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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
손정숙 | 수필가·캐나다문협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May 14 2024 11:22 AM
1925년에 있었으니 99년 만에 돌아온 개기일식이다. 다음은 2044년이라니, 20년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인 데다 20년 더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일생일대의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더구나 온타리오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개기일식은 백이십 년 후에나 있을 것이라니 절호의 기회였다.
예견이라도 한 듯이 40여 년 살던 런던을 떠나 마침 이곳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개기일식 현상을 꼭 보고 싶다고 했더니 토론토에 사는 딸이 바쁜 시간을 내어 방문하였다. 일식을 보는 것이므로 눈을 상할 위험이 크다며 특별 안경을 사 왔다. 주의를 주고 거듭 경고를 하더니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아예 집 안에서 TV로 보라며 안경을 도로 가져가려 하였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로 어제도 이비인후과에 가서 보청기 상담을 하고 왔는데 청력이 무너지는 이 시점에 시력까지 위협을 받는다니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될 말이었다. 단단히 주의 사항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안경 두 개를 받아 놓았다.
폭포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하였지만 가까이는 갈 수 없고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친 강변을 돌아 나이아가라 타워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결국 대형 TV 스크린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다고 단념하였다. 그래도 대형 유리창으로 하늘이 훤히 내다보여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하늘에서는 쪼그마한 달이 감히 태양 빛을 가리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고 모두 열광하는데 따뜻한 지붕 안에 앉아 있는 것이 좀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싶어 안경을 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구름 사이로 잠깐잠깐 터주는 부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한순간 세상이 깜깜해졌다. 검정의 원색이 이런 것일까. 윤기 흐르는 새까만 비로드 천으로 해를 완전히 덮어 버린 것이다. 길에 있던 사람도, 길가의 우체통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4초 간의 어두움은 지구 종말의 두려움마저 떠오르게 하였다.
개기일식은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태양을 모두 가릴 때 발생하는 천문 현상이라 한다.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상에 있을 때, 공전하는 달이 태양 면을 가로지를 때 달그림자가 지구 표면 위를 지나가며 생긴다고 한다. 수년 전에 관찰한 개기 월식은 달이 지구의 본 그림자 속을 지나갈 때 생기는 천문 현상으로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의 반대편에 있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는 항성과 위성에 의해서 생기는 현상이 놀랍고 신비하기 짝이 없었다.
하늘이 깜깜해진다고 해서 놀랍고 신기한 것은 아니었다. 달과 지구, 이들은 모두 공중에 떠 있는 항성들이다. 99년 전, 그전에도 이런 현상이 반복되어 일어났을 것이며 20년 혹은 백여 년 후에도 계속하여 일어날 현상이라 한다.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 항성이 수백 년, 억년을 변치 않고 한 궤도로만 달려서 개기일식이나 개기 월식이 생기는 것일까. 얼마나 강한 팔로 붙잡고 있으면 그럴 수 있을까.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를 보면 빛이 있으라... 땅은 씨 맺는 풀과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하늘의 궁창에 새가 날게 하라... 모든 창조가 전능자의 말소리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우주 만물, 바다의 물고기도 공중의 새도 심지어 기어다니는 풀벌레와 길가의 잡초까지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그대로 준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는 우리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분명코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인간의 가청영역은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들으려 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하여서만 나의 청력은 필요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문인은 지성과 감성과 영성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전능자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분명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완성일 것이라 생각된다. 보청기는 거기에도 필요할 것이다.
2024년 4월 8일(월요일) 개기일식.
손정숙 | 수필가·캐나다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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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