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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트뢰(Montreux)에서 코코슈카 묘를 참배하다

손영호(칼럼니스트·국제펜클럽 회원)


Updated -- Aug 17 2023 03:25 PM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Aug 17 2023 08:51 AM

유럽 알프스 여행기(1)  


바람의신부.png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 남녀가 가운데 누워있다.             

 

 알마.png 

◆코코슈카의 일생을 사로잡은 알마 말러- 작곡가 말러의 부인이었다. 

 

지난 6월 유럽 알프스 여행을 하면서 스위스 몽트뢰(Montreux)와 브베(Vevey)를 탐방했다. 그동안 팬데믹으로 막혔던 여행길이 봇물처럼 터지니 가히 '코비드 후 리벤지 여행(Post-COVID Revenge Travel)'이라 할 만했다.

필자는 네덜란드에서 5년간 살았고 그후 배낭여행도 했으니 이번이 30년 만의 세 번째 유럽여행이었다. 나름대로 단순한 관광이라기보다는 트레킹을 곁들인 역사적 문화적 체험에 비중을 두었다.

몽트뢰와 브베는 19세기 말의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첫 번째 전성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웅장한 호텔들과 야자수와 길가의 온갖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호반의 산책길은 그 시대를 상기시켜 준다.

즐겨 찾거나 살던 곳이어서 제네바(또는 레만) 호수를 바라보는 명당에 영국 록밴드 '퀸'의 리드싱어였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와 유명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 동상이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유명한 작가 및 화가의 묘를 찾아보기로 했는데 거리와 시간상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의 작가 A.J. 크로닌은 포기하고 결국 코코슈카의 묘만 참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엑셀시어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콜택시를 부탁했다.

5분도 안 돼 도착한 택시를 타고 클라렌스 묘지(Clarens Cemetery)로 향했다. 문제는 그 많은 무덤 중에서 그의 묘를 어떻게 빨리 찾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관리인을 만났으나 우리 부부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운좋게 그의 무덤을 발견하고 뛰어갔다. 구글검색을 통해 무덤의 모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았다.

물가 비싸기로 소문 난 스위스인지라 택시요금이 신경 쓰여 사진 몇 장 찍고 이내 택시로 돌아왔다.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화려한 공원처럼 꾸민 몽트뢰 중앙묘지는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왜 하필이면 코코슈카의 묘를 찾은 이유를 알려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의 생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슈카.jpg

◆오스카르 코코슈카

 

오스카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 이후 진정한 표현주의 화가 및 시인, 극작가로,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와 함께 벨 에포크 시대를 이끌던 비엔나 3대 천재 화가 중 한 명이다.

1912년 4월12일 만찬석에서 알마 말러(Alma Mahler, 1879~1965)의 의붓아버지가 딸 알마의 초상화 제작을 코코슈카에게 의뢰했는데 당장 그 다음날 알마는 코코슈카의 첫 편지를 받는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동안 400통의 편지를 받았으나 그의 맹렬한 열정과 질투심 때문에 알마는 "사랑의 전쟁터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보았다"고 술회했다.

알마는 누군가. 오스트리아의 유명 클래식음악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부인이다. 말러가 결혼한지 9년만에 사망하자 그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비엔나 사교계의 여왕벌로 등극한 그녀는 7살 연하의 코코슈카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코코는 “걸작을 그려서 주면 결혼하겠다”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 중 알마가 비엔나로 간 사이 그린 그림이 유명한 '바람의 신부(The Bride of the Wind)'이다.

그러나 알마는 이 젊은 화가에게 뜨거운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의 역할을 하고, 자신도 그로부터 새로운 의욕과 열정을 수혈받는 것으로 만족할 뿐, 결혼만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명성과 품격을 지닌 남자를 선택하려 했다.

두려울 정도로 열정을 보이는 코코에게서 독점욕과 질투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전 남편 말러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한편 실연의 충격을 억누를 길 없었던 코코는 1915년 오스트리아 엘리트 기병연대에 자원 입대하여 동부 전선인 러시아로 출병한다. 어느 날 그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알마는 그의 화실에 가서 그가 모아 놓은 그녀의 편지와 그의 스케치, 그림들을 챙긴다.

그런데 1년 여가 지난 어느 날 죽었다던 코코가 나타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크에서 머리에 총상과 폐를 총검에 찔리는 심한 중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져 후유증에 시달리는 채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때 알마는 유명 건축가이며 후에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와 재혼하여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이렇게 실망과 상처만 남긴 사랑이었지만 코코는 오랫동안 알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918년 알마와 같은 실물크기의 인형을 뮌헨의 인형제작사에 주문 제작했다. 그는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드레스를 맞춰 인형에게 입히고 마차를 타고 갈 때나 산책길, 레스토랑 심지어 오페라 공연 때도 대동했다. 그가 늘 그녀를 침대에 두고 같이 지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1919년 드레스덴의 미술학교 교수로 임명을 받고 축하 파티에 참석한  코코는 술병을 휘둘러 알마의 분신같은 인형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는 알마를 열렬히 사랑했기에 그녀를 잊는 데도 그만큼 격렬한 과정이 필요했나 보다.

알마가 칠순 생일을 맞았을 때 미국으로 초청받은 코코는 "나의 '바람의 신부'에서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다"며 그의 불멸의 사랑을 고백했다.

코코는 1930년 나치 정권에 의해 '퇴폐 미술가'로 낙인 찍혀 독일 박물관이 소장한  417점의 그림을 모두 몰수 당했다. 그 속에는 대표작 '바람의 신부'도 포함됐다. 그후 그는 공개적으로 파시즘과 나치정권에 저항하며 제네바 호수를 낀 호반도시 몽트뢰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80년 94세로 사망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역만리에서 온 한 사내가 이런 기막힌 사랑을 쏟은 화가의  묘를 찾아가 참배하는 것은 절대로 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계속) 

 

손영호.jpg

손영호

손영호(토론토 칼럼니스트·국제펜클럽 회원)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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