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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그의 비망록
김외숙의 문학 카페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May 14 2024 09:47 AM
그의 기억의 창고 문을 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기억을 잃어가던 그와 대화를 시도하면서부터였다. 소리로 발산되어야 할 무수한 언어들이 주인의 기억력 문제로 창고 속에서 묵음으로 갇혀있었다.
내가 그 창고를 열지 않으면 그는 엄청난 용량의 기억이 든 창고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잊을 것이 분명했고, 그의 행적 중 많은 부분이 갇힌 채 질식하여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가 그 문을 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랄까, 희망을 느낀 것은 그가 오랜만에 보여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낸시 누나는 마음이 여렸어. 베개 던지며 장난하다가도 가끔 울었거든.’
나는 낸시란 이름 하나만 제시했는데 그렇게 누나의 성격이며 수채화 그리기를 좋아한 취미까지 이야기를 확대했다. “가엾은 랠리. 생후 6주였을 때 혼자 나갔다가 차에 치여 다리를 절었지.” 강아지 이름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는 강아지에 대한 모든 기억을 끌어올렸다. 6주는 아직 자동차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를 나이라고, 그래서 내가 따라 나갔어야 했다고 그는 강아지에 대한 기억을 또 끄집어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가지 질문을 던지면 평소에는 생각지 않았을, 그래서 기억의 깊은 창고에 묻혀있기만 했을 이야기를 끌어올려 확대할 줄 아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실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건강했을 때 이미 그로부터 들은 것으로, 되풀이하여 들은 탓에 마치 나도 함께 뛰놀며 성장한 듯이 내 뇌리에 선명하게 입력되어 있다.
기억을 잃은 후부터는 내가 도로 그의 유년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내 기억에다 조금씩 자신의 기억까지 보태면서 그의 유년은 한결 풍성해지고 흥미로워졌다.
내 생각에, 그가 말수를 줄이기 시작한 것은 의사의 그 말 때문일 것 같았다. 그날 의사는, 초기 증세이지만 알츠하이머이며 그래서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했었다. 운전 중 집에 가는 길이 사라져 버린 이상한 경험의 고백에, 몇 가지 검사를 끝낸 의사가 그렇게 진단을 내리며 운전면허증 반납까지 요구한 것이었다. 비록 초기였지만 알츠하이머도 무서웠을 텐데 평생 분신이듯 품고 다닌, 발 노릇을 한 운전 면허증까지 내놓으라고 했으니, 충격으로 말수를 줄일 만도 했다.
‘둘 다 졸도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야.’ 그와 내가 맞닥뜨린, 너무나 무섭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릴 때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멀쩡하게 운전해 병원엘 갔다가 올 때는 운전대를 넘겨야 했던 그는 갑자기 깊은 환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고, 느닷없이 운전대를 넘겨받은 나는 운전 내내 눈앞이 흐려져 멀지 않은 병원에서 집에 오던 길에 두 번이나 멈춰 서야 했다. 평생 남 앞에서 말하는 일을 한 그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말 수를 줄여 버렸고 기억력은 급속히 퇴화했다.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하자 나는 욕심이 생겼다. 그의 의식 깊은 곳에 묵직한 자물쇠 또는, 만들어 놓고도 기억해 내지도 못하는 비밀번호로 채워져 방치되어 있을 기억의 창고를 여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말수를 잃은 이래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고 갇혀있을 그 언어들을 불러내어 소리로 제 몫을 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엄마’ ‘아버지’ ‘누나’ ‘사랑해’ 들어서 행복할 얼마나 많은 소리가 주인의 방치로 소리 구실을 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을까?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나지 않을, 너무나 사랑스러운 언어가 아닌가? 터져 나와야 할 소리가 거세당한 채 깊은 창고 속에서 신음하는지도 몰랐다. 그중에서도 ‘사랑해.’란 문장을 생각하자 문득, 그가 내게 한 무수한 ‘사랑’의 소리가 떠올랐다.
속에다 품고 있을지언정 소리로 드러내는 일엔 익숙하지 않던 내게 그의 입술이 ‘사랑’이란 소리를 내면, 들을 때마다 내 몸이 오글거렸다. 나는 솔직히 ‘사랑’이란 말보다 오히려 ‘사랑’을 말하기 전, 사랑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던, 그의 넘치던 심정의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이것이 바로 주체하기 힘든 지금의 내 심정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던 그 표현이었다. 그것을 그가 어느 날 전화로 들려주었는데, 내 마음이 돌이킬 수 없도록 그에게로 기울고 만 것은 분명 로맨틱하던 바로 그 심정의 소리 때문이었다.
내가 그 문장 듣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그도 알았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굳게 닫힌 채 깊이 묻혀버린 그의 기억의 창고를 열 수 있을까? 설사 열 수 있다고 한들 기억의 창고에 내가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그 심정의 소리가 저장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마치 그가 의사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어버린 그때처럼. 그것은 정말 그와 나 사이에 오간 소리였을까? 수화기 저쪽의 그가 부끄러운 듯, 그러나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잘금잘금 넘치던 댐 수문을 열어 소리로 들려주던 심정의 소리, 그것은 그의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내 기억의 창고엔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로부터 들은 기억은 그것이 무엇이든 여태 생생하게 살아서 소리다운 소리로 내 기억에 남 아 언제든 부르면 입술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 심정의 소리는 당연히 사실이다. 내게 사실이면 그에게도 사실인 이유는 나의 사실 모두가 그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하기로 했다. 그는 저장해둔 비밀번호로 열어, 깊은 어둠의 창고에다 저장해둔 그 언어에다 기억의 살까지 붙여 내게 들려줄 것이다.
“당신, 기억해요, 전화로 처음 내게 고백한 그 말?” 내가 ‘전화’란 힌트로 넌지시 그의 기억의 창고 문을 노크했다. 그는 환자이므로 약간의 힌트는 필요했다. 입을 다물고 눈까지 감고 있던 그가 반짝 눈을 떴다. 하늘 푸른 날의 호수 같은 두 눈동자가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없구나.’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그 소리는 이미 지워져 창고 문을 열 수 있다고 해도 나올 수는 없음을 의미했다. 진작에 사라졌을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라고 그를 닦달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그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일이 힘에 부친다는 듯 아주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의 댐은 넘치고 있어요.”
“...!”
“그 댐은...”
기억해 낸 뭔가가 더 있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의 입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댐은, 지금도 넘쳐요.”
그의 소리가 내 심정에서 공명했다. 처음 듣는 소리 같았다.
김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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