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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
황현수의 들은 풍월<1>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29 2024 03:34 PM
주간한국에 <황현수의 들은 풍월>이라는 칼럼방을 시작한다. ‘들은 풍월(風月)’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주제로 글을 짓고 즐기는 ‘방’이다. 내가 쓰는 글은 교실에서 배워 얻은 지식이 아니라, 살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월을 읊는 것이다. 주로 문화와 예술에 대해 쓰려 하지만, 짧은 지식을 풀다 보면 엉뚱한 문자도 튀어나올 것이다. 익숙지 못한 길이니 독자들이 길잡이를 해주었으면 싶다. -필자의 말
며칠 전, 아내의 친구가 앞마당에 심을 야생화 묘종을 배추박스 가득 가져왔다. 이름도 모를 여러 종류의 야생화 사이에 쑥이 있었다. “이 선인장은 흙 위에 아무렇게 놔둬도 잘 자라요. 물은 자주 주지 마세요. 그리고 이 쑥은 잘 번지니까, 뒷마당 담벽에 심으면 짝 퍼질거에요”라고 한다. 쑥은 이름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쑥쑥 잘 자란다. 어린 순은 된장국에 넣거나, 찹쌀가루에 버무려 쪄 먹기도 하고, 말려서 뜸을 뜨는데 이용한다. 전으로 부치기도 하고 봄철에는 도다리를 쑥과 함께 넣고 끓인 도다리 쑥국이 별미다. 나는 사실, 쑥 향이 강해서 어릴 때는 그 맛을 몰랐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쌉싸름한 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음식이 그렇듯, 음악에 대한 취향도 변해간다. 청소년 시절에는 팝송과 대중 가요를 좋아하다가, 가곡과 트로트가 어느 사이 마음 한곳에 자리한다. 요즘은 예전에 없었던 현상이 하나 늘었다. 우리 국악에 대한 사랑이다. 지난해 고국에서 1년여간 지내며 여러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렇다고 비싼 공연을 보러 다닐 형편은 아니어서, 인터넷으로 ‘공연 쇼핑’을 하다가 아주 만만한 것을 찾았다. 바로 예술의전당 옆, 국립국악원에서 하는 <토요명품>이라는 국악공연이다. 매주 토요일 3시부터 하는데 우선 가격이 착하다. A석 2만원, B석 1만원이다. 여기다가 경로우대는 50% 할인까지 받는다. 최고의 국악 연주자들이 궁중음악부터 민속음악, 무용, 창작극까지 다채롭고 풍성한 무대를 선보인다.
임방울은 1929년, 25세의 나이에 서울에서 열린 매일신보사 주최 <조선명창연주회>에 출전하여 ‘쑥대머리’를 불러 당대의 스타로 떠오른다.
객석이 300석 정도로 작은 공간이어서 재수가 좋으면 판소리 명창의 소리를 바로 코앞에서 들을 수 있다. 지난번에는 임방울(1904~1961)의 ‘쑥대머리’를 들었다. ‘쑥대머리’는 보통 긴 분량의 판소리를 들어가기 전에 목을 푸는 의미로 부는 단가(短歌)로 5분여 정도의 소리를 말한다. ‘쑥대머리’는 ‘춘향가’ 중 하나로 춘향이가 옥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대목이다.
이 ‘쑥대머리’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쑥대머리’를 분위기나 장소에 따라 다소 다르게 불렀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수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여이신혼 금슬우지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항아 추월같이 번듯이 솟아서/ 비취고저 막왕막래 막혔으니/ 앵무서를 내가 어이 보며/ 전전반측 잠 못 이루니 호접몽을 어이 꿀 수 있나<중략>… (중모리 장단) 김연수 창본
“옥중의 춘향이 이 도령을 애타게 그리워하지만 소식이 없다. 그립다 못한 춘향은 가을달이 되어 임 곁에 가고자 한다. 꿈속에서나마 임을 보고자 하나, 그리움에 사무쳐서 꿈조차 이룰 수 없다. 춘향은 죽게 되면 서로 사랑하는 나무가 되고 망부석이 되겠다”는 구슬픈 가사다.
쑥대머리는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를 말한다. ‘쑥대머리’라는 제목만큼 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던 임방울은 1905년 전라남도 광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근대 5대 명창’인 외숙부 김창환과 그의 두 아들이 소리꾼이어서 어려서부터 이들과 함께 판소리를 익힌다. 1929년, 25세의 나이에 서울에서 열린 매일신보사 주최 <조선명창연주회>에 출전한다. 무릎 위로 올라간 짧은 검정 두루마기, 땅딸막한 키, 약간 얽은 얼굴. 무대에 오른 임방울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뱃속에서 바로 소리를 뽑아서 내뿜는 통성의 쉰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내듯 한스럽게 ‘쑥대머리’를 불러 젖힌다. 관객은 옥중에 갇힌 절망의 춘향이라도 된 듯, 소리에 함성을 보태어 일제 강점기 치하의 서러움을 눈물로 달랜다.
첫 무대부터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소리꾼으로 우뚝 선, 임방울은 콜롬비아, 빅터 등 유명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어 지금도 이루기 어려운 음반 1백20만 장을 판매한다. 또한 일본과 만주까지 그 명성이 퍼지며 수많은 실향민과 독립군이 임방울의 노래를 망향가나 군가로 불렀다.
그는 시골 장터나 강변 모래사장에서 대중과 함께 소리하기를 즐겼고, 서민의 언어로 그들의 문제를 대신 말하려고 노력했다. 서민의 한과 설움을 노래한 임방울에게 대중은 이 나라 최고의 소리꾼, 국창(國唱)이라는 수식어를 바친다. 1961년,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지만, 서민들과 주로 어울렸던 그에게는 남은 재산도 제자도 변변히 없었다.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장례는 국악계에서 처음으로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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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뉴서울by김치맨 ( canadanewseo**@gmail.com )
May, 31, 03:00 PM명창 임방울의 춘향가 쑥대머리 (유툽 영상)
https://youtu.be/ufQUq_lJ_64?si=5vF0XlXBU3Kzpp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