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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스포츠

“소 살해·학대" VS "문화유산”

스페인 투우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02 2024 09:54 AM

기로에 선 스페인 투우


“투우 보러 오세요. 여기서는 일반 투우 경기뿐만 아니라 노빌라다(Novillada·어리거나 늙었거나 결함이 있는 소가 투입되는 투우)도 볼 수 있어요.”

스페인 남부의 대표적 관광 도시 말라가. 이곳에서는 8월 말라게타 투우장에서 열리는 투우 행사에 대한 ‘열띤 홍보’가 한창이다. 이처럼 스페인의 많은 도시는 검과 붉은 망토를 든 투우사, 그리고 이를 향해 맹렬히 덤비는 소의 경기를 관광 상품으로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스페인에서도 투우의 인기는 최근 급속하게 시들고 있다. ‘동물의 생명을 유희로 소비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인식이 퍼진 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진보 성향의 현 정부는 반(反)투우 정책도 내놨다. 투우 소관 부처인 문화부는 지난 5월 투우에 기여한 이들에게 주는 일명 ‘국가 투우상’(투우상)을 전격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자체 경쟁력 상실, 정치적 의지가 겹치며 투우가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인가 싶지만,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스페인에선 투우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탓에 정부에는 ‘투우가 부흥하도록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저물 듯 쉽게 저물지 않는 스페인 투우 이야기를 관련 기관 3곳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 봤다.

 

화면 캡처 2024-07-30 165246.jpg

9일(현지시각)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연례 산 페르민 축제 투우 경기 중 투우사가 피투성이의 황소를 어루만지고 있다. 이 축제는 스페인의 오래된 전통이자 문화라는 주장과 동물을 학대하는 악습이라는 비판이 대립하고 있다.●팜플로나=AP/뉴시스

 

 

“소 살해’ 좌시 못해”… 투우상 폐지
투우가 소와 투우사의 ‘대등한 싸움’인 것 같지만, 진행 방식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보통 경기는 크게 세 파트로 구분돼 있다. 1단계는 일종의 탐색전으로, 투우사들이 망토로 소를 유인하며 소의 성향 및 상태를 파악한다. 소의 힘을 빼기 위해 지속적으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작업도 포함된다. 2단계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투우사는 끝이 뾰족한 막대기를 황소의 등, 어깨 등에 꽂아 내린 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소와 함께 싸운다. 3단계에서는 소의 죽음이 핵심이다. 얼마나 빠르고 절도 있게 소를 죽이느냐가 투우사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요소가 된다.

이에 많은 관광객이 사전 정보 없이 투우를 접했다가 놀라곤 한다. 얼마 전 스페인에서 TV로 투우 경기를 시청했다는 한국인 A씨는 “투우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잔혹성을 배양하는 행위”라며 이렇게 말했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응원하는 팀이 홈런을 친 것처럼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과 힘이 빠진 소의 얼굴이 화면에서 교차됐다. 소는 흙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계속 날뛰었다. 그런 소를 농락하다 죽게 만드는 게 투우의 실체였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스페인 정부도 투우에 칼을 빼 들었다. 에르네스트 우르타순 문화부 장관은 2013년부터 유명 투우사 또는 투우 관련 협회에 수여해온 투우상과 상금(3만 유로·약 4,500만 원)을 전격 폐지할 것이라고 지난 5월 엑스(X)에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동물 고문이 자행돼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고문이 왜 공적 자금으로 보상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간 투우를 ‘소 살해’ 또는 ‘소 학대’라며 비판하던 동물권 단체들은 정부 결정을 일제히 환영했다. 스페인 비영리단체인 ‘산세 동물주의자’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투우상은 동물에 대한 학대 및 고문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만큼 투우상 폐지에 전적인 지지를 표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당인 ‘환경동물보호당’(PACMA)의 욜란다 모랄레스 대변인도 “투우 분야에 대한 혜택 내지는 특권을 빼앗는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점점 더 커지는 “투우 금지” 목소리
투우상 폐지 발표를 기점으로 ‘아예 투우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졌다. 사실 스페인에서 투우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이미 높은 상태다. 네덜란드 기반 비영리단체인 CAS 인터내셔널이 지난 5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투우가 금지돼야 한다’는 답변은 54%였다. ‘중립적’이라는 응답은 22%, ‘금지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은 21%였다. 마이테 반 게르웬 CAS 인터내셔널 대표는 “여론이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려 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투우 폐지 쪽으로 확 기울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투우 폐지를 위한 각종 캠페인, 집회도 많이 열리고 있다. 특히 스페인 관광객을 향해 ‘관람객이 전통문화 경험 등을 빌미로 투우를 관람하는 데 쓰는 돈은 사실 동물의 고통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식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형태가 많다. 스페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스페인을 찾은 관광객은 8,510만 명이다.

