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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살다 

박엘리야씨 한국 '계간수필' 등단작품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Sep 29 2023 02:34 PM


한국 전통의 문예지 '계간수필'은 이달 발간된 작품집에서 캐나다한인문인협회 수필분과 박엘리야 회원(토론토 거주)의 등단작품 '죽음을 살다'를 게재했다. 박씨는 수필 '강아지 오줌'으로 1차(초회) 추천됐었다.   

 

오늘 하루도 다 지나갔다. 하루치 삶을 잘 마무리한 몸을 목욕으로 풀기로 했다. 욕조에 들어가자 따듯한 물과 푸근한 수증기가 나의 몸 구석구석을 감쌌다. 물 표면을 떠다니는 하얀 비누 거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렸다. 물속에 피곤한 몸을 풀어내고 나면 뭉쳐있는 내 마음 조각도 서서히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어깨에 물을 끼얹었다.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있는 누군가처럼 나도 물로써 내 마음의 때를 씻어내어 본다. 바로 이 시각에도 지구 저편 갠지스강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몸 위에 물을 흘려내고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흐르는 강물에 정화하고자 두 손을 차디찬 물에 담그고 있을 것이다. 고개를 얹고 욕조에 누워 눈을 감고 내가 그 강가에 흘러 들어갔던 몇년 전의 11월을 기억해냈다.

좁고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신성한 강이라 불리는 갠지스강으로 이어졌다. 작은 조각배들이 여러 척 떠다녔고 물속이 보이지 않는 강과 맞닿은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겉옷을 벗고 기도를 드리며 차가운 강물에 몸을 씻고, 회색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뭇가지로 만든 칫솔로 이를 닦았다. 그 도시의 하늘은 매일 피워올리는 연기 때문인지 언제나 뿌옜다. 도시에서 강가로 걸어갈수록 고기 기름이 타는 듯한 느끼한 냄새가 점점 더 강해졌다. 그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짙은 연기 기둥들이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고 세모나게 쌓인 재로 만든 작은 성이 군데군데 솟아나 있었다. 땅에는 주황색과 흰색 꽃들이 줄로 길게 엮인 채 버려져 있었고 땅은 타다 남은 것이 남긴 검은 색과 흰색으로 얼룩얼룩했다. 아버지로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강렬한 색조의 천과 꽃으로 덮인 것은 어린아이만 했다. 곧 태워질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등 뒤에 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기둥에 그려진 파란색 피부와 빨간색 피부의 신이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기도를 올렸고 장례는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사람들이 울고 서 있는 얼룩진 땅 위에는 작은 생명체들이 많았다. 개와 새와 작은 짐승들이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장례식에서 타다 남은 고기 조각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동물들은 기세 좋게 날고뛰며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당시 나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워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내 혼란과는 상관 없이 그 모습은 너무나 당연해서 반박할 여지도, 더 필요한 설명도 없었다. 죽음은 어떻게든 삶으로 이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삶의 한켠에 붙어있는 것임에도 내 머릿속에는 삶과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영원해야 할 나의 삶과 계획을 방해하는 무례한 존재에 가까웠다. 죽음이란 내게 다른 세상 이야기였고 때로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죽음은 삶과 그토록 가까운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 존재가 까마득하기만 했다. 죽음은 내 삶 속에서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려니 왠지 공기가 갑갑해져서 목욕을 마치고 싶어졌다. 욕조의 마개를 빼니 잠잠하던 물 표면이 파르르 흔들리며 남은 비누 거품 몇 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중심으로 해서 욕조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거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활기 있는 움직임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보는 듯했다. 물의 높이가 줄어들자, 거품의 움직임은 좀 더 빨라졌다. 한 바퀴 한 바퀴를 더해갈수록 거품은 조금씩 속도를 더해갔다. 꽤 많은 물이 빠져나가고 나니 거품의 춤이 끝나는 게 아쉬워졌다. 욕조 구멍을 막아 버렸다.

구멍을 닫자, 물의 흐름이 사라진 수면은 차차 잔잔해져 갔다. 빠르게 흐르던 거품은 거친 숨을 다잡기라도 하듯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물이 흐르기를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아 방향을 잃은 거품은 여기저기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좀 전만 해도 생동감 있게 움직이던 거품은 흐르던 물이 멈추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거품은 고요한 물과 하나가 되어 얇게 퍼져 가고 있었다. 움직임을 멈춘 거품은 물과 함께 영원한 침묵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기나긴 고요 속으로. 나는 거품을 다시 살려보고 싶어져 황급하게 욕조 구멍을 열었다.

숨 막히는 수면의 고요를 뚫고 물은 기다렸다는 듯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거품은 흐트러진 모양을 추스르고 다시 회전을 시작했다. 거품은 그전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남은 물이 많지 않았지만 어쩐지 더 이상 아쉽지 않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끝이 있었고, 또한 있어야 했다. 끝이 있기에 시간의 흐름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기에 변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변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더이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영원한 침묵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내 몸은 단 한 번도 움직임을 멈춘 적이 없었다.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었다. 끝이 없어지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생명체는 고인 물처럼 흐름을 멈추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죽을 것이기에 살아 있는 존재였다. 나의 죽음은 내 숨과 내 몸의 모든 움직임 속에, 즉 나의 삶 속에 있었다.

죽음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나는 삶이요 동시에 죽음이었다.

박엘리야.png

박엘리야(토론토)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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