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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 시비’ 영조, 울화 치밀 때마다 이 약을 먹었다
조선시대 기사회생의 신약, 우황청심원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30 2024 11:12 AM
심신 화병 다스리는 우황청심원 중국이 원조, 약효는 조선이 우월 중요 일정 앞두고 복용 시 효과
Q. 금융업에 종사하는 52세 남성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동생과의 유산 분할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결국 화병까지 얻었습니다. 홀아버지를 모시다가 돌아가신 후 상주 역할까지 도맡았지만, 생전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동생의 ‘유산을 절반씩 나누자’는 요구에 기가 막히더군요. 그러더니 결국 몸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답답한 느낌으로 시작해 식욕 저하와 불면증으로 이어졌고, 호흡 곤란과 심장까지 불규칙하게 뜁니다.
A. 전형적인 화병이다. 한의학에서 기(氣)는 쉬지 않고 고르게 순행해야 한다. 그런데 기의 운행이 너무 빠르거나 일정한 곳에서 오래 정체하면 문제가 불거진다.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눈에 충혈이 생기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머리가 욱신거리고 어지럽다. 입이 마르면서 미친 것처럼 날뛴다. 기와 열이 상부로 치올라 생기는 이런 증상을 ‘기의 상충’이라고 한다.
화병 치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약재가 바로 그 유명한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이다. 우황청심원의 기원은 중국 송나라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의보감’의 처방을 기준으로 하는데, 약량과 약물 구성에 차이가 있다. 약량에서는 동의보감이 화제국방의 10분의 1 정도고, 경면주사(鏡面朱沙)가 첨가돼 심신의 안정 작용이 강화됐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우황은 심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주사(朱沙)와 함께 쓰면 안정 기능이 더욱 커진다”고 기록, 이런 약재 보완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실제로 우황청심원은 중국이 원조라고 말하지만, 실제 약효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좋았다. 김조순의 ‘열양세시기’에는 이를 증명하는 대목이 있다. “북경 사람이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 최고 인기 품목은 우황청심원이다. 왕공부터 귀인에 이르기까지 앞을 다투어 이것을 얻으려 했다. 왕왕 그 성화를 못 이겨 (중국에) 약방을 전수해도 만들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연경(燕京·베이징의 옛 이름)에는 우황이 없고 낙타황으로 대용하기에 설사 약방에 따라 만들어도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구급약으로 잘 알려진 우황청심원은 매우 정교하게 제조된다. 크게 세 가지 처방을 혼합했다. 대산여원(산약, 감초, 천궁 등) 자감초탕(감초, 생강, 계지 등) 구미청심원(서각, 우황, 석웅황 등) 등이다. 대산여원은 질병 후 기가 회복되지 않을 때 쓰고, 자감초탕은 심장의 힘이 떨어진 부정맥에 처방한다. 구미청심원은 가슴에 열이 나면서 뜨거운 증상을 완화하는 처방이다. 현재 중국의 청심환은 구미청심원의 처방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우리나라의 우황청심원과는 다르다. 물론, 현대에는 이들 가운데 일부 약물이 제외됐다. 특히 중금속으로 알려진 석웅황과 주사는 금지됐다. 포획이 금지된 코뿔소의 뿔(서각)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왕들도 우황청심원을 먹었을까?
조선 왕들 중 가장 장수한 영조(81세 5개월). 사서에 기록된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6.1세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장수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하지만 실상은 극심한 화병에 시달렸다. △양반 사회인 조선에서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점 △이복형(경종) 독살 의혹 △‘아버지가 김춘택’이라는 세간의 의심 등이 한평생 왕을 괴롭혔다. 실제로 영조 9년 기록에는 ‘온갖 보약이 다 헛것이고… 나의 병은 첫째도 심기, 둘째도 심기에서 비롯된다’라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결국 영조 24년 현기증이 심해지자 6월과 8월 우황청심원을 복용했다. 또 정치적 고비를 맞거나 과로시에도 우황청심원을 복용해 예방했다.
정조 역시 유명한(?) 화병 환자다. 화병 치료 약재인 우황이나 금은화를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사도세자)의 죽음, 까다로운 할아버지(영조) 등 고군분투했던 그의 삶을 고려하면 일면 이해가 간다. 정조가 즐겨먹은 우황은 소의 담석이다.
현종도 만만치 않았다. 예송 논쟁과 큰아버지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과의 정통성 시비 등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현종 13년(1672년) 9월 계속된 스트레스로 왕의 건망증이 심해지자, 어의는 ‘울화(鬱火)’로 진단하고 특효 처방으로 구보(狗寶)를 권한다. 구보는 개의 담석으로, 우황 같은 약재다. 현종의 아들 숙종은 아버지보다 성격이 더 급하고 화증이 심해 구보를 아예 가루로 만들어 상복했다고 한다. 요즘엔 개의 담석을 약재로 쓰긴 어려우니 역사 속 흥미로운 일화일 뿐이다.
우황청심원은 중요한 일정을 앞둔, 특히 수험생에게 인기다.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가 있기 한 시간 전에 한 알씩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다만 10세 전후 어린이는 반알 정도만 먹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틱 증상(Tic disorder)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 보통 식후에 하루 한 알 정도가 정량이다. 복용 시에는 잘 씹어 침과 함께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힘들 경우 물을 같이 마셔도 무방하다.
물론 아무리 좋은 약도 맹신하면 곤란하다. 평소 저혈압이 있거나 기운이 부족한 사람은 오히려 집중력 저하나 졸림 현상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상곤 한의학 박사·전 대구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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