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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서 나온 아버지들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Jul 02 2024 11:53 AM
6월이 갑니다. 호국보훈의 달이면서 단오(端午), ‘Happy Father’s Day(‘아버지의 날’)이 있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저의 <KMS(K문화사랑방)>에서 6월 마지막 시간에 그런 주제들 다루었고, 그중에서 오늘은 ‘항아리에서 나온 아버지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오늘의 현실을 비춰볼 수 있는 민담(民譚)으로 꾸며봤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농부가 밭을 매다가 괭이 끝에 뭔가 부딪쳐 소리를 내는 물건이 있어서 조심스레 캐보았습니다. 뜻밖에도 땅속에 커다란 항아리가 묻혀있었습니다. 그 항아리를 집으로 가져와서 잘 씻어 뒤꼍에 두고 괭이를 넣어두었습니다.
다음 날, 밭에 일하러 나가려고 항아리에 넣어두었던 괭이를 꺼내었습니다. 그런데 항아리 속에 또 한 개의 괭이가 있는 것입니다. 꺼내었습니다. 괭이가 또 들어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엽전 한 개를 넣었다 꺼내어보았습니다. 엽전 한 개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꺼내면 또 있고 꺼내면 또 있고...
그 소문이 퍼지자, 오래전에 밭을 팔았던 욕심쟁이 영감이 찾아왔습니다. “자네 그 항아리를 나에게 돌려주게.” “무슨 말씀인가요?” 농부가 어이없어하면서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네 그 밭을 언제 샀는가?” “십 년 전에 샀지요” “누구에게 샀는가?” “그야 영감님에게 샀지요”
“그것 보게, 그때 난 밭만 팔았지 항아리까지 팔진 않았어. 그러니 항아리는 내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결론이 나지 않아서 결국 원님에게 가서 재판을 받기로 했습니다. 청원(請願)을 받은 원님은 은근히 욕심이 생겼습니다.
“흐음,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눠 가지면 공평하겠지만 그리하면 항아리가 깨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항아리를 나라에 바치게.” 두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님은 항아리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서 외진 골방에 잘 모셔두었습니다.
집에는 나이가 많아 심신이 나약한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모셔둔 항아리가 몹시 궁금해서 골방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하다가 그만 항아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오려고 애썼지만, 너무 깊어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나 좀 건져다오~” 하고 큰소리로 아들을 불러댔습니다. “아이고 아버지, 어쩌다가 항아리에 빠지셨나요?” 하고 아버지를 꺼내드렸습니다. 항아리에 또 한 분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아, 나 좀 꺼내다오~’ 또 꺼내드렸습니다. 꺼내면 또 있고, 꺼내면 또 있고... 계속 반복됐습니다.
원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주변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항아리에서 꺼내진 아버지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짜는 썩 물러서거라, 내가 진짜 원님의 아버지다.”
서로 ‘내가 진짜 아버지다!’라고 주장하지만, 원님은 어느 분이 진짜 아버지인지조차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들은 큰소리를 쳐대며 옥신각신 서로를 밀치다가 그만 항아리를 밀어 뜨려 와장창 깨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항아리는 사라지고 이후 가짜 아버지들만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진실이나 본질은 멀어지고, 변형되거나 왜곡된 진실과 본질이 성행하는 현실을 살고 있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서로 내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가짜의 시대.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나대는 세상, 그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한때, 남대문 문턱이 있나 없나를 두고 다투면, ‘있다’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가본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은 ‘문인데 문턱이 없을 리 있냐’고 그럴듯한 논리 상식으로 우기고 결국 우격다짐이 이긴다는 뜻이 되지요.
소위 자칭 엘리트들이 모여 고시 준비를 하는 고시촌 젊은이들로부터 가장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무지(無知)에 무모(無謀)가 합쳐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디 아버지뿐이겠습니까? 아버지 대신 선생님으로, 아버지 대신 친구로, 대상을 바꿔보시면 어떨까요?
학생인권조례이니 참교육이니 거론해 가며 교권이 무너진 교육계, 횡행하는 학폭만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혹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 도덕과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정치인들, 법이 악용되고, 사회질서가 흔들리고, 상식보다 변칙이 합리화되는 사회,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 퍼트리고 권력화하는 언론들, 헛된 글을 쓰며 명예 삼는 사람들...
끊임없이 항아리에서 나오는 사람들.
우리는 참지도자와 참스승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구시대의 민담이라고 밀쳐낼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짚어볼 만하지 않습니까?
권천학 | 문화컨설턴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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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