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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담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이현수(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an 03 2023 12:07 PM
이현수(토론토)
영국에는 지역마다 독특한 방언이 있다. 또 사회적 신분에 따라 쓰는 말씨가 다르다. 런던의 이스트 엔드(East End) 구역에 모여 사는 저소득층 사람들이 쓰는 저속한 영어가 카크니(cockney)이다. 예를 들어, ‘Oh, is he your son?’을 카크니로는 ‘Ow, is e ya-ooa san?’이라고 말한다.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Henry Higgins) 교수는 길거리에서 카크니 사투리로 떠들며 꽃을 팔고 있는 일라이저 두리틀(Eliza Doolittle)을 보게 된다. 히긴스 교수는 일라이저에게 상류사회의 고품격 영어를 가르쳐 6개월만에 숙녀로 변신시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자 피커링(Pickering) 대령은 내기를 건다. 결국 일라이저가 히긴스 교수집에서 기거하면서 집중적인 언어 훈련을 받고 숙녀로 변신하여 히긴스교수가 내기를 이긴다는 것이 조지 버너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희곡 ‘피그메일리언(Pygmalion)’의 요지이다.
제목의 의미는 이렇다. 피그메일리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러스왕이다. 그는 자기가 조각한 여인상(女人像)에 반하여 이 조각품을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에게 간청한다. 그가 원한대로 실제로 조각품이 인간으로 변신하자 그녀와 결혼한다. 출신이 비천한 처녀를 숙녀로 변신시킨 히긴수 교수가 그리스 신화속의 피그메일리언과 같다는 것이다.
이 극은 1913년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진 이후 끊임없이 절찬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들간의 재치 있는 대화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익살스러워 공연장의 관객 또는 극본을 읽는 독자를 매료시킨다. 이 극은 1938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버너드 쇼가 직접 각색하고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 음악을 가미하여 1956년에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My Fair Lady’이다. 이 뮤지지컬을 1964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었다. 히긴스 교수역의 렉스 해리슨(Rex Harrison)과 일라이저역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명연기가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하여 8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나는 1964년에 개봉된 영화 ‘My Fair Lady’를 여러 차례 관람했는데 이 영화가 연극보다 내용이 더 알차고 규모가 더 장대하다. 일라이저가 숙녀로 변신하여 데뷔한 장소가 연극에서는 히긴스 교수의 어머니집인데 영화에서는 경마장으로 바뀌었고 영화에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일라이저의 대사관 무도회에서의 우아한 언행(言行)도 연극에는 없는데 영화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연극에는 없는 인물들이 영화에 많이 등장하고 새로운 대사도 많이 삽입되었다. 그 중 하나가 일라이저가 힘들게 익힌 “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이다. 마지막 장면도 연극보다 영화가 더 멋있다.
버너드 쇼는 아일랜드에서 출생해서 성장했지만 사회활동은 런던에서 했다. 그는 행동파 사회주의자였고 비평가였고 소설가였지만 극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60여편의 희곡을 썼다. 그는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1938년에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는데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1950년에 94세로 별세했다. 생전에 자신이 직접 작성한 그의 묘비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묘비명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누가 번역했는지 모르나 이 묘비명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알려져 있고 많은 한국인들이 이 번역문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 번역문은 묘비명의 원문과는 거리가 먼 오역이다.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인데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를 ‘우물쭈물하다가’로 번역하다니 너무 빗나갔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렇다. ‘내가 (지구상에) 오래 머무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 즉 오래 살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인데 죽음에 대한 담담한 심경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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