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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이스턴 투어Far Eastern Tour 1독을 권하면서 (상)
캐나다군 참전 초기엔 식은 죽 먹기로 착각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Jun 30 2023 03:30 PM
일본과 비교, 냄새나고 미개하다고 생각 천하성 (해사 21기, 해군 예비역 중령. 미군 심해잠수 학교서 잠수함 훈련, 함장 2번. 은퇴 후 리치먼드힐 거주)
‘Far Eastern Tour, The Canadian Infantry in Korea, 1950 – 1953’의 저자 브렌트 왓슨(Brent Watson)은 1996년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모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 파병 캐나다군에 꽤나 문제점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들이 한국서 어떻게 싸우고 생활했는지가 궁금, 다음해 한국을 방문해서 미8군 역사관을 둘러보고 가평전투가 벌어졌던 677고지에 올랐다. 고지는 미8군에서 본 당시의 항공사진보다는 나무가 울창했다. 캐나다군이 배치된 3개 능선과 오른쪽 가평강이 흐르는 계곡의 호주 탱크부대, 후방에서 화력을 지원한 뉴질랜드 포병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들의 굳은 결의와 용감성에 감탄했다. 왓슨은 1950-1953년 한국전에 1년 단위로 파견된 병사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 이 책을 발간했다.
(맥길-퀸스 유니버시티 프레스 2002년)
독후감을 쓴 천하성씨는 “배울 게 많은 책”이라면서 독자들의 일독을 권했다. 그는 “더군다나 6.25한국전 73주년 아닌가. 자꾸 잊혀져가는 한국전쟁을 다시 돌아볼 겸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1. 한국으로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자 캐나다는 즉각 참전을 결정하고 50년 7월5일 구축함(대 잠수함 작전함정) 3척을 보냈고 21일에는 공군 수송대를 파병했다. 남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8월7일 육군 파병을 결정하고 "캐나다육군은 젊은이를 원한다"는 공고를 낸다. 응모자가 많았다.
캐나다 육군은 2차대전 중 50만 명 수준이었으나 한국전 발발 당시에는 2만4천 명으로 급격히 축소됐다. 대전이 끝난 지 5년 만에 아세아에서 이렇게 빨리 전쟁이 있으리라고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군은 1개 여단, 3개 대대 중 2개 대대는 새로 창설할 계획이었다. 지휘관도 2차대전 참전 경험자를 민간에서 선발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평전투 지휘관 스톤(Stone) 중령도 민간인이었다. 그는 2차대전 중 병사로 입대(1939), 종전이 가까워진 1944년에는 중령으로 고속승진한 사람이다.
그가 이끈 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제2대대는 50년 11월5일 제1진으로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보통 신병모집, 훈련, 무장, 파병에는 1년이 소요되나, 이번 모병 지원자는 대부분 2차대전 참전자여서 준비기간은 4개월 미만이 걸렸다. 신설된 2개 대대 장병은 기존 장병보다 3살 정도가 많았다. 징집이 아니라 자원이어서 일부 무직자들도 합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앨버타주 재스퍼, 캘거리 등에서 훈련을 받은 후 미국 시애틀에서 미 수송선에 탑승했다. 부산에 도착한 이들은 미육군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며 경남 밀양으로 이동, 6-8주간 현지 적응 훈련을 받았다. 그후 이들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석탄-증기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 낙동강까지 남하했던 북한군이 괴멸하는 듯했고 전쟁은 크리스마스전에 끝날 것이라고 전망됐다. 캐나다군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이었고 사기는 높았다.
캐나다는 1개 대대만 파병하는 명목상의 협조로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해 겨울 중공군이 물밀 듯 밀려오자 전세가 역전했고 전황은 아주 불리했다. 이를 돕기 위해 캐나다는 원래 계획대로 또 하나의 대대병력 파견을 준비했다. 전선은 밀렸다. 중공군은 3차 공세를 감행, 38선이 뚫리고 남쪽으로 내려오자 한국 정부는 서울을 다시 한 번 내주고 대전으로 이전했다. 51년의 1.4 후퇴였다.
워싱턴에서는 방어선이 충남 금강 이남으로 밀리면 UN군은 일본으로 철수하고 한국 정부는 제주도로 이전한다고 구상할 정도였다.
‘전쟁에서는 오직 승리 뿐’의 철학에 철저했던 맥아더가 만주 폭격과 원자탄 투하를 내비치자 3차대전을 우려한 트루먼이 그를 과감하게 해임하고 리치웨이 장군으로 대체했다.
