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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김외숙의 문학카페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09 2023 11:09 AM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다.
기독교적 인간애를 주창한 작가의 사상을 압축해 보여준 작품으로,
인간은 내면에 든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란 메시지를 품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속 에피소드에서,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의 질문을 던졌는데
그중 두 질문의 답이, 인간 내면에 있는 사랑과 그 사랑으로 타인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읽어 기억에도 희미한 작품을 내가 새삼 떠올린 이유는, 경우는 달랐지만 나 또한 사정이 절박했을 때, 그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내 짝 힐스 목사가 몸이 약해진 이후부터 나의 장거리 여행에 제약이 생겼다. 일상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할 수는 있지만, 그가 고령인 탓에 홀로 두고 나 혼자 어딘가 가는 일은 내가 피한다.
피치 못할 일의 장거리 여행 때는 매사추세츠에 사는 딸이 아버지와 함께했고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고 하여 비행기표를 준비해 두었었다. 한국에서의 수상식 참석과 강연이 이유였다. 그런데 믿었던 딸에게 갑자기 올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서 내 입장이 난감하게 되어 버렸다.
수상은 대신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강연은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패밀리 닥터와 주변 사람들은 임시로 가족을 돌봐주는 기관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가족을 위해 정부에서 그 방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허약해진 이후부터 집에서만 지낸 사람을 낯선 곳에 가게 하는 것은 내 짝에게는 못할 일 같았다. 그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우선 내게 너무 낯선 방법이었다. 그러자니 결국 한국의 관계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비행기표를 반환할 수밖에 없었는데, 반환한 그날 저녁에 다른 상을 또 통보받게 되면서 사정이 아주 복잡하게 되어버렸다.
이미 표를 반환한 내게 날아온 대상 수상 소식은 마음에다 기쁨보다 감당하기 힘든 걱정의 무게를 얹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도록 고심해도 방법이 없으니 못 간다는 통보를 또 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강연 취소로 이미 무책임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북미대륙을 가로지르고 태평양을 건너간 작품을 눈여겨 봐준 두 주최 측에는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내 사정을 알게 된 한 친구가 ‘내가 목사님과 함께 있겠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한 분이 또 ‘나도 함께 있겠다,’고 했다. 두 분 모두 내 집에 자주 왕래하면서 우리 가족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일은 잠시 만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담될 일인 줄 알기에 내 입장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분의 간곡한 권유로 결국 나는 다시 표를 샀다. 급한 일 생기면 상 받지 못하더라도 날아올 거라며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분 덕분에 나는 한국엘 다녀왔다. 약속되었던 일정을 모두 잘 마쳤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슬픈 일, 편찮으시다 돌아가신 내 둘째 오빠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거의 매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내 짝 힐스 목사는 두 분과 함께 건강히 잘 있었고, 모두 두 분의 사랑 덕분이었다.

게티이미지
나는 살면서 빚을 많이 졌다, 특히 가족에게.
그런데, 빚은 빚인데 고마운 빚, 감미로운 빚,
바로 사랑의 빚이다.
가슴에 지닌 사랑은 나누며 살라고 톨스토이는 작품에서 말했는데 최근에 본의 아니게 이 사랑의 빚을 또 지게 된 것이다.
빚이어도 나는 고맙고 또 고맙다, 두 분의 더운 마음이.
실은, 두 분은 안다,
두 분에 대한 내 사랑의 온도 또한 꽤 뜨겁다는 사실을.
끝

김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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