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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머니
김정수/수필가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pr 17 2023 07:20 AM
기억은 당시의 성숙 정도와 가치관에 따라 일방적이거나 주관적이기 쉽다. 그래서인지 같은 기억이라도 때론 부정적으로 때론 긍정적으로 변화하며 거듭나는 것 같다.
내게 각인된 친할머니의 모습은 인자하지 않고 편애가 심한 부정적 이미지였다. 나이 마흔에 삼대독자인 아버지를 낳았으니 내 인생에서 함께한 할머니 나이대는 대략 칠십 초반에서 팔십 중반이었을 터이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 억지로 미소 짓지 않고서는 주름살 패인 얼굴 탓에 화난 표정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웃는 적이 거의 없었던 할머니는 늘 무뚝뚝하고 화가 난 모습이었다. 기다란 곰방대를 물고 있다가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눈을 부라리며 재떨이에다 곰방대를 탁탁 친 뒤 혀를 쯧쯧 차곤 하였다.
나는 삼 남매의 중간이다. 위로 연년생인 오빠, 아래로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이 있다. 오빠는 집안의 장손이라 특별히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일 년에 두어 차례 우리 집을 방문했던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했다. 시골에서 맛있는 음식과 귀한 물건을 들고 오면 동생과 나는 뒷전이고 "우리 장손!" 하면서 항상 오빠만 챙겼다. 게다가 같은 여자이면서도 툭하면 여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그런 할머니가 불만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여자로 태어난 것과 맏이가 되지 못한 것이 유난히 속상했다. 할머니에게 정이 들 리가 만무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드러누우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내가 기거하던 방을 할머니에게 내주어야 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할머니 상태는 집안 전체를 침울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냄새가 큰 문제였다. 가끔 놀러 오던 친구들도 데려올 수 없었다. 틈틈이 할머니를 보러 서울에서 고모들과 친척들이 내려오곤 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는 그들에게 우리 가족이 당신을 잘 돌봐주지 않는다는 둥 인정머리가 없다는 둥 하며 고자질해서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할머니 때문에 집안이 자주 시끄러워졌다. 그런 일을 벌이고 난 뒤, 모른 척 태연자약하던 할머니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1년 남짓 투병하던 할머니는 어느 날 밤,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나는 할머니 머리맡에 있는 책상에서 공부하다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할머니의 숨소리가 여느 때와 달리 좀 가쁘긴 했으나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싸늘한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내가 잠든 사이 할머니는 돌아가셨던 것이다. 눈을 부릅뜬 채, 마치 돌아가시기 직전 머리맡에 있는 내게 할 말이 있었던 듯한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 방도 찾았고 친구도 데리고 올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고약한 냄새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동안 꿈속에서 내 방 미닫이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와서 나를 놀라게 하곤 하였다.
나는 나의 할머니보다 이십여 년 젊은 나이인 오십 대 초반에 친할머니가 되었다. 손녀는 외동이라서 나를 할머니로 여길 때도 있지만 자신의 놀이 친구로 여기는 적이 더 많다. 아버지의 어머니인 친할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보다 왠지 친근감이 덜하다는 선입견은 내게만 있는 걸까. 손녀에게 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친할머니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려 한다는 것을 의식할 때가 있다. 내게 각인된 친할머니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친근하며 살갑게 손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나 역시도 아이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손녀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꼬옥 안겨 올 때의 그 기분은 할머니가 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구한말에 태어나 마흔이 되어서야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을 수 있었던 여인. 집안에서 글을 깨우친 것 말고는 학교 문턱이라곤 가본 적 없던 여인. 일본 유학 중 신여성과 눈이 맞아 딴 살림을 차린 남편을 평생 기다리며 살다 간 여인. 그 여인이 다름 아닌 친할머니였다고 생각하자 맏손자에게 유독 애정을 쏟았던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따스한 미소를 짓지 못하고 정겨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던 할머니의 존재는, 잊힌 듯했으나 예기치 않은 시점에 이처럼 소환되어 맴돈다. 그 기억이 비록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보다 아쉬운 모습일지라도, 그분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니 기분이 묘해진다.
불현듯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손녀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궁금하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은, 나와 손녀의 관계가 단둘에게서 그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미묘한 기분에 닿았기 때문이리라. 거기에 친할머니도 함께.
김정수(karen1961@naver.com)
2000년 캐나다 이민, 2018년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신춘문예 수필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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