투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인기도 추락했다. 스페인 문화부에 따르면 2022년 투우 경기를 현장에서 본 인원은 77만6,000명을 기록했는데, 연 관객이 1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에는 314만 명이 투우를 관람했다. 투우 관중 4명 중 1명은 주관사가 뿌리는 무료 티켓으로 입장한다는 통계도 있다. 경기 횟수도 줄었다. 2007년 스페인에서 열린 투우 경기는 3,651건이었으나 2022년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1,546건을 기록했다. TV, 인터넷 등으로 투우를 향유하던 인구 또한 줄면서 투우 경기 전문 중계 채널은 단계별로 송출을 중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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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말라가에서 지난달 열린 투우 공연의 티켓이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티켓 가격은 약 2만5,000~36만 원까지 다양하다. ●말라게타투우장 홈페이지 캡처 

 

쉽지 않은 폐지… 이유는 ‘전통문화법’
그러나 투우상 폐지 외에는 투우 금지 또는 축소 정책이 적극 전개되지는 않고 있다. 이는 스페인법상 투우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투우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1700년대 초반부터 스페인의 중요한 문화였기에,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2013년 제정된 해당 법은 이런 내용이다. “투우는 국토 전체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의 일부다. 모든 공권력에는 문화유산을 보존·보장하고, 그 풍요로움을 촉진하며, 다양한 형태로 모든 사람의 접근 및 향유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부과된다.”

현 정부가 투우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상당한 보조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역설은 그래서 발생한다. 스페인 서비스미디어는 지난 5월 PACMA가 스페인 재정공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투우 단체 및 농장에 2020년부터 거의 600만 유로(약 90억 원)가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지방자치단체 또한 임의로 투우를 없애거나 단속할 수 없다.

투우가 ‘스페인 문화유산’인 까닭에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유럽연합(EU)도 투우는 반대하지 못한다. EU의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동물은 감각이 있는 존재이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우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동물을 고문하고 천천히 죽여가는 것이므로 학대에 해당한다. 만약 육류 소비를 위한 행동이었다면 동물보호법에 따라 금지됐을 것이다. 그러나 투우는 문화적 지위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기에 EU법을 여기에 적용할 수 없다.”

이에 EU 지원금도 직·간접적으로 스페인 투우에 투입된다. 투우용 소를 키우는 것도 ‘농업’으로 분류될 수 있고, 상당수 농장이 투우용 소뿐만 아니라 식용으로 공급할 소, 돼지 등을 함께 키우기 때문에 EU의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른 보조금이 지원되는 것이다. 스페인·포르투갈의 347개 가축 사육자를 대표하는 투우가축사육협회(UCTL)에 따르면 EU가 유럽 전역에서 충당하는 보조금은 연 2억 유로(약 3,000억 원)에 달한다고 유럽의회 월간지는 전했다. 많은 동물권 운동가들은 그래서 ‘EU 자금을 줄이는 게 투우 폐지를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보수 VS. 진보’ 갈린 투우의 운명은
이 때문에 최근 스페인에서는 ‘투우의 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하자’는 내용의 시민 발의가 지난 1월부터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그것은 내 문화가 아니다’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해당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되려면 ‘등록 후 9개월 내 50만 명의 스페인인 서명’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로 공이 넘어가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투우가 이미 스페인에선 ‘진보 대 보수’의 가치 싸움이 됐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보수 성향의 대중당(PP) 등은 투우를 의도적으로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정책에 대해 “문화적 다양성 및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보르자 셈퍼 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투우가 사라지면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사라지고 투우 산업에 종사했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투우를 놓고 벌어지는 스페인 내 팽팽한 줄다리기는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베를린=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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