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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장이냐 시신기증이냐의 선택
유동환(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Nov 28 2022 09:05 AM
▲ 의대생들이 대학병원에 기증된 시신으로 해부학 실험을 하고 있다.
캐나다한인장학재단 2012 장학의 밤 행사에 참가 중이었다. 주머니안의 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는 절친한 사업친구의 아들이었다.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예상대로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집사람과 온타리오 북쪽 노스베이(North Bay)로 달려갔다. 장례식장을 몰라 집으로 갔더니 부인은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해서 자기들도 임종 이후 시신을 보지못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아 그런 장례방법도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다.
친구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었다. 그때 본 친구의 부운 얼굴이 떠올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장례식 대신 다음주 메모리얼 서비스가 열려 친지들과 추억을 나눈다는데 우리는 해외여행 관계로 불참하게 되어 더욱 안타까웠다. 모든 사후처리는 친구가 살아있을 때 부부가 합의결정했음도 알았다.
친구는 프렌치 캐네디언이었고 부인은 영국계로 가끔 자기들 조상 출신국이 더 좋고 우수하다고 토닥거리곤 한 것도 추억으로 남았다. 프랑스 선조들이 먼저 캐나다에 정착했으나 영국의 연방국이 되었으니 부부싸움 거리가 하나 더 늘었던 것 같다.
그들이 미시사가에서 노스베이로 이사한 후 우리 식구는 1988년부터 1년간 거의 매 주말마다 친구집을 방문하여 두 집 애들 5명이 뛰어놀게 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것이다. 친구집은 니피싱 호숫가 경관 좋은 절벽 위에 자리잡았다. 우리는 리빙룸 건너 넓직한 베란다에서 호수를 눈아래 깔고 맥주를 마시면서 갈비를 구워먹었다. 인종은 다르지만 한 식구처럼 지냈는데 친구가 먼저 떠났다.
토론토로 돌아오면서 필자도 친구처럼 사후처리를 해달라고 집사람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집사람은 자기가 죽으면 화장해서 영묘에 안장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후 10년이 지났으나 시신기부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주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미루다가 한국일보에 최근 게재된 ‘퇴비장’ 기사를 읽고 ‘아차’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물쭈물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퇴비장(Terramation Process)전문회사를 찾았다(www.returnhome.com).
▲ 사람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만드는 퇴비장 모습.
나는 시신을 먼저 대학에 기증하고 남은 신체 부위를 퇴비장하겠다고 했더니 대답이 즉각 왔다. “뜻은 좋지만 대학실험실은 시신을 방부처리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시신의 미생물이 다 없어져서 퇴비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두 가지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사망시 상태에 따라 실험실 행이 실격하면 퇴비장을 하고 연구용으로 쓸만하다면 토론토대학교에 우선적으로 보내라고 결정했다(문의: 416-978-2692).
해부용 시신이 턱 없이 모자라는 대학교는 시신을 3년간 사용하고 뼈를 비롯한 부분은 화장해서 가족에게 보내든지 센 제임스묘지에 매장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교는 특히 뇌 부분이 모자란다고. 대학은 사망신고를 받으면 시신을 검사한 후 대학으로 이송, 연구대상으로 사용한다. 인종차별은 없다. 대학교가 시신을 놓고 연구한 결과로 얻는 기술과 지식, 여기서 연유되는 혜택은 누가 받는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선행을 의미한다.
유동환(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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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