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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사람 25
변은숙/시인
- 이로사 편집위원 (gm@koreatimes.net)
- Apr 02 2023 07:07 PM
몬트리올 사람 25
변인숙/시인
4월 아침 함눈이 내린다
일어나자마 창밖으로 와~하고 터지는
축제의 함성 같은
어젯밤 잠들기 전 남은 기억의 보푸라기 같은
아무 대책 없이
꽃잎 날리듯이
그리하여
오늘
곁가지 끝에 매달린 인연마저 털어내고
세상과 화해하는 날로 삼을까
후회도 덮고 상처도 지우고
이르게 시작해 볼까
길모퉁이에 열리는 적멸의 정거장
하얗게 벗겨진 아침 인사를 만날까
몬트리올 사람 23
늪에 빠진 짐승을 보았어
빠져서 허우적대는 붉은 눈동자를
폭우가 쏟아지고
이파리들이 물들며 떨어져
난처하게 자꾸 달라붙는 가을날
나는 젊음을 빠져나가는 기차표를 사서
플랫폼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한 시절의 마디가 거칠게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
비가 그쳐도 온몸이 젖어서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는 날이
차창에 부딪혀 올 때
무심한 인연에 치인 한 여자를
젊음의 틈 사이에 세워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지
기차가 비명을 지르며 떠날 때까지
갈기가 다 뜯겨나간 남루한 기억을 털어내며
낯선 얼굴로
내가
변은숙/시 (esbyun04@hotmail.com)
1980 캐나다 문협 시부문 당선
1999년 시대문학 신인상
2001년 몬트리올 교육청 주최 시부문 은상 수상
2012년 시집 '몬트리올 사람' 출판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몬트리올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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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 편집위원 (gm@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