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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소설가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0 2023 10:21 AM
캐나다에 온 지 올해로 스무 해가 된다.
스무 해 동안 같은 동네, 같은 집에서 사는 동안 이웃은 많이 바뀌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세상을 뜨시기도 했고 이사를 오간 이웃도 많다. 대부분 대도시에서 열심히 일한 후, 아름답고 고요한 환경 속에서 노년을 누리기 위해 이사 오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게 새겨진 캐나다 사람에 대한 인상은 아주 정중하고 친절하다는 것인데, 둘 다 이웃이나 동네 주민들을 통해 느낀 인상이다.
작년 어느 때에 새 이웃이 이사 왔는데 외양이 중후하게 보이는 장년의 두 남자였다. 두 남자의 관계를 알 수 없던 나는 그냥 상상했다, 동성 부부인가 보다고. 실은 부부인지, 형제인지는 정확하게 몰랐고 구태여 내가 알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이사 와서 집수리도 한 차례하고, 시간 흐르면서 강아지를 앞세워 산책도 하면서 길에서 만나면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그들도 아주 정중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 온 어느 날부터 조용한 변화가 이웃 간에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쓰레기 수거 날이라 아침 7시에 하는 수거 시간에 맞춰 주민들은 적어도, 음식물, 재활용, 종이가 든 세 개씩의 쓰레기통을 내놓아야 한다. 수거한 후 늘 엎어 놓는 세 개의 통을 주차장에다 들여놔야 하는 일은 꽤 번거롭고 귀찮다.
그런데 길가에 엎어 둔 그 통들을 누군가가 바로 주차장 앞에다 옮겨다 놓는 것이었다. 눈이 발목을 덮어도, 비가 와도 그 일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내 집뿐 아니라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세 드신 분이 많은 이웃이었다.
‘그나저나 지저분한 남의 쓰레기통을 누가 매주 옮겨다 두는 것일까?’
실은 그 이웃이 누군지 알려고 하면 금방 알 수 있었다. 금요일 하루 아침만 지켜보면 누가 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솔직히 내 일을 대신 해주니 편했고, 특히 눈 오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엔 오히려 누군가가 나 대신 해주기를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나는 도움 받을 정도로 나이가 든 사람이 아니었고 도움도 한 번이지 자꾸 받는 일이 부담되고 미안했다. 하여, 나도 그 일을 시작했다.
이웃에 빈 쓰레기통 하나도 옮겨두는 일이 버거울, 연세 드신 분들이 사신다는 사실을 그 누군가로 인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군지 모르는 그가 하기 전에 나도 이웃의 비워진 쓰레기통들을 각자의 집 앞에다 갖다 놓기 시작했는데, 작은 수고가 생각보다 큰 기쁨을 안겼다.
누군지 모르는 그와 내가 빈 쓰레기통을 번갈아 옮겨 놓던 어느 날, 마침내 그가 누군지 나는 알게 되었다.
그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해야지 하며 주차장 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데 키가 큰 한 남자가 양손에다 쓰레기통을 들고 우리 주차장 앞으로 오던 참이었다.
“굿 모닝!”
그가 우리 집 쓰레기통을 든 채 웃고 있었고, 나는 열린 주차장 문 안에서 빈손인 채 ‘굿 모닝!’ 하며 마주 웃었다.
문득, 초등학교 때 읽은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떠올랐다. 형은 곧 가정을 가질 아우를 위해, 아우는 가정이 있는 형을 위해 달밤에 몰래 서로의 볏짐을 옮겨다 주다 달빛 아래서 부딪게 되어 마주하고 함박웃음 웃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내 것도 손대고 싶지 않은데 세 개씩이나 되는 이웃의 쓰레기통을 서로 하겠다며 나섰다가 만났으니 그와 나는 서로의 볏짐을 지고 마주친 두 형제 같았다.
“사실은 내가 오늘 좀 일찍 나왔어요, 일 년간 집에서 모신 어머니가 어제 돌아가셨거든요.”
함박 웃던 그의 눈시울이 금방 젖어버렸다.
‘세상에, 이 슬픈 날에!’
그가 연거푸 날 놀라게 한 것이다.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노크하세요. 어머니를 모셔봐서 내가 좀 알아요.”
건강 잃은 내 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금요일마다 우리 집 쓰레기통까지 옮겨다 놓으며 조용히 날 도운 것이었다.
양손에 남의 쓰레기통을 들고 있었음에도 그는,
참 멋있어 보였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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