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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친구가 없다
정창규/수필가(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2 2023 10:09 AM
최근, 머리 안에 맴도는 문장이 하나 있다. 얼마 전 청춘 드라마 중에 나온 말이다. " 그래서 네가 친구가 없는 거야!" 이 말이 극 중 주인공을 괴로운 상념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친구가 없다는 말에 갇혀있었다.
친구가 없다. - 난 친구가 있는가? 없는 것도 같지만 난 친구가 필요 없는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괜스레 친구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나에겐 어떤 친구가 있었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중학교 친구도 있었고, 고등학교 친구도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우정이 돈독했는데, 대학을 나만 홀로 서울로 가는 바람에 관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생활권이 달라지면서 만남이 줄어드니 그렇게 됐다. 대학의 친구들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지만 한 명은 몸이 약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다른 한두 명은 한국과 캐나다라는 물리적 거리와 공유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소원해지는 이유가 되었고 점차 연락할 의지도 사라졌다. 그들 역시 나에 대해 같은 생각이리라.
친구의 뜻을 찾아보았다. 자기와 가까우면서 정이 두터운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벗, 동무가 있다.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친해져 사실상 반쯤 가족인 인간관계를 친구라고 한다.
사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은 친구라 부르지 않고 언제부터 인가 '지인'이라고 한다. 조금 더 가까우면 잘 아는 지인이라 하고, 진실하며 현명한 사람이면 진솔한 지인이라 묘사한다. 이제 친구란 단어는 어색하기도 하다. 다행히 나의 주변에 '진솔한 지인'이 많다. 왜 그들을 친구라 하지 못하는가? 의외로 간단한 결론에 도달했다. 예전의 친구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들과는 많은 허물을 공유했고 서로의 단점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지인들에게는 나의 허물을 보이고 싶지도 않지만 그들의 단점이나 실수를 보면 그럴 수 있지 하며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입에서는 비난이 먼저 튀어나오는 소인배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 나의 치졸함을 보일까 봐 두꺼운 껍질로 덮고 있는 것이다. 그 껍질은 실수를 보이고 싶어하지 않고 알량한 자존심만 감싸고 있다. 이런 태도에 무슨 친구가 나에게 있겠는가?
친구가 없다. 꽤 오래 그렇게 살았다. 만일 책을 읽지 않았다면 친구가 상당히 그리웠을 것도 같다. 캐나다 생활은 금전적인 여유는 적었지만, 시간적인 여유는 많아 대학 이후 끊어졌던 책을 접할 수가 있었다. 항시 책에서 뭔가를 찾고 느끼면서 또 다른 책을 찾았다. 친구를 찾지 않은 다른 이유는 아내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서로 이야기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잔소리도 듣고, 투정도 부리며 아웅다웅하지만, 모든 것을 서로 터 놓는다. 아내는 나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남자답지 못한 부분조차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새해에 이루리라 다짐한 나와의 약속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고, 미루던 책을 읽고, 팬데믹으로 2년간 여행을 하지 못해 삼사 개월 안에는 무조건 아내와 캐나다 북서부로 대평원과 오로라를 보기 위해 긴 자동차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하기로 했다. 타인에 대한 좋은 삶의 태도를 만들길 노력해 보려고 한다. 좋은 친구가 아니 좋은 지인이 더 생길까? 곰곰이 생각하니 어려울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조심을 해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하나? 그래도 친구를 만들기보다 좋은 관계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본다. 장점을 칭찬해주고 그의 말실수나 허물을 덮어주도록 노력하며, 실수를 줄이고 그를 존중해주도록 노력하며 그래도 발생하는 나의 잘못은 기꺼이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생각한다. 막상 글로 적으니 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시도해 봐야 한다. 여차하다가는 고집쟁이 늙은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마지막 과제를 생각하니 새해가 무겁다.(2022 01)
►정창규/kjs1664@gmail.com
2000년 캐나다이민. 2017년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신춘문예 콩트부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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