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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 대지
이현수(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un 06 2023 09:14 AM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60대에는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펄 벅(Pearl S. Buck)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녀의 소설 중에서 특히 ‘대지(The Good Earth)’와 ‘북경에서 온 편지(Letter from Peking)’가 원서로 널리 읽혔다.
미국에서 태어난 펄 벅은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 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녀는 미국에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농업 교사인 남편과 함께 다시 중국에 가서 5년을 살았다. 작가가 된 그녀는 다수의 장편과 단편 소설을 썼고 자서전과 전기도 여러 편 썼다. 그녀는 종교적 근본주의, 인종 편견, 성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사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중국에 관한 소설을 많이 쓴 이유로 미국내에서 중국통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소설을 읽은 많은 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1930년대에 일본과 싸우는 중국을 지원하는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였다고 한다.
펄 벅의 대표작인 ‘대지’는 1931년에 발간되었다. ‘대지’는 20세기초 중국 농촌 실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가난한 농부 왕룽은 대지주 황씨 집안의 하녀인 오란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둘이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을 저축해서 아편 중독, 과소비, 과도한 부채 때문에 서서히 몰락하는 황씨 가문이 소유한 농지의 일부를 산다.
지독한 가뭄이 들자 양식이 떨어져 왕룽 가족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전 가족이 아사할 지경이 되자 왕룽은 가족을 이끌고 남부 도시로 피난을 간다. 피난길에 오르기 전에 그는 가재 도구를 전부 팔아 약간의 돈을 마련한다. 그러나 그에게 목숨과도 같은 농지와 집은 남겨 둔다.
피난지에서 왕룽은 부자들이 사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담 밖에 멍석으로 오두막을 하나 만들어 전가족이 기거한다. 그들은 왕룽이 인력거를 끌고 아란과 두 아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여 연명한다. 이런 빈곤한 생활에 비애를 느낀 왕룽은 봄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다시 짓고 싶어 하지만 여비가 없을 뿐 아니라 가재도구를 새로 장만하고 씨앗을 살 돈도 없다. 왕룽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린 딸을 부잣집에 종으로 팔 생각을 하며 고민한다.
전쟁이 발발하여 적군이 왕룽이 살고 있는 도시에 진입하여 치안이 무너지자 가난한 사람들이 부잣집에 난입하여 귀중품을 약탈한다. 얼떨결에 왕룽도 그들 무리에 끼어 한 부잣집에 들어 갔다가 숨어 있던 집주인과 마주친다. 집주인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왕룽에게 작은 금덩어리 여러 개를 준다. 오란은 다른 집에 들어가서 보석주머니를 발견하여 숨겨 나온다.
뜻밖에 횡재한 왕룽은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는 집을 수리하고 가재도구를 새로 장만한다. 그리고 황소 한 마리와 농기구를 사고 좋은 종자를 구입하여 농사를 짓는다. 왕룽은 오란이 훔쳐 온 보석을 팔아 황씨 가문의 농지를 더 산다. 혼자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의 농지를 소유하게 된 왕룽은 세명의 일꾼을 고용한다. 세월이 흐르며 경작할 땅이 많아지자 왕룽은 일꾼을 세명 더 고용하여 그가 거느리는 일꾼이 여섯 명이 된다. 새 집을 지어 왕룽 가족이 입주하고 옛집은 일꾼들의 거처가 된다.
일자 무식인 왕룽은 곡물거래를 하며 계약서에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해 상인들로부터 수모를 당하자 농사일을 거들던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을 학교에 보내 교육시킨다. 왕룽은 농사일은 일꾼들에게 맡기고 고급 찻집에 드나 들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볼품없는 오란과 달리 젊고 어여쁜 창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그녀를 독차지하기 위해 포주에게 거금을 주고 넘겨 받는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새로 지은 집으로 데려가 동거한다.
왕룽은 큰 아들을 남부 도시에 보내 신식 교육을 받도록 하고 둘째 아들은 곡물 거래상의 조수로 취직시켜 일을 배우게 한다. 왕룽은 숙환으로 고생하는 오란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 죽음을 앞둔 오란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왕룽은 서둘러 큰 아들을 결혼시킨다. 큰아들의 성대한 결혼식을 보고 나서 오란은 숨을 거둔다.
부자가 된 왕룽은 대지주 황씨가 살던 저택을 사서 가족과 하녀들을 거느리고 이사한다. 가난한 농부인 왕룽이 엄청한 신분상승을 한 것이다. 왕룽은 더 이상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농지를 소작인들에게 빌려주고 소작료를 받아 안락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의 땅에 대한 애착심은 변함이 없다. 결국 그는 자기의 농지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 가 말년을 보낸다. 아들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땅을 팔려고 하자 그는 완강하게 반대한다.
펄 벅은 ‘대지’에 이어 ‘Sons’를 1932년에, ‘A House Divided’를 1935년에 발표하여 3부작을 완성하였다.
펄 벅은 193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38년에는 노벨문학상도 수상했는데 노벨위원회는 펄 벅이 중국의 농촌사회를 심도 있고 진솔하게 묘사한 소설 저작과 탁월한 전기문(傳記文)을 저술한 공로를 인정해서 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하였다.
‘대지’는 1937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에는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있다. 메뚜기떼의 급습이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며 메뚜기떼가 몰려와 농작물을 깡그리 먹어 치운다. 마을의 농부들이 메뚜기떼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눈물겹다.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펄 벅은 한국에 관한 역사 소설도 썼다. 1963년에 출간된 ‘살아 있는 갈대(The Living Reed)’는 구한말부터 해방되던 해까지 한 명문가의 4대에 걸친 이야기인데 가족구성원들의 굴곡 있는 삶을 조명하며 한반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생생하게 그린 장편으로 수작(秀作)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의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고 한국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현수(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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