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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fact)의 실종
홍성철 전 문협회장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Nov 08 2022 10:26 AM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많은 이가 애송하는 고은 시인의 간결하고 명쾌한 시다. 나 자신도 그런 적이 있기에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왜 올라갈 때는 못 봤을까? 아마 관심이 달라서였을 것이다. 내려갈 때 볼 수 있던 것도 걷는 입장이 오를 때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철학의 주요 사조인 관점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꽃이 있는지 없는지 팩트는 없고 오직 관찰과 해석만 있다고도 한다. 관점주의자 니체는 '진리는 없고 오직 해석만 있다'고 하니. 사실은 없고 관점만 존재한다는 셈이다.
솔직히 나 자신도 일방적 관점 혹은 편견에 의해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 너무나 많다. 니체가 언급했듯이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지만, 한 번 못 보았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려오거나 다시 오를 때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번 해석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배우고 익히면서 다시 발견하는 것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여겨진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니체도, 불완전한 해석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와 삶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하면서,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도록 관점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관찰과 해석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없다고 하면, 그야말로 팩트는 없다는 것에서 멈추는 모양새가 된다.
최근에 국제적인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낮부끄러운 표현을 스스럼 없이 말해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에 스캔들로 크게 보도되었다. 국가 원수의 구설수는 국민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외국에 나와 사는 한국인으로서, 현지인과 한국 대통령의 상소리에 관한 이야기 나누자면 창피한 것을 넘어 어렵게 쌓아 올린 국격이 허망하게 미끄러져 내리는 걸 느낀다. 그런데 정작 발언한 대통령은 자기가 비속어를 말한 것은 기억나지 않고 미국 대통령 이름 부분은 '날리면'이라고 한 것이기에 문제될 것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것을 보도한 언론사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니 가관이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한 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은 관점이 다르다는 핑계로 그에게 있어 '바이든'은 끝내 '날리면'이 되었다. 오죽하면 '태극기 휘바이든'이라는 풍자가 나오겠나.
대변인이 나서서 대통령의 발언을 거들고 소속 정당 의원들도 팩트를 부정하고 왜곡된 견해를 내놓는다. 모욕적 언사에 대한 일말의 사과도 없이 부끄러움을 온 국민에게 떠넘겼다. 거두절미하고 부끄러울 줄 아는 건 가르칠 내용이 아니다.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두고, 한문에 관심 적은 여러 네티즌이 '심심'을 '재미있는'의 반대말로 해석하여 화제 아닌 화제가 되었다, 많은 언론에서 젊은 세대의 실질적 문맹을 개탄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한문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낱말 뜻을 모를 수도 있다. 심심(甚深)의 한자를 모르는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심심한 사과에서 자신이 해석한 것이 맞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 네티즌은 심심한 사과의 본뜻을 배울 기회를 얻기 전에 오류가 밖으로 드러났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알아나가는 것의 시작이기에 무지의 지(無知의 知)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어리석은 결말로 이어진 소위 웃픈(웃기고도 슬픈) 해프닝이다. 관점을 지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다. 그러나 하나의 관점에 고착되면 스스로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팩트를 관찰하는 관점은 종종 한꺼번에 전체 모습(사실)을 바라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해석의 방향도 항상 올곧기는 쉽지 않다. 관찰하는 내용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확대하거나 의도적으로 해석 방향을 엉뚱하게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우연히 못 보거나 관점이 달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과는 다르다.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니 저의를 갖고 취하는 이기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기 쉽다. 사르트르는 '어떻게 살든 본인의 선택이다'라고 했고 이어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의 몫이다'라고 했다. 저의를 갖고 추진하는 왜곡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오늘날 많이 등장하는 가짜 뉴스도 편파적 관점을 객관적 사실로 부각하려는 좋지 못한 노력이다. 대통령 발언에 대한 사실을 일방적이고 왜곡된 관점으로 이해하라는 것은 억지이며 무모한 시도다. 그리고 아전인수의 저의가 뚜렷하게 노출된다.
이태원 거리 축제에서 들려온 슬픈 소식이 다시 한번 마음을 누른다. 이 참사에 대해서도 참사가 아닌 사고이어야하고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여야 하는 관점이 현 행정부에 의해 주문되고 있다. 질주 기관차가 되어 내달리는 일방주의 관점으로는 시대를 담을 수 없다.
홍성철 전 문협회장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전체 댓글
Tripolio ( illhwan3**@gmail.com )
Nov, 11, 10:37 AM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