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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소설가 김외숙


Updated -- Jun 01 2023 09:45 AM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May 31 2023 09:50 AM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연을 맺으며 인생을 시작한다.

  부모와 형제, 친인척의 인연, 친구와 스승, 부부 등, 여러 의미, 여러 이름의 관계를 맺어 정을 나누며 살아가게 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들며 사는 것은 홀로 태어난 인생이 외롭지 않도록 하늘이 내리는 복일 것이다.

  어느 이름의 인연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특히 부부간의 인연은 남남끼리 만나 하나가 된 관계이니 여간 깊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깊이 관여해 서로를 책임지고 의무를 다해야 하는, 무거운가 하면 함께 하므로 경쾌하고, 하늘이 내린 인연이므로 신성한가 하면 남녀가 만났으므로 로맨틱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 다양한 의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더러 이혼이란 인위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파기하기도 하지만, 그러함에도 부부의 인연은 둘 중 어느 한쪽이 명을 다하지 않는 한 그 관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예순 해란, 긴 세월을 부부로 살다가 이제 남편 먼저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이 땅에서의 인연을 마무리한 부부가 계신다. 캐나다 토론토의 한인 이민자들을 위해 여러 측면에서 많은 봉사를 하신 정동석 목사님과 민혜기 선생님 부부이시다.

  예순 해 부부의 인연 중 서른 해를 교통사고로 인한 불편한 몸으로 사신 분, 교통사고와 함께 삶이 무너지고 이 땅에서의 꿈도 희망도 함께 중상당해야 했으니 말할 수 없이 가혹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고단했을 삶을 마무리하고 그러함에도 오직 하나의 소망이었던 천국으로 떠나셨다. 참으로 지난했을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보상은 예수님을 뵈면서 다 받으실 것이다.

  한순간의 사고로 장애를 안고 사실 수밖에 없던 남편과 남은 서른 해를 함께하신 분, 그래서 남편과 함께 품은 꿈과 희망을 함께 잃어야 했던 분, 하늘이 맺어 주신 부부였기에 그 불행이 아내의 불행이 된 그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온 분, 둘이 서로 몸과 마음을 합해도 하나 되기 쉽지 않은 인생에 건강 잃은 짝을 부축하며 서른 해를 함께 한 분이 바로 민혜기 선생님이시다. 두 분이 감당하신 것은 어느 편이 더 무겁거나 가벼웠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때로는 주저앉게도 했을, 함께 짊어져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의 무게였을 것이다.

  고 정동석 목사님, 민혜기 선생님 내외분과 나와 내 짝 제임스 힐스 목사와의 인연도 꽤 깊다.

  20년 전, 낯선 땅에 와 낯선 삶에 적잖게 휘둘린 내게 민혜기 선생님께서는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낯섦에 휘둘려 마음 붙이기 힘들어 한 내게 ‘나도 그랬다’ 라며 늘 쓰다듬어 마음 붙이게 하셨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다.

  10년을 차이 두고 같은 날에 태어나신 두 목사님은 목회 가운을 물려받아 입은 인연까지 두고 있다.

  제임스 힐스 목사가 연세 여든하나에 찬송가 “참 아름다워라”(This is My Father’s World)를 작시하신 말트비 뱁콕(Maltbie Davenport Babcock)목사님의 목회로도 유명한, 서부 뉴욕의 락포터 제일장로교회에서 1년간의 목회 부름을 받았을 때, 교통사고로 목회를 그만두셔야 했던 정 목사님이 당신의 가운을 입으실 수 있겠느냐는 제의를 하셨다. 정 목사님보다 열 살 연세가 많던 힐스 목사는 동생 같으셨던 정 목사님의 의중을 이해하셨다, 그리고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고 정 목사님의 가운을 입고 락포터 제일장로교회에서 한 해 동안 설교했다.

  부임한 첫날 예배에서, 설교 전 힐스 목사가 말했다, ‘나는 오늘 특별한 가운을 입고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섰다. 이 가운은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목회를 할 수 없게 된 내 친구 정 목사님이, 가운이라도 주의 말씀을 전할 강단에 설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 며 준 것이다’라고.

 정 목사님이 얼마나 간절히 설교를 원하셨던지를 힐스 목사가 이해한 것이다.

  이제 정동석 목사님이 먼저 예수님 뵈러 떠나셨으니 그 인연도 마무리되었다. 부부간에는 상실과 고통과 극복의 시간의 인연이었고, 두 목회자 간에는 서로 간의 존중과 이해의 시간이었으니 결국, 질기고도 깊고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그 깊은 인연이 산 사람에게는 문득문득 떠오를 그리움이겠지만 슬퍼할 이유는 없다. 목사님은 이미 흑암 중에서 오직 바라보며 붙잡았을 바로 그 예수님과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 사람들은 추억하며 남은 시간을 잘 살면 될 것이다.

  천국에서 목사님이 그러하실 것이듯, 민혜기 선생님도 남은 삶을 누리시면 좋겠다.

이제야말로 온전한 민혜기의 시간이 아닌가?

인연에 최선을 다하셨으므로 당당히 누리셔도 좋을, 바로 그 시간이다.

김외숙.png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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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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