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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3)
단편소설 (2023. 시와정신 해외문학상 수상작) - 김외숙
- 관리자 (it@koreatimes.net)
- May 30 2023 12:48 PM
비행기는 마치 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하다. 나는 불편했던 몸을 조금 움직인 후 자리로 돌아왔다. 아랍계로 짐작이 되는 옆 좌석의 남자는 랩탑으로 뭔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랩탑 화면에는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그래프며 복잡한 숫자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눈이 깊고 짙은 눈 섶을 한 옆 남자는 내가 자리를 떠났다 돌아와도 화면에다 골몰하느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다, 몇 시간 비행할 동안 내가 옆 좌석의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엔지니어일까?
나는 문득 알리를 생각한다. 내 연구실 책임자로 있는 레바논 출신의 남자. 무슬림이면서도 종교에도 결혼의 대상에도 그리 경계를 두지 않는 사람이다.
‘이젠 내 아이를 갖고 싶어.’
이미 장성한 아들을 몇은 뒀을 나이에 ‘내 아이’라며 청혼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한, 결코 넘지 못할 경계선 하나를 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의외였다. 평소 그의 깊은 눈길이 내 몸을 훑는 느낌이 있으면 마치 그가 내 성감대를 건드리기라도 한 듯 나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그것은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기도 했고 그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업무적인 시선과 지극히 사적인 시선의 구분을 비교적 선명하게 한다. 알리와 내가 업무를 위한 대화를 나눠야 할 때는 그야말로 방금 날이 선 메스가 지나간 듯 맺고 끊음이 분명해도 우리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서로의 시선이 가장 은밀하고도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음을 느낄 때, 그래서 한 몸으로 어우러질 때의 시선은 또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알리와 나는 공과 사를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했는데 적어도 알리가 그 방법으로 청혼하기까지는 그랬었다.
‘내 아이를 갖고 싶다.’라는 말을 한 것은 정말이지 뜻밖이다. 우리, 그러니까 알리와 내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공유는 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서나 자식을 사이에 둔 관계는 아니었다. 나는 그가 이혼한 남자인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장성한 자식도 몇 두고 있는 줄 알았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한 이유는 내가 예상하는 장성한 자식의 연령 만큼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유일할 혈육을 내게 원했다.
그러나 알리로부터 ‘내 아이를 갖고 싶다.’라는 말로 청혼받은 순간부터 이상하게 나는 알리에 대한 나의 몸과 감정의 반응을 경계하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그에 대해 이전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보다는 내 속의 어떤 요인이 그러한 감정을 가라앉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자신의 나이를 의식한 알리는 나의 반응에 조급해 하지만 나는 흠칫 놀라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는 왜 알리의 청혼에 그렇게 반응한 것일까? 나는 이번 여행,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뚜렷한 이유를 감지하지 못했었다. 내가 오래전에 떠나보낸 한 생명을 나도 모르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안하구나,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어머니가 유언처럼, 신앙고백처럼 힘겹게 말씀하지 않았다면 자식을 갖고 싶다는 말의 알리의 청혼 이후부터 내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던 이유를 나는 몰랐을까? 알고 있었어도 새삼 들추어 아픈 부분을 다시 일깨우고 싶지 않았기에 묻어둔 채 알리에 대한 내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말로 그 일을 일깨우셨고 나는 내 마음의 개운치 못한 이유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된 것이다. 비록 철없는 나이였지만 열 달을 품었었던 아기의 얼굴도 보여주지 않은 채 보내버린 어머니의 야박함과 그것으로 다시는 내 속으로 아기를 낳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던 그 일.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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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it@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