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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삶
정병국(칼럼니스트·시애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Apr 06 2023 09:46 AM
노인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흐트러지기 쉽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삶의 의욕이 별로 없고 그저 하루 하루 그럭저럭 살아가기 때문이다. 젊었을 적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그날의 할일과 계획을 검토하고 그대로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은퇴하여 시간이 많으면 별로 할일이 없어서 비실대기 일쑤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할일은 더 많고 시간은 짧다. 왜냐하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어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허송세월 하는 사람은 나중에 크게 후회하지만 이미 시간이 지났으므로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노인학교에 나가서 잡담을 하거나 장기를 두는 것이 고작인 노인이 있었다. 어느날 장기 둘 상대가 없어서 멍하니 있는데 한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렇게 앉아 계시느니 그림이나 그리시지요.” “내가 그림을? 나는 붓을 잡을 줄도 모르는데....” “그야 배우면 되지요.”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나는 이미 일흔이 넘었는 데...”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의 연세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더 문제인데요” 젊은이의 그런 핀잔은 곧 그 할아버지로 하여금 미술 실습실을 찾게 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 나이가 가지는 풍부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성숙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붓을 잡은 손은 좀 떨렸지만 그는 매일 거르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이 새로운 일은 그의 마지막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
그가 바로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했던 해리 리버맨{Harry Lieberman·1880-1983)이다. 그의 그림에는 인생의 깊이와 열정이 담겨져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는 폴란드 출생, 유대계 미국인으로 26세 때 단돈 6달러를 들고 미국에 정착했다.
그 후 그는 빈민가의 유대인 지역에서 재단사, 현금출납원 등을 지낸면서 돈을 모았고, 제과업으로 자수성가해 부자가 되었다. 그는 어디서나 일을 해서 돈을 벌었고 하는 일마다 성공했다.
그는 81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의 격려 속에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그림을 남겼으며 22번째, 101세에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했다. 참으로 용기 있고 끈기 있는 예술가다. 사람의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50이나 60이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남은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이미 늦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나? 그러나 아무리 늦게 시작해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남보다 늦게 시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든가, 너무 늦지 않았을까? 등의 생각은 떨쳐버려야 한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 남들이 포기해 버린 것을 하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 나이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정자에서나 쉼터에서 장기를 두거나 바둑을 두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머리도 좋아하고 용기도 생긴다.
지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 몸과 마음을 젊게 만든다. 인생살이에서 너무 늦은 것은 없다. 다만 시작을 하지 않을 뿐이다. 역사에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 남을 예술가는 모두 나이 70 내지 80이 넘어서 대작을 완성했다.
오래 살아온 경험과 사유함이 그 어떤 값진 학문이나 연구보다 더욱 귀하고 존귀하며 실감이 난다. 일을 하는데 너무 늦은 시간은 없다. 나이가 들고 몸이 전만 못해도 일을 시작하라. 그리고 그 일에 정열과 기술, 힘을 쏟아라.
그러면 몸에 힘이 생기고 새로운 감회와 애착이 깃든다. 사람의 몸은 나이가 들수록 쇠약하나 정신과 마음은 결코 늙지 않는다. 오히려 풍부한 경험과 연구에서 나온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 남들이 포기해 버린 것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고 반드시 성공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용기와 패기를 가진 사람은 결코 쉽게 늙지 않는다. 성장한 과정이 가난하고 비참하다고 성공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미리 겁을 내고 시작을 하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늦게 시작하여 실패를 한다고 해도 시작을 하지 않고 주저앉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용기 있는 삶은 무엇을 연구하고 시도하며 시작하는 삶이다.
정병국
1938년 경기도 평택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대건설 무역부 근무· 1972년 미국 이민· 하와이 이민부 근무· 1978년부터 미주 한국일보 등에 고정칼럼 연재. 현재 워싱턴주 시애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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