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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고 싶어 포토샵 실무 배워”
CCTV수사 20년 노하우 책 집필한 문일선 경감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09 2024 02:01 PM
20년 전 첫 관제센터서 수사 맡아 영상·PC 기법 독학하며 체계 정비
2004년 여름,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한 낡은 빌라에서였다. 1층에 있는 작은 디자인 업체 사무실에 한 남자가 찾아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그는 포토샵에 열중인 직원들에게 “이건 뭐예요?”, “저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귀찮게 했다.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하자 폭탄 선언을 했다.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대신 무보수로 일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경찰관’이었다. 국내 최고의 폐쇄회로(CC)TV 수사 전문가 문일선(55) 경감이 CCTV 분야로 뛰어든 ‘햇병아리’ 시절 얘기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강남도시관제센터에서 ‘대한민국 CCTV 수사의 산증인’ 문일선 경감을 만났다.
강남관제센터 내부를 배경으로 자신이 집필 중인 책을 들고 서 있는 문일선 경감. 박시몬 기자
그가 포토샵을 배우고자 했던 이유는 뭘까. 문 경감은 이렇게 말한다. “범인을 잘 잡고 싶었거든요.” 당시 그는 강남관제센터 CCTV 수사관으로 일했는데, 책으로 배우는 영상분석기법만으론 범인 검거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단다. 분석기법을 직접 찾던 중 ‘영상의 기본은 사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영상을 보려면 사진을 알아야 하고, 사진을 분석하려면 포토샵을 익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작정 디자인 업체를 찾아 실무를 가르쳐달라고 ‘읍소’했다. 그때 익힌 기술은 CCTV에 흐릿하게 포착된 번호판, 용의자 인상착의를 특정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문 경감이 CCTV 수사에 뛰어든 계기가 있었다. 2002년 그는 절도범을 잡다 다리를 다쳤고, 1년이나 휴직을 해야 했다. 그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강남에 CCTV 관제센터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일해볼래?”
CCTV 관제센터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모든 CCTV를 제어하는 시설이다. 지금이야 경찰 수사에서 CCTV가 빠질 수가 없어, 서울 26개 자치구마다 관제센터가 하나씩 있다. 서울에서 운영되는 CCTV 카메라 수만 9만여 대, 관제요원은 480명이다.
그러나 20년 전 강남관제센터가 처음 문을 열 때 관제요원은 15명(경찰관 3명 포함)뿐이었다. 지금보다 규모도 작았지만 CCTV 수사에 대한 개념·체계조차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문 경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제센터 전체를 뜯어고치기로 결심했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가며 체계를 정비해갔다. 여러 기술도 개발했다.
문 경감은 “화면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원인을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직접 전문가와 관련 업체들을 찾아다녔고 유형별 CCTV 왜곡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체계가 잡히자 관제센터 덕에 범인을 신속·정확하게 붙잡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강남관제센터는 20여 년간 ‘2012년 강남 부녀자 납치사건’ ‘2020년 역삼동 망치 살인미수 사건’ ‘2024년 코인 강도사건’ 등 대형 범죄를 포함해 수천 건 이상의 강력범을 잡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문 경감은 퇴직(5년 후)을 앞두고 펜을 들었다. 책 제목은 ‘CCTV 관제, 영상분석, 영상추적수사’. 700쪽이 넘는 CCTV 수사 백과사전이다. 꼬박 3년이 걸렸고, 올해 8월 출간 예정이다. 20여 년 CCTV 수사를 하며 쌓은 노하우와 그간 현장에서 배운 실무 내용을 녹였다고 한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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