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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기계 대하기
김인숙/수필가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pr 05 2023 10:22 AM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기계 도우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집안 청소를 한다든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든다든가, 병원에서 어려운 수술을 돕는 등 한가지 정해진 일로 도움을 주는 로봇들의 사용을 보아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방 한구석에 서 있다가 듣고 싶은 음악도 틀어주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해주며 식구의 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사람과 같이 이름도 갖고 있어 기계를 쓰는 사람은 스위치나 리모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의 이름을 부르면 그것으로 시동이 걸려 시키는 일을 진행해 나간다. 옆방에서 듣고 있으면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20, 30대의 조카들이 모여 담소를 나눈다. 한 조카딸이 얼마 동안 만나던 남자친구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가끔 그의 집에 놀러 가 보면,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로봇을 사용한다 했다. 불을 켜라, 오늘 들어온 이메일을 읽어라 등 여러 가지 지시를 하는데 그 말투가 늘 명령조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빨리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고 했다. 몇 번 그런 모습을 보니까 조금씩 생소해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헤어졌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에구, 그 총각 기계한테 공손치 못해서 애인에게 차이고 말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딸의 연애사는 처음엔 세대가 다른 젊은 여성의 예민한 결정이라는 감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누구와 만나 인연을 맺게 되면 상대방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며, 앞으로 이어갈 서로를 향한 친분을 귀하게 여기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한편으론 늘 상대방과 우열을 가늠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후자의 경우 누가 갑인지 누가 을인지 생각하며,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따라 하는 행동과 태도가 많이 달라지는 사람들이다.
친정어머니는 90이 넘으셨고, 뇌출혈로 인해 기억력이나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생활의 여러 면에 도움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부 기관에서 보내는 개인 도우미들이 집을 방문하여 목욕을 도와준다. 계속 같은 사람이 오면 좋으련만 여러 가지 이유로 가끔씩 사람이 바뀐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사람마다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이 다르다. 아기나 장애인을 다루듯 혼자 자신의 방식대로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 상황을 설명하며 어머니의 의견을 참고하는 사람, 또 간혹은 행동이 느린 노인의 움직임이 답답한지 언성을 높이며 명령을 이어가는 사람 등 다양하다. 어머니는 그들의 고객이지만, 기억력이 없으니 많은 경우에 항의나 불평을 삼가한다. 한 사람이, 앞에 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내면에 쌓여 온 삶의 경험과 심리적 변화의 흔적이라 생각된다.
기계를 향해 소리를 치는 청년이나, 치매 노인에게 딱딱거리는 도우미나 모두 나름대로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해야만 하는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습관은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 말투는 가족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여자친구 등 인연이 맺어지는 많은 사람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조카딸은 남자 친구의 언성 높은 말투를 들으며,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어투로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행동과 삶의 형태들이 좀 더 많이 표면화 되고있다. 그 예로, 특별한 이유 없이 경찰들에게 수시로 심문을 당해야하는 흑인 청년들의 일상, 곳곳에서 성희롱을 당하며 사는 많은여성, 권력의 강 약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이 좀 더 자주 세상에 알려진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행동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로 남는지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따른 행동의 책임의식과 개선을 요구하게 된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약자나 소수자를 보호하는 사회로 가까이 간다면 과학의 발전이 생활의 발전을 넘어 진보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우리의 하루는 사람들과 엮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과 보내는 날이 올 것이다. 기계들과 섞여 산다고 하여 우리 본연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어 볼 기회가 많으니, 감정을 여과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침 글을 마치고 눈을 돌리니, 책상 위의 핸드폰에 경고 문자가 뜬다. ‘오늘 480보밖에 걷지 않았으니 몸을 움직이는 일을 시작하라''고 한다. 맞는 말인데 이젠 머리를 쉬며 드라마를 한 편 보고 싶은데 핸드폰의 충고를 외면해도 되는지 망설여진다.
김인숙/이메일: myspeechlady@hotmail.com
2006년 (에세이 21)완료 추천, 공저 수필집 .‘바다로 가는 자전거’. 2011년 캐나다한인문인협회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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