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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길목에서
이현수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09 2024 09:47 AM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詩) ‘곡강(曲江)’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시구(詩句)가 나오는데 이 때문에 나이 70을 고희라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 말의 의미가 퇴색했다. 의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건강 관리를 잘해서 장수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희를 넘기고도 10년 이상을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번민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죽어 없어질 운명인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허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엄청난 경쟁을 물리치고 태어난 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므로 나의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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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는 일제 강점기말에 태어나 6.25동란 중에 살아 남았으며 4.19학생의거, 5.16군사혁명 등이 초래한 사회 격변을 겪었지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으며 성장하였고 세계 최빈국에서 어렵사리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니 그런대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진출한 미국 은행에 취업하여 자립하였다. 또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두 자녀를 키우는 즐거움을 누렸다. 젊은 나이에 캐나다로 이주하여 국제금융계에서 기량을 펼쳐 보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책 읽고, 자유기고가로서 틈틈이 신문과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고,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왔다가 갔다는 흔적으로 무엇이 있을까?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 손녀가 있다. 까마득한 옛날에 지구상에 인간이 등장하여 생명을 대대로 이어 왔는데 나도 생명 연결 고리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것이다. 내가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길 큰 일은 못했지만 나로 인해 여러 생명이 태어났으니 내 인생을 어찌 헛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이 또 있다. 나는 오랜 세월 우리 말과 영어로 쓴 글들을 모아 미국과 한국에서 여러 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는데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내 책들을 직접 구입하여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준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 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부질없는 이야기다. 나이에 수반하는 육신의 노화를 막을 방법이란 없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나는 종착점을 향해서 하루하루 더 가까이 다가 가고 있음을 의식한다. 하지만 내가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지 미리 알 수 없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하니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승에서 살아 본 행운을 누렸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때가 되면 편안히 영면(永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앞으로 얼마가 남았든 여생을 후회 없도록 즐기되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것이 나의 다짐이다. 그리고 흉하지 않게 늙어 가다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이현수(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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