학도병들이 용감하게 싸웠잖아. 너 영화 안 봤어?”
“보긴 했는데 그냥 영화라고 생각했지.”
“아이구, 인터넷은 게임할때만 쓰는게 아니야. 한번 잘 찾아봐. 그런 분들의 희생으로 너랑 나랑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거야.”
“누나, 진짜 고마워. 와, 내일 학교에가서 이 얘기 할 생각하니까 너무 흥분되는데?”
“나도 내일 전교생 앞에서 ‘턴 투워드 부산’에 대해 발표할거야. 내가 한국인이라 더 특별하게 생각이 돼.“
“누나, 화이팅! 잘해.”
“그래, 너도 내일 11시에 친구들하고 묵념하는 것 잊지마.”
건수는 그냥 막대과자 먹는 날로 알았던 11월 11일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인지 전혀 몰랐다는것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캐나다의 어린이들도 우리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용사들을 추모한다는데, 한국의 어린이인 자신이 이대로 있을수는 없었습니다. 건수는 내일 아침에 학교 친구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함께 나누어 먹으려던 막대과자 옆에 정성들여 쪽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전해줄 요량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인터넷 게임시간을 줄이고, 빈센트 코트니씨, 유엔기념공원, 턴 투워드 부산에 대해 조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11월 11일 11시를 아시나요?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유엔군을 추모하는 날로서, 세계 어디에 있던지 한국시간 11월 11일 11시에 맞춰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들의 용맹과 희생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2021년 강원일보 주최 제2회 DMZ문학상 장려상 수상작)
신순호(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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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