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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원 및 간호사와 캐나다외환은행
김남수(전 캐나다외환은행 초대지점장)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May 29 2023 02:15 PM
한국영화 ‘국제시장’은 전세계적으로 많은 한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캐나다 교민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서독파견 광원 및 간호사로 지원하여 낯설은 이국 땅에서 험난한 삶에 도전한다.
외국에 나가 외화를 벌어서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만으로 자기 전공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광원에 지원하여 독일로 갔다. 생소한 탄광에서 3년간의 고된 근무를 마치고 많은 분들이 이민문호가 활짝 열렸던 캐나다로 이주하였고, 이들은 캐나다 한인 이민정착의 선구자가 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가는 곳이면 세계 어디에나 동행했던 기관이 있다.
한국외환은행(Korea Exchange Bank)이다. 외환은행은 외국으로 진출하는 개인과 기업의 외환거래 및 수출입 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1967년 한국은행 외국부에서 독립하여 특수은행으로 설립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은행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는 곳이면 세계 어디에나 함께 나갔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되자 이들의 국내 송금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프랑크푸르트에 지점을 열었다. 그후 월남전이 발발하자 사이공에, 중동에 건설 붐이 일자 바레인에, 최근에는 중국이나 베트남까지 한인들이 나가는 곳에는 언제나 뒤따라가 금융업무를 지원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광원들과 간호사들이 가족과 친지들을 캐나다로 대거 초청하면서 교민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외환은행의 캐나다진출이 가시화되었다.
처음에는 사무소를 개설하여 교민들의 예금과 대출을 본국에 연결하여 지원했으나 캐나다 정부가 외국계 은행에 문을 열면서 외환은행이 세계 유명은행 9개 은행에 포함되어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만큼 선두를 달렸던 은행이다.
필자는 1981년 캐나다외환은행 개설준비요원으로 토론토에 부임했다.
당시 교민들의 경제력은 지극히 취약했다. 전국 한인 인구는 2만 명 정도였다. 외은의 주특기 외환이나 수출입 업무로 수익을 내기에는 규모가 미약했다. 삼성이나 현대 등 주재상사의 본국과의 업무는 미국지사가 관장하고 있어서 다시 찾아오기가 힘들었다.
당시의 수출입 업체로는 도널드 초이 무역회사, 한국식품, 영리무역 정도가 있었다. 지점은 어렵사리 개점했지만 일감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개인들이 하는 가게대출에 초점을 맞춘 소매금융으로 은행의 영업 칼러를 바꾸었다.
광원 및 간호사로 캐나다에 도착한 신혼부부들은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맥스(Mac’s)나 벡커(Becker) 등 체인스토어 편의점에서 또 일했다. 몸은 하나지만 '투잡’을 뛰는 것이었다. 이분들의 목표는 돈을 모아서 유대인이나 이탈리아인들이 주로 경영하는 편의점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은행이 문호를 개방하자 가게 구입자금을 대출받으려고 몰려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가게대출에 초점을 맞춘 사업계획은 적중했고 외은은 개점 다음해부터 이익을 냈다. 이렇게 단시일 안에 이익을 내는 지점은 은행역사상 이변이었다. 이래서 가게를 구입한 한인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고 이들의 상당수가 서독 광원·간호사 출신이었다. 1983년에는 온주한인실업인협회가 추진한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은행은 이 계획을 앞장서서 지원했다.
온타리오에서 한인편의점 수는 한때 2,500개를 넘었고 협동조합 매출액은 연 10억 달러가 넘는 북미에서 성공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광원·간호사들의 근면성, 정직성, 도전적 정신이 기여한 것이다. 이러한 후광으로 교민들의 생활 수준은 향상됐고 한인사회는 주목받는 모범커뮤니티로 자리잡았다.
현재 캐나다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은 연 수익 1천만 달러가 넘는 성공한 현지 법인이다. 이 역시 광원·간호사들의 피땀과 성실성 덕택이라면 지나칠까.
은행은 이들의 가게대출을 담보나 특별한 서류도 없이 지원했다. 그러나 부도를 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떤 분은 장사가 부진하자 감자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은행돈을 완불, 감동을 자아냈다.
그후 도착한 많은 한인들이 광원·간호사 선배들이 땀 흘려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수월하게 산다. 낯설고 물설은 외국 땅에서 영어도 서툴고 가진 것도 없이 피나는 노력 하나로 쌓아 올린 그들의 삶의 일화는 한편의 드라마다.
먼 이국땅의 전혀 생소한 탄광 굴 속에서 젊음의 일단을 바쳤고 또 캐나다에 와서도 맨주먹으로 도전해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인 이민선배들이 이제는 세월을 어쩔 수 없어 한 사람 두 사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오는 3일 열리는 이들의 독일 파견 60주년 기념음악회는 그래서 의미가 깊다. 동포사회가 이 행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남수(전 캐나다외환은행 초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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