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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버스킹
황로사/수필가(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Aug 07 2023 12:39 PM
관객은 청설모(주: 다람쥐의 일종)와 새들, 그리고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 뿐이다. 잎사귀를 모두 떨군 나뭇가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늦가을을 알리고 있다. 블루투스(Bluetooth)의 반주에 맞춰 해금 소리가 숲속에 퍼진다.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악기에 마음이 꽂힌 것은 3년 전이었다. 소속된 단체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계절도 마음도 황량한 겨울 한가운데 있었다. 해금의 슬픈 음색이 내 마음의 농도와 맞아서였을까. 영혼까지 빨려 들어간다는 게 그런 느낌일 것이다. 우연히 해금 연주곡을 듣게 되었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음악에 몰입했다. 귀에 들리는 음이 자욱한 기체가 되어 마음 곳곳을 훑으며 황홀함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토론토에 단 한 곳 있었다. 당장 전화해 등록을 했다. 정말 배울 건지 결정할 때까지 악기는 선생님 것을 빌리기로 했다.
악기도 사람처럼 인연이 따로 있는 걸까. 살면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게 좋겠다고 젊을 때부터 생각했었다. 그래서 처음 선택한 것이 플루트였다. 모양도 예쁘고 아침의 맑은 새 소리 같아 선택했는데 배울수록 소리내기도 호흡도 너무 어려웠다. 내 플루트 음은 명경함대신 허스키한 바람 소리에 가까웠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레슨이 끝나면 입술에 감각도 없고, 어지러워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붙잡고 내려오곤 했다. 사람도 나를 힘들게 하면 싫어지듯이 플루트를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 옷장 깊이 안 보이는 곳에 처박아 놓았다. 그러고 수십 년이 지난 후 해금을 만나게 되었다.
해금은 두 가지의 필수조건을 요구한다. 하나는 청음(聽音)이고 또 하나는 손가락 관절의 힘이다. 아주 미세한 소리의 차이가 손가락으로 누르는 힘에 따라 달라지므로 압력을 조절하면서 내는 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음악성 중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 예민한 청음이고, 아직 관절은 괜찮으니 배우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루에 세 시간 동안 연습하는 날이 잦았다. 레슨받을 때 배우는 것보다도 인터넷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악보 없이 들리는 대로 따라 하는 게 더 흥미를 돋웠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민요에서 동요로, 또 가요로 넘나들며 해금과의 시간을 누렸다. 언감생심 접근할 수도 없던 곡에 과감히 도전해보기도 했다. 곡에 대한 두려움은 연습이라는 단어 앞에서 맥없이 사라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끝에는 성취감이 딸려왔다. 제일 힘이 많이 들어가는 왼쪽 검지 마디에 굳은 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만지면 아팠지만 볼 때마다 훈장을 단 것처럼 뿌듯했다. 그러나 옆 집에 들려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우려도 되고, 서툰 소리가 날 때마다 남편 눈치가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남이 듣기에 괴로울 정도는 아니라고 느낄 무렵, 좁은 거실보다 자연 속에서 해금을 켜고 싶다는 객기가 들었다. 사람들이 있으면 의식이 되어 솜씨 없는 연주를 더 못할 것이 뻔하므로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책을 하다가 인적이 드문 숲속에 놓인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두고 있던 그곳으로 해금을 들고 나섰다. 토론토의 11월 중순이면 을씨년스런 겨울이어야 하는데, 오늘은 시원하고 햇살 좋은 가을에 머물고 있다.
간혹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생은 육십부터 아니면 칠십부터라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격려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힘이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씁쓸하다. 저무는 석양의 때임이 자명한데 안간힘을 쓰며 부인하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나이도 마음도 탄력을 잃어가는 상황에, 비대면의 환경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며 삶의 길을 걸어가라고 재촉한다. 사람들과 같이하는 활동은 하나둘씩 배제되고 있다. 관계 속에서의 희로애락과 혼자만의 시간을 조율하면서 살아왔건만, 코로나의 기세는 후자의 편으로 완전히 기울게 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홀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갈 텐데….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외로움도 친구로 삼는 수밖에. 글쓰기와 독서, 미니멀 라이프와 더불어 해금을 나의 영역 안에 들여놓는다.
마음을 다스려야 할 처방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해금을 켠다. 활이 줄을 타면서 내는 음결에 쌓여있던 삶의 더께가 조금씩 허물을 벗는다. 고독을 닮은 늦가을의 자연 속에 두 시간째 머물고 있다. 나의 연주가 마음에 안 드는지 새와 청설모들은 자취를 감췄고, 잎을 떨어낸 황량한 나무들은 무심한 듯 서 있다. 해금 소리만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바람결에 나부낀다.
황로사/캐나다문인협회 회원, 수필가
1998년 캐나다 이민, 미주 한국일보 수필 입상, 에세이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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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