리치웨이는 워싱턴의 철수 구상을 적극 반대하고, "안될거야"하는 연합군의 패배의식과 분위기를 바꿨다. 장군은 부임 한 달 만에 전선을 다시 38선 이북으로 밀어올린 후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마무리 하려고 했다.
2. 전선에서
편안한 생활에 길들여진 캐나다군들에게 기차의 딱딱한 의자는 매우 불편했으나 털거덕거리는 기차에서 이틀을 지내니 서울에 도착했다. 군대는 다시 비포장 도로를 트럭으로 달려 전선에 도착한다.
이때쯤 호기심, 모험심으로 가득했던 입대 당시 기분은 사라지고, 도중에 보급받기 위해 들렸던 일본 요코하마, 사세보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부산항구에서 본 황폐한 산천, 가난하고 냄새나는 군중을 보며 "내가 왜 여기 왔나", "살아 돌아갈 수 있을가"하는 생각에 휘말린다. 무엇보다 어딜가나 배변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게 질색이었다.
휴전협정이 지지부진 진행되자 전선은 고착상태였다. 그러나 양측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 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일진일퇴하는 상황이었다.
캐나다군은 전선에 도착, 고지를 점령한다. 다음 참호를 파고 지뢰를 부설, 적군의 잠입을 막는다. 철조망을 치고 야간 조명등을 가설, 진지를 구축한다.
이어 숨돌릴 틈 없이 야간정찰, 매복작전에 나선다. 적군은 연합군의 비행기를 피해 주로 야간에 기습하므로 야간 참호배치 병력은 주간의 3배가 된다.
포로가 된 중공·인민군 모습은 서구인의 눈에는 군인으로서 매우 부실해 보였다. 장비는 물론, 군화도 없이 면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었다. 이래서 초기에는 우쭐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식은 차츰 바뀌었다.
전사한 적군 중에는 미군 군화나, 파카를 뺏어 입은 자도 있지만 이들의 원래 복장이나 신발은 산 속에서 은밀히 기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연합군은 발걸음 소리를 죽일 수 없고 거북한 나일론 판초가 나무에 스치는 소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적들은 마치 전문 사냥꾼 같이 민첩했다. 이들은 찐 쌀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배고프면 꺼내서 씹었다. 불에 데우지 않아도 작전하면서 급한대로 먹을 수 있었다. 이 점도 효과적이었다.
캐나다 군복은 영국식이어서 미군복을 입기 전까지는 근접전에 필수라는 수류탄을 부착할 수 없었다. 장병들은 수류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이동에 불편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꺼내서 던지는데 시간이 걸려 순간을 놓쳤다.
식량도 초기에는 영국 전투식량이었다. 이것은 14명 분량이 한 묶음으로 담겨져서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 함께 먹었다. 후에 미군의 개인별 시레이션(C-ration)으로 교체되어 편해지긴 했다. 그러나 칠면조 고기, 햄, 라마 콩 등 음식재료를 낱개로 포장했거나 통조림식 식량이어서 불을 피워 익혀야 먹을 수 있었다. 불이 없을 때는 주머니에 넣어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덥히는 게 고작이었다. 커피, 설탕, 비스킷, 럭키스트라이크나 말보로 같은 담배도, 또 가끔은 파이프담배도 있었다.
한국군의 카투사에게도 같은 식량이 배급됐으나 이들은 식성이 안 맞아 고역인 모양이었다. 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김치를 먹었고 마늘 냄새가 심해 캐나다장병들의 멸시와 비난을 받았다.
중대 단위로 산밑에서 요리를 하면 한국인 지게노무자들이 고지로 지어 올렸다.
잠자는 것은 어느 전선에서도 문제된다. 전투 중에는 따듯한 침랑(sleeping bag)은 금물이다. 기습 받았을 때 백 속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합군 1개 분대가 침랑 속에서 잠자다가 중공군의 기습을 받았고 칼에 찔려 전멸했다. 적들은 소리를 안내기 위해 총검을 사용했다.
캐나다군은 진지 뒤에 3-4명이 취침할 수 있는 참호를 만들어 이용했다. 교대로.
솜씨 좋은 병사가 나무가지와 야전전화선으로 얼기설기 침대를 만들어 그런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겨울에는 전방에 석유난로 1,500개가 배정됐으나 석유공급이 부족했다. 병사들은 이를 휘발유용으로 개조했다. 그래서 그만큼 화재가 잦았고 적에게 노출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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