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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 이로사 편집위원 (gm@koreatimes.net)
- Mar 14 2023 10:12 AM
소설가 김외숙
귀를 막고 싶던, 한때의 잔소리가 생각날 때 있다. 예전 같으면 분명 반응했을 어떤 상황에서 내 짝이 고요할 때이다. 그의 잔소리는 주로 내가 운전할 때 시작되었는데, 그를 대신해 내가 전적으로 운전한 지 다섯 해나 된 지금까지 그는 그렇게 즐겨하던 잔소리 대신 옆에서 눈을 감은 채 고요하다.
그리 유쾌하지 않던 잔소리 때의 기억은 그 시간에의 그리움일 것이다, 건강하던 때였으니까.
그날은 약속 시간이 밤 11시였다. 설마, 하고 다시 읽어봐도 내 짝의 CT SCAN 예약 날짜와 시간은 2월 9일 밤 11시였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날 그 시간에 눈이 오면 어쩌나, 밤 운전을 어떻게 하나,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가 운전하던 때가 몹시 그리웠다.
오래전, 그가 버팔로에 있던 교회에서 목회 중이었을 때, 월요일만 제외하고는 매일 집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했었다. 특히 눈이 많고 기후의 변화가 심한 버팔로 지역에 눈 폭풍이라도 오던 날에는 학교 수업도, 예배도 취소되었는데 그의 교회는 날씨를 이유로 예배를 쉰 적이 없었다.
올 수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올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예배는 드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운전을 더 이상 못하게 되자 내가 대신 하게 되었는데 특히 눈길 운전이 걱정이었다. 더구나 2월 9일, 밤 11시에 중요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눈이라도 오면 못 갈 확률도 있으니 어렵게 정해진 약속을 두고 내가 걱정이 컸던 것이다.
2월 9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종일 비가 왔다. 눈 아닌 것만으로 다행이었지만 눈 아니니 나는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Niagara On The Lake 에서 나이아가라의 병원 가는 어두운 길을 나 혼자 달릴 일을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밤에 우리가 왜 병원엘 가야 하는지를 자꾸 잊어버렸다. 병원에서 밤중에 오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지 외투를 입으면서 ‘It’s funny time’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맞아요, funny time. 밤 11시에 CT 촬영하러 오라는 병원은 나도 첨이야.’
오랜만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그를 향해 내가 맞장구 했다.
비 온 후 나이아가라의 늦은 밤길은 더 어두웠고 오가던 자동차도 없었다. 되도록 인가가 있는 길로 운전을 하던 중에 내 앞에 자동차 하나가 다른 선에서 합류했고 나는 그 자동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외딴길에 혼자 걷다가 길동무를 만난 것 같았다.
그가 건강하던 때 내가 가끔 운전하면 늘 너무 빠르다고 했다. 스탑 사인에서 안 설까 봐 늘 ‘스타압’ 하고 먼저 말로 안내했고, 특히 노란 신호일 때 길을 건너면 기겁했다. 그것은 결국 잔소리였는데, 그의 잔소리 때문에 내가 더 긴장하고 화날 때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기는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세월을 운전한 그의 눈에 나는 당연히 초보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잔소리로 날 열받게 하던 그가 건강을 잃은 후부터는 말수를 줄였다. 그는 내가 노란 신호일 때 건너가도 아무 말 않았고, 속력을 좀 더 내도 천천히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의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나는 맨날 질문을 해야 했다.
‘Funny time’이라며 귀찮아하던 그는 내가 긴장하며 앞차를 따라가든 말든 전혀 관심 없다는 듯 고요했다. 잠이 든 것 같았고 앞차는 이 야심한 밤에 하나님이 날 위해 붙여주신 것 같았다.
그때 저만치 사거리에서는 신호가 노랑으로 바뀌었고 앞차가 신호를 건넜다.
따라가던 나도 건널까 말까 한순간 망설이다가 행여 앞차를 놓쳐버릴까 봐 속력을 내어 따라 건너버렸다, 그것은 찰나에 있었던, 무리한 시도였다.
“불법이야, 외숙!”
가슴은 쿵쿵 뛰고 손엔 진땀이 나는데 자는 줄 알았던 그가 소리쳤다. 사이렌 울리고 불 번쩍거리며 경찰차가 따라온 줄 알았다.
“외숙, 당신 얼마나 위험한 운전 했는지 아니?”
그가 다시 말했다. 그는 깨어서 내가 제대로 운전하는지를 다 감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감시가 아니라 밤중의 운전이 불안해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알아요, 나 잘못한 거 맞아.”
여전히 앞차를 따라가며 내가 잘못을 인정했다.
“다른 방향에 차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
상상만으로도 소름 돋게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도 전에 일 만날 뻔했잖아!”
그는 우리가 병원에 가고 있다는 사실도, 노란 불일 때 건너면 다른 방향에서 달릴 차 때문에 위험하다는 사실까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좀 심하시다!”
그것은, 운전할 때마다 나를 더 긴장하게 하던 그 잔소리였다. 아픈 이후부터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에 한 마디도 먼저 말을 걸지 않은 그가 오랜만에 한 잔소리였다.
“당신 잔소리 싫어서 다시는 불법 안 할 거야!”
잘한 일도 없으면서 내가 큰소리했다.
“나, 다시는 외숙 차 안 탈 거야!”
“그럼 남친 태우지 뭐.”
내가 약을 올렸다. 오랜만에 들은 그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들어 마땅한, 일일이 옳은 잔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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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 편집위원 (gm@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