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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소설가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Feb 02 2023 10:59 AM
소설가 김외숙
기사가 1월 초에 나갈 것이라고 기자에게서 문자를 받은 것은 지난 12월 말이었다.
막상 기사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그 인터뷰가 영어로 진행되었기에 행여 능통하지 않은 내 영어 표현 때문에 하고 싶었던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지난해 여름에 아마존을 통해 출간한 영문 장편소설 'El Condor'를 지역신문사에서 예사로 보지 않으면서 이루어진 인터뷰였다.
신문을 받아들고 조금 긴장하여 읽으면서 아, 내가 작품에 대해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긴 했구나, 하며 안심하려는데 어느 한 군데 숫자에서 내 눈길이 멈췄다.
“Hills, 95, has never been able to read his wife’s work because she write mostly in Korean.
“My husband, at last, he could read my book.” She said in an interview.
내 눈이 ‘Hills, 95’, 더 정확히 말해 인터뷰 중에 기자가 물어 내가 답한, 그 95란 숫자에 머문 것이다.
사실, 문장에 넣지 않았어도 내용 전달에 별 지장은 주지 않을 숫자였다.
11번째 책, 장편소설 '엘 콘도르'를 영문으로 번역, 출간하기로 한 것은 아내인 내가 책을 11권이나 출간하도록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남편, 제임스 힐스 목사 때문이었다. 아내가 맨날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쓰고는 있는데 무엇을 쓰는지 읽을 수 없으니 얼마나 궁금할까 싶었다.
목회자인 그는 실은 찰스 디킨즈의 전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소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외숙, 소설 속 캐릭터를 잘 드러내려면 찰스 디킨즈의 전 소설을 읽어야 해.’라며 그가 소장하고 있던 디킨즈의 전 작품을 앞에 내놓은 적 있는데 나는 물론, 찰스 디킨즈의 작품을 영어가 아닌, 한글로 읽었다.
3남 1녀를 둔 그가 코스타리카 여행 중에 만난 7살의 여아 ‘애나’를 입양해 3남 2녀가 되었는데 그 애나가 몇 년 전, 예순 초반에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해 전에 가족이 된 내가 애나를 내 작품에서 다시 살려내고 싶다고 한 생각이 창작의 동기가 되고, 그 인터뷰 중에 영리하던 젊은 기자가 한, 딸이 예순 넘어 세상을 떠났다면 아버지는 그때 몇 살이었느냐는 질문 때문에 95란 숫자가 대답으로 나왔었다.
기사가 나간 후 레스토랑에 가도, 약국에 가도, 마트에 가도 기사를 봤다는 사람이 말을 걸었고 이미 책을 구입해 읽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이미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 차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다른 동네에 사는 한 분의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목사님 연세가 95세라면서요?”
그분은 대뜸 95세를 강조하며 이미 알게 되었을 사실을 확인했다. 기사에서 그분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95란 숫자였나 보았다.
실은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숫자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는 집값이 얼마이며 몇 평이며, 수입은 어느 정도 되며 자동차는 얼마나 주고 샀느냐는 등의.
‘하기는 나도 남의 숫자에 관심 많은데 누굴 탓하겠노?’하여, ‘예, 맞습니다.’ 하며 수화기를 놓았다.
나는 이미 알았다, ‘예, 맞습니다.’란 내 말의 파급효과가 이미 나간 신문 기사보다 빠르게 전파될 것이란 사실을.
왜 그 긴 기사의 내용보다 숫자 하나에 그분은 그렇게 호기심을 가졌을까?
그래, 그건 분명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김외숙 작가가 어쩌다 그렇게 연세 많은 사람과...하는. 그러나 인생에서, 더구나 사람 만나는 일에 ‘어쩌다’가 어디 있을까, 다 하나님이 맺으신 필연인 것을. 사노라니 그 숫자에 이르렀고, 다들 그 숫자에 이르기를 원하니,
그것은 곧 축복의 숫자인 것을.
나는 매일, 그 축복의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을.
호기심이 좀 더 진지했더라면, 그분은 정말 알아도 좋을 'El Condor'라는, 꽤 괜찮은 소설의 가치를 발견했을 수 있었는데 그 점이 좀 아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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