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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민(Civilian)인가
홍성철 | 전 문협회장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02 2024 11:25 AM
한 배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소식을 접하며 먼저 든 느낌은 '기어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만드는구나'라는 당혹스러움 이었다. 한국 경찰이 제보자의 말만 듣고 공개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밀 검사를 포함한 서너 차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에 시작부터 증거는 없었다고 한다. 피의자로서 그 배우는 거짓말 탐지기를 써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하니, 혐의에 대해 그가 호소한 결백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를 괴롭힌 것은 마약 복용이라는 누명이 아니라 들키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었다고 한다. 가쉽을 상품화하는 언론과 그 재료를 제공하는 수사 당국, 그리고 여론의 질책이라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탄탄한 연기로 세계적 배우 반열에 오른 그는 외국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나보다 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진심인 캐나다인 직장 동료는 자기 아내가 뉴스를 보고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허망하게 우리는 재능이 아까운 연기 예술인을 잃었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배우 이선균(왼쪽부터)이 김희원, 주지훈과 함께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사진기자들의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선균은 출연작 '탈출: 포르젝트 사일런스'와 '잠'이 동시에 칸영화제에 초청되며 연기 이력의 정점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칸=AP 연합뉴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한국의 검찰과 경찰에 대해 의도나 과정이 부당하다는 느낌이 크지만, 아무렇게나 평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공권력의 일방주의가 일 년 전 이태원에서의 참극을 유발한 것으로 보이고, 안타까운 배우의 죽음에도 경찰의 책임이 있어 보이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 섣부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 보여, 그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가쉽에 가쉽을 더하는 혼란의 가중으로 비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명료하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나 권력을 쥔 집단의 횡포는 심심치 않게 있었고, 캐나다의 경우도 공권력이 자행한 심각한 잘못이 있었다.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캐나다 정부와 종교집단의 행보는 악행을 넘어선 만행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과오를 씻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나?>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나기도 하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책 제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어서 내 생각이 닿은 곳은 최근에 다시 읽고 있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다.
<시민의 불복종>은 제목의 뉘앙스와 달리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 노예제를 용인하고 불법 전쟁을 일으켜 멕시코로부터 땅을 강탈하는 미국 정부의 부도덕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국가의 기능과 효율성을 인정한다. 불복종은 국가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 방향의 제시이다. 그 이상적인 국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선한 가치가 구성원 다수에게 전파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각한 상태에서 참여해야 한다고 소로우는 말한다.
수년 전 한국의 고위 관료가 기자에게 민중은 개, 돼지라고 말해서 물의가 된 적이 있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을 것이다. <시민의 불복종>에서의 내용을 인용하면,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더 현명하거나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소로우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의의 실현으로 보인다. 오십 페이지 분량의 길지 않은 글에서 주제가 되는 문장이 꼽는다면,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이다. 전반부에 나오는 내용으로 소로우의 생각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유명 배우와 가수가 수사받았지만, 둘 다 아무런 혐의가 포착되지 않았다.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한 조사와 검사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들은 무혐의다. 그 와중에 불행한 죽음이 발생했다. 검찰과 경찰이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진행하는 마약 단속은 이태원에서의 희생자 159명에 배우 1명을 보태었다. 반면에 혐의 정황이 뚜렷해 보이는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기이한 경우도 있다. 법의 원칙으로 다스린다고 하지만 그 적용이 너무나 선택적이어서 법 앞에서의 평등을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오래전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며 독배를 들었다. 그러나 소로우는 악법에 대해 양심의 원칙에 따라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 하고, 나아가 그것은 시민의 의무라고 한다. 법질서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정책을 거부하는 다소 소극적인 저항이다. 불의에 무조건 불복종하는 것은 사회와 끊을 수 없는 연관을 지닌 개인의 삶에서 무의미할 수 있다. 소로우도 민주적인 방향 제시를 하면서 "온몸으로 투표하라"고 한다. 그래서 소로우는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기 결정권을 갖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함석헌 선생도 "깨어 있는 백성이어야 산다"고 했다.
캐나다의 위인 중 한 사람인 헨리 던다스는 사업적, 정치적으로 모두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노예 거래 사업으로 흥한 사람이다. 캐나다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그의 이름은 토론토 중심지의 도로와 전철역, 광장의 명칭에 쓰였지만, 인간을 사업의 수단으로 사용한 사실이 조명되면서 그 이름은 삭제되는 절차에 들어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양심에 거스르는 것인가 아닌가는 시류에 따르지 않고 한결같은 것이리라. 불복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깨어있고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이다. 시민은 민중이 아니고 백성도 아니며 국민도 아니다. 양심에 귀 기울이는 성숙한 인격체이다.

홍성철 | 전 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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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Tripolio ( illhwan3**@gmail.com )
Jan, 02, 03:25 PM Reply좋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