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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시루떡
박윤희/수필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Apr 28 2023 10:14 AM
토론토에서 남서쪽으로 400여킬로 떨어진 소도시 윈저.
그 낯선곳에 아들이 첫집을 사서 이사가던 날,나는 정성스레 팥시루떡을 했다.내 생애 팥시루떡을 제물로 바칠거란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30년간, 7번의이사를 하면서 무언가를 소원해 본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다’
너른 쟁반에 팥을 펼쳐놓고 알갱이 대부분과 다르게생겼거나 찌그러진것 그리고 갈라진 틈이 생긴 팥을 샅샅이 살피며 솎아낸다. 두루두루 다른 팥과 잘 어울리는 순정한 팥만을 골라깨끗이 씻어 냄비에 앉힌다. 1시간여, 낮은불에서 팥을 익히면 팥이 익으며 물기가 날아간다.
그때 익은 팥을 나무젓가락으로 살살 저으며 마저 물기를 날리고 한꼬집의 소금과 약간의 설탕을 넣어 숟가락으로 톡톡 쳐 알갱이를 부드럽게 부수어 팥고물을 만든다. 준비해둔 찹쌀가루에 물과 약간의 소금과 설탕을 섞어 흐르도록 걸쭉한 반죽을 한다. 여기는 서양, 캐나다가 아닌가. 시루가 없으니 베이킹 쟁반에 팥고물을 한켜 깔고 찹쌀반죽을 부어 평평하게만든 후, 남은 팥고물을 마저 부어 골고루 찹쌀반죽을 덮는다.
포일을 덮고 화씨380도에 45분을 굽고 포일을 벗긴후10분여뜸을들인다.
유독 신비롭고 고른 팥시루떡이 되었다. 베이킹 쟁반에 구운 찹쌀팥떡을 나는 굳이 팥시루떡이라 부른다. “시루”라 이름 지어주면 절로 신령한 느낌이 난다.
여느때의 나는 팥시루떡을 하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잘라 이웃과 나눈다. 하지만 이번엔 단 한개의 팥고물도 허투루 떨구지않고 붉은색 찬합에 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엄마가 만들어 주신 금빛보자기로 찬합을 묶었다. 보자기를 묶으며 많은 기원을 함께 담았다. 아들아이의 건강과 새로운 이웃과의 화합과 장시간 오고 갈 길위에서의 무사고를 빌었다. 이 사소한 팥알갱이들이 아들을 지켜줄거라 생각하는 나를 어리석다 여기기는커녕 장하다여기며 그 의식을 치루었다.
윈저로 가는길, 남편이 운전하는동안 나는 조수석에 앉아 시루떡을 담은 찬합보자기를 꼭 안고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건 내 기원의 전부였으므로 소중히 다루어져야 마땅했다.
아이 집에 도착해 서둘러 먼저 집에 들어갔다. 마치 조왕신을 섬기듯 부엌으로 들어가 싱크위에 시루떡이 든 찬합을 놓고 기도하듯 쓰다듬었다. 아들과 남편이 한번에 몇개씩의 짐을 갖고 들어와 짐을 부리고는 잠시 앉으려는 순간, 나는 두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소리내 기도를 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서로 손을 잡아 둥그렇게 띠를 두른 모습은 평소엔 하지 않는 모양새라 그자체만으로도 숭고한기분을느꼈다.소리내어 기도할 때, 아이가 콧물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오로지 자신의 안녕과 건강을 기도하는 엄마의 기도에 아들은 무슨생각을 했을까?
예전 신랑신부 혼인날에 신붓집에서는 함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북쪽으로 향한 곳에 돗자리를 깐 다음 상을 놓고 그 상을 붉은색보로 덮은 뒤 팥시루떡을 그 상위에 얹는다.
함이 들어오면 함을 시루위에 놓고 북향재배한 후에 함을 연다. 이때 사용하는 떡이 봉채떡이다. 붉은 팥고물은 재액을 막아준다고 믿음이다. 귀신이 붉은팥을 싫어한다고 믿어 고사떡으로도 흔히 쓰는 이유다. 결혼전, 아버지는 떠들썩한 함진아비들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신랑은 불만없이 홀로 함을 들고 반듯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현관문 앞에 서있었다. 의관정제하신 아버지가 사위를 집안으로 들이셨을 때는 이미 엄마가 새벽부터 손수 준비한 시루떡이상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사위가 지고온 함을 두손으로 장히 공손하게 받아 시루위에 올려두시고 지그시 눈을 감으셨다. 여린 잿빛 한복을 입은 엄마는 서둘러 앞치마를 풀어 옷매무새를 다듬으시고 시루를 향하여 두손을 모아 비비며 무언가를 빌었다. 그모습은 마치 순결한 아부같았다. 곡진한 엄마의 속언어를 알지 못하지만 엄마의 기원이 무엇이었을지는짐작하고도 남는다.
엄마는 돌아가실때까지 크리스천이셨다. 밤마다 잠자리에 앉아 자녀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기도하시던 엄마는 그날 그붉은팥에게 마귀가 틈타지 않는 딸의 평탄한 결혼생활을 기원하셨을거다. 내려오는 오랜 풍습을 경시할 용기가 엄마에게는 없으셨으리라. 나는 엄마의 기원대로 평탄한 삶을 살아냈는지 아직은 답을 말할 수없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기도를 마친후, 보자기를 풀고 찬합의 뚜껑을 열어 훤히 보이는 팥시루떡을 힐끗 보았다. 하나님이 아들을 위해 모든일을 하시겠지만 자네도 할일을 하라는 지엄한 의미였다. 아들에게 바치는 이모든 의식의 주체가 나 일바에야 의식을 받는 상대가 많으면 어떠하랴. 부처님의 공덕에도, 하나님의 사랑에도 그리고 붉은팥의 신비함에도 나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이미 성인이 된 아들의 새로운 출발앞에 내 종교의 일체감은 그리중요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도않았다. 그저 나의 안심과 아이의 안신을 위한 의식이었을뿐.
-박윤희(yunie1966@gmail.com)
2020년캐나다한인문인협회신문문예수필부문가작당선
2021년<에세이21> 2회추천으로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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