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달의 오기(傲氣)
김외숙의 문학 카페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Apr 09 2024 09:09 AM
오늘, 4월 8일에 달이 햇빛을 가리는 현상, 개기일식이 있었다.
이 엄청난 우주 쇼를 나이아가라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었고, 나는 집안에서 볼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 시에서는,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올 것이라며, 그 많은 사람이 이 작은 도시에 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라든가, 교통체증, 응급 서비스와 휴대 전화 불통의 가능성, 등 다방면에 대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한다.
언스플래쉬.
몇 년 전 서울 방문 중, 인산인해의 광화문 집회 현장을 본 적 있는데, 그 인원보다 많을 일백만 명의 관광객이 하루 동안에 이 작은 나이아가라 지역에 온다니 시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도 했다.
개기일식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운행 중이던 달이 어느 한순간에 태양을 가리면서 그 영향을 받을 지구의 어떤 부분이 대낮임에도 어둠에 덮이는 현상을 말한다. 4월 8일 오후 3시 18분께에 4분여 동안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Niagara On The Lake) 내 집에서도 그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 지역에는 99년 만에 온 현상이었고, 이 같은 현상은 2144년에 다시 온다고 한다. 앞으로 120년 후의 일이니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미래의 현상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폭포로 유명한 이 지역에 우주쇼까지 어우러졌으니, 매스컴에서도 크게 관심 뒀을 것이다.
직접 빛을 발산하는 해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표면에 반사된 햇빛으로 달빛이 되어 밤을 밝힐 수 있는 달은 여러 측면에서 비교가 된다.
해는 생명, 힘, 권세 등의 상징이고 달은 출산, 풍요 등을 상징한다. 해는 스스로 빛나므로 뜨겁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지만 빛을 만들지 못하는 달은 그래서 차갑고 수동적인 성격일 것이다. 이렇게 햇빛이란 거대한 힘에 의하지 않고는 달빛을 만들 수 없는 달이 해를 덮어 그 큰 빛을 무력하게 만들고 깜깜한 밤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상이니 해의 입장에서는 달의 배신일 것이었다.
달의 이 짧은 배신의 순간을 개기일식이라며 세상 사람들은 흥분했다.
그 흥분의 도가니,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이른 12시경에 집을 나섰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이번 개기일식 관찰의 명소 중의 하나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선정했기 때문에 그 현장 상황을 먼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약간 흐린 날씨에 우주쇼는 어떻게 벌어질까 궁금해 한 관광객들은 파크웨이 공원, 여기저기다 의자를 놓고 우주쇼의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폭포를 불과 200여 미터 앞두고 폭포 진입 금지 때문에 돌아 나와야 했다. 안전을 염려한 시 당국의 비상사태 선포의 결과였고, 그것은 우리 동네에 돌아올 때도 적용되었다. 나는 주민이므로 동네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주민들은 다들 자신들의 뜰에다 의자를 내놓고 그 극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4월 8일 오후 3시 18분,
해가 있는 날이라면 봄 햇빛으로 화사할 대낮의 그 시간에, 점점 흐려지던 주위가 빠르게, 섬뜩하도록 순식간에, 어둠으로 덮였다. 내 뜰의 소나무, 테이블, 의자들을 선명히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둠이 4분가량 지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원래의 낮이 되었다.
과학이 계산한 시간의 수치는 신기하게도 맞았다. 특수한 기능의 안경 없이 해를 관찰하는 일은 눈에 치명적이라고 해서 나는, 대낮에 갑자기 일어나던 어둠으로만 개기일식을 경험한 셈이다.
내 눈에 개기일식은, 태양의 일방적인 열정에 부담을 느낀 달이 해에 부린 오기의 현상 같았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의 표면에 닿는 태양의 더운 빛을 거부하고, 차가운 몸으로 해를 덮어버린 것이다. 마구 퍼붓는 그 큰 빛을 늘 순순히 감당하다가, 나도 한 번쯤은 내 맘대로 해 보고 싶다는, 그 힘을 무력하게 해 버리고 싶다는, 달의 심정 표현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성질은 부렸지만 달은 결국 우주의 순리를 따른다는 사실을. 태양의 그 강렬한 빛 아니고는 결코 달빛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달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기일식이란 우주쇼는 끝났다.
거대한 빛, 태양에게 오기 품은 달이 세상을 깜깜하게 만들어버린 쇼였다.
짧았으니 망정이지 달이 좀 길게 성질을 부렸다면, 외려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끼게 될 것 같던,
개기일식의 순간이었다.
김외숙 | 소설가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