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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가 된 식민지의 아들
최금란 전 밴쿠버한인회장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Dec 09 2022 12:11 PM
최금란 전 밴쿠버한인회장
올여름 영국을 다녀왔다. 아들네 가족이 런던에 살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 아들은 원래 시애틀에서 IT기업을 운영했으나, 유럽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지금은 영국에 머물고 있다.
올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런데도 런던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유명한 빅벤 시계탑 아래엔 사람들로 가득찼고, 버킹엄 궁전을 보겠다고 세계인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페라와 연극으로 유명한 피커딜리와 최고급 상품을 파는 상점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듯이 보였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영국인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했다. 반대는 48.1%, 찬성이 51.9%였다. 2020년 1월31일 공식적으로 EU를 떠났다. 브렉시트(Brexit) 찬성에 앞장섰던 보리스 존슨은 영국 총리가 되었고, 보수당은 의회 80석을 얻어 다수당의 입지를 굳혔다. 당시 존슨은 EU를 떠나면 매주 3억5천만 파운드의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브렉시트 이후 16% 이상 축소되었다. 영국이 유럽연합의 큰 시장을 등지면서 EU 수출은 40.7% 감소했다. 유럽과 무역 장벽이 생기면서 어부들은 도버해협에서 잡은 고기 한 마리, 조개 한 개도 쉽게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위스키로 유명한 스코틀랜드는 수출하지 못한 위스키가 창고에 쌓이고 있다.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는 물론 인도까지 통치하는 세계 최강이었다. 그것은 아득한 옛날 얘기다. 그런 영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허덕이고, 사회적으로 불안하다. EU를 떠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선전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영국 전역에서 요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10월22일 런던에서 수만 명이 보여서 다시 EU로 돌아가자고 대규모 시위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42세의 젊은 리시 수낵(Rishi Sunak)이 영국의 총리가 되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부는 인도 펀잡주 출신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아프리카 케냐로 이민 갔다. 그 후 영국으로 이주하여 아들을 의사로 키웠고, 탄자니아 출신의 약사와 결혼하여 리시 수낵을 낳았다.
리시 수낵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여 수석 졸업했다. 그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이때 인도 IT재벌의 상속녀 악사타 무르티와 결혼했다. 그녀는 부친이 창업한 Inforsys의 지분 1%를 소지하고 있다. 이것은 현시세로 환산하면 1조2천억 원에 이른다. 이런 연유로 리시 수낵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정치인이 되었다. 170cm의 비교적 단신이지만, 패션 감각도 뛰어나서 세계적인 명품 구찌 제품을 애용하고, 고급 프라다 구두를 즐겨 신는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에 인도계 CEO가 많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시애들의 마이크로소프트,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 IBM, 샤넬, 펩시콜라, 마스터카드 등 대기업은 인도계가 경영을 맡고 있다. 미국 서북부 첨단 산업의 중심지 시애틀의 IT 산업 기술자의 40%가 인도 이민자다. 그리고 미국 이민자 중 400만 명이 인도계이며, 그들 대부분이 IT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인도계는 명예나 형식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경영 방식 위주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존심 강한 영국이 식민지의 아들을 총리로 택한 것은 그만큼 영국의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리즈 트러스(Liz Truss)가 세금 감면을 주장하며 총리가 되었지만 45일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미국 IT 기업들을 인도계가 잡고 있듯이, 수낵이 영국의 경제를 살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수낵이 영국 경제를 다시 일으킨다면 21세기 윈스턴 처칠로 추앙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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