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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6)
단편소설 (2023. 시와정신 해외문학상 수상작) -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un 09 2023 08:58 AM
비행기는 가까스로 잠잠해졌는데 아기 울음소리는 여전하다. 아기는 좀 전과는 달리 악을 쓰며 운다. 잠투정이 아니라 어딘가 불편해 우는 소리 같다. 기저귀가 젖은 것일까? 잠을 청하려 하면 그때마다 흔들어 깨우는 울음소리에 몹시 짜증이 난다. 아니 아기 엄마에게 내는 짜증이다. 장거리 여행에 긴장으로 더 피곤할 승객들을 생각해 아기의 엄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기가 잠잠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올올이 곤두선 신경을 쓰다듬으려 남은 와인을 플라스틱 잔에다 부어 벌컥벌컥 몇 모금 마신다. 아기가 울든 비행기가 흔들리든 내 신경을 금방 마비시킬 알콜 성분이 몸속으로 들어갔으니 아마도 나는 쉬이 잠 속으로 빠지리라. 나는 의자를 약간 뒤로 젖혀 갖고 다니는 수면용 눈가리개를 눈 위에다 덮는다. 이제 나는 어쩔 수 없이 잠에 빠지게 되고 그 잠은 아마도 내가 내릴 목적지까지 이어지리라. 나는 가리개 속의 눈을 감고 천천히 잠을 청한다. 그리고 가끔 잠 없는 밤에 습관처럼 했듯 하나, 둘 , 셋 하고 셈을 한다. 눈을 감은 채 셈을 하노라면 마치 재미없는 책처럼 수면제가 되어 나는 어느 숫자를 헤아리며 잠이 들었는지조차도 모른 채 잠에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 둘 셋, 그리고 천천히 열을 세고 스물을 헤아려도 잠을 청할 수 없다. 눈은 가렸지만 귀는 여태 우는 아기 쪽으로 열려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팔을 들어 귀까지 막는다. 귀를 막은 채 하나 둘, 하고 다시 숫자 세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 울음은 더욱 선명해지며 내 청신경을 긁는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어쩐지 언젠가 어머니가 떠나보낸 그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느껴진다. 나와 연결된 탯줄이 잘려지자마자 다른 사람의 품으로 떠나가야 했을 때, 그 때 그 아기도 저렇게 울었을까? 제 새끼가 영원히 곁을 떠나는 줄도 모른 채 죽은 듯 누운 철없던 어미가 안타까워 그 아기는 그렇게 울었을까?
여태 발악하듯 울고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오래 전 떠난 그 아기의 울음소리로 내 머리 속은 마치 한여름 밤 개구리가 와글대는 듯 어지럽다. 나는 잠시 와글대는 두 아기의 울음소리에 청신경을 방치해 둔다. 이렇게 신경을 긁도록 아기가 울어도 울음을 잠재우지 못하는 아기 엄마의 무신경에는 무단히 화가 난다. 아니, 무신경 하기는 마찬가지였을 나 자신에 대한 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누구도 우는 아기를 불평하지 않는 승객들의 인내에 감탄을 하며 나는 눈가리개를 벗겨낸 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처음부터 나던, 바로 대형 스크린 바로 앞의 그 자리로.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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