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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7)
단편소설 (2023. 시와정신 해외문학상 수상작) -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un 12 2023 10:11 AM
뜻밖에도 아기는 젊은 엄마의 아기가 아닌 좀 전, 하염없이 창 밖 구름을 바라보던 중년의 그 여인에게 안겼던 그 아기였다. 아기는 안긴 채 몸을 뒤틀며 울고 여인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디 아픈가요, 아기가?”
나는 뜻밖의 광경에 말투를 가다듬었다.
“낯설어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하네요.”
그러고 보니 아기는 아기 전용 좌석도 없이 여태 여인이 두른 띠에 묶여 있었다.
‘세상에, 눕고 싶었나보다.’
어른에게도 좁은 공간에다 몸을 구겨 넣은 채 다니는 장거리 여행은 고행이 아닌가. 나는 머릿속 가득 차 있던 짜증을 나도 모르게 숨기며 어린 아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긴 여행이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새 부모를 찾아가는 길이랍니다, 뉴욕에서 기다리지요.”
“새 부모?”
여인의 한 마디가 내 뒤통수를 치면서 말문을 갑자기 탁 틀어막은 듯 숨도 말도 멈추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던진 내 비수가 부메랑처럼 한 바퀴를 돌아 내 가슴에 와 꽂힌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우느라 흘린 목에 걸린 플라스틱 젖꼭지를 여인이 아기 입에다 물렸다.
“세 아기가 가는데 유난히 ...힘들어하네요.”
그러고 보니 옆 좌석에는 두 아기가 한 남자와 다른 한 여인의 팔에 안겨 잠이 든 채 있었다.
‘이렇게 울며 또 울며 떠났겠구나.’
내 가슴이 비틀어 짜는 듯하다.
“제가 좀 안아 봐도 될까요?”
내가 가슴을 누른 손을 아기를 향해 내밀었다. 여자가 잠시 물끄러미 날 올려보더니 어깨에 둘러진 띠를 풀어 우는 아기를 내게 넘겼다. 마치 방금 내 속에서 난 생명을 받아 안은 듯 가슴이 떨렸다.
“그렇지 않아도 울 일 많을 텐데...”
여인이 잠시 아기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는지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울 일 많을 텐데’ 라는 여인의 말에 오히려 내가 터지려는 울음을 애써 입속에다 가둔다. 오래 전 울며 떠났을 내 아기를 달래듯 안고 여인의 말을 뒤로하며 천천히 비행기 복도를 걷는다. 아기는 내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문득 아기에게 플라스틱 젖꼭지 대신, 한 번도 물린 적이 없는, 알리가 자신의 아기를 키우기를 원하는 내 젖을 물리고 싶다. 나는 젖을 물리듯 가슴에다 붙여 안고 한 손으로는 여태 배냇머리일 것 같은 명주실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준다. 갑자기 젖이 돌기라도 하는 듯 가슴이 찌르르하다. 아니 찌르르한 부분이 가슴인지 심장인지 나는 분간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긴 통로를 아주 천천히 걷는데 몸을 뻗대며 울던 아기가 신기하게도 내 품에서 고요하다. 내 젖을 문 채 잠든 것 같은 아기가 어쩐지 내 몸 한 부분 같다, 마치 오래 전 몰래 내 속에서 키웠던 그 아기처럼.
‘어떻게 보냈을까?’
문득, 몸 한 부분을 떼어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어머니에게 내가 어머니 몸의 한 부분이었듯 그 아기 역시 그러했을 터였다. 철없던 딸이 만든 피붙이를 대신 떠나보내는 짐을 져야 했고 그 일로 홀로 키운 자식에게 외면당해야 했으니 내가 지은 죄 짐은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에게도 아기에게도 나는 죄인이다.
나 때문이라는 깨달음에 그토록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일까? 마음이 비틀어 짜는 듯하다. 문득 어머니와 날 가르고 있던, 그리고 그 아이와 내 앞에 가로놓여 있던 두터운 경계의 정체가 모호해진다. 치석처럼 굳은 채 제 자리인양 차지하고 있던 그 침전물은 어떻게 된 것일까? 마치 신기루와 안간힘하며 그 질긴 감정의 대치를 해 온 듯 황당하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경계에다 나는 그토록 날을 세웠던 것일까? 지금은 존재 자체도 의아하게 하는 그 자리에 어린것이 명주실 같은 배내 머리칼을 한 채 심장처럼 안겨 있을 뿐이다.
나는 몸의 일부분인 듯 늘 날을 세워 품고 있던 굳은 경계의 그 자리에다 다시는 없을 기회인 듯 아기를 보듬어 안은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비행기 통로를 걷고 있다. 두 개의 심장이 만나 하나의 박동소리를 내고 있다.
비행기는 공중에 그대로 멈춰선 듯 미동이 없다. 그러나 스크린 속의 작은 비행기는 이미 또 다른 경계를 넘어 북미대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알리가 있는 대륙이었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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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