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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이 꿈에서 본,‘밴프(Banff)’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28 2024 03:30 PM
재스퍼(Jasper)의 셋째 날, 아침 7시부터 서둘러 밴프(Banff)로 이동하며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빙하(Columbia Icefield Glacier)가 보이는 건너편 산(Wilcox Viewpoint)을 올랐다. 주차장에서 3시간 정도 올라가면,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언덕이 나온다. 빙하는 수만 년에 걸쳐 쌓인 눈이 녹아 물이 되어 얼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여 중력을 받아 압축된다. 이것들이 반복되며 두께를 키워 나간 것이 빙하다. 처음 이곳의 빙하는 무려 900m였는데, 지구 온난화로 점점 그 크기가 줄어들어 지금은 365m 정도라고 한다. 멀리서 보니 대빙원 위의 설상차가 장난감 자동차처럼 보였다. 여기서 다시 2시간을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산이 그다지 험하지 않아, 관광객들도 많이 오르는 곳이다. 하지만, 날씨 변화가 심하고 강한 돌풍이 있어 산행 준비 없이 오르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단다.
Rawson Lake에서 <아리랑산악회> 멤버들과 함께(맨 오른쪽이 윤길근 대장이고 세번째가 필자이다.)
산행을 끝내고 밴프로 향하며, 수 없이 나타나는 높은 산과 대자연 앞에서 경건해지고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산 하나만이라도 토론토 근교에 있었다면…’라는 말을 일행과 나누면서 말이다. 어떤 산인지, 어디에 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었지만 너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눈에 담고, 가슴과 머리에 간직해야 했다. 나무는 해발 2,400m부터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지나가는 산의 높이를 짐작하며 ‘이건 신이 암석과 나무, 호수로 만든 예술품이 아닐까’ 싶었다.
숙소인 캔모어(Canmor)로 들어서며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세종대왕에게는 아들이 여덟이나 있었다. 그중 셋째로 타고난 안평대군(1418~1453)은 태어날 때부터 왕의 자리를 넘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운명을 깨닫고 호도 안평(安平)으로 지었다. 하지만, 평안하게 사는 것만을 바라기엔 그에게는 재주, 능력이 너무나 많았다. 당시 조선 초기는 쉴 새 없는 암투와 풍랑의 연속이었다. 그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짝 더 멀어지기 위해 그는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삶에 몰두한다.
어느 날, 안평대군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을 새벽부터 불러 놓고 갑자기 꿈 이야기를 꺼낸다. “꿈속에 어느 산에 도착했네. 아주 신기하게 생긴 산이었지. 뒷동산 같은 낮은 산을 건너가 보니 갑자기 눈앞에 절벽처럼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지 않겠나, 어찌나 높고 험하던지 마치 바위가, 저 벽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아무나 못 들어간다고 호령하는 것 같았네.”
담담하게 꿈 이야기를 하던 안평대군은 밖에 있는 느티나무를 쳐다본 채,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이 방에 안견이 함께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안견이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를 거부하는 듯한 바위를 벗어나 한참을 가니 깊은 골짜기가 나오고, 길이 여러 갈림길로 갈라지지 않겠나, 어디로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지나가더군. 그래서 여기가 어디쯤이냐고 물었더니, 북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복숭아밭이라는 게야. 또다시 울뚝불뚝한 산벼랑 사이를 지나 시냇물을 건넜지. 그런데, 깎아지른듯한 절벽 앞으로 경치가 얼마나 황홀하던지 혼을 빼놓는 것 같았네.”
이 이야기를 듣고 안견은 3일 밤낮을 쉬 않고 그려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완성했다. 풀이하면 ‘꿈속에 여행한 복사꽃 마을’이다. 그림에는 안평대군이 직접 쓴 그림 제목과 그림의 사연, 그리고 당시 최고의 지식인들이 쓴 글에는 산에 대한 찬사가 펼쳐져 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1447년(세종 29)에 안견이 그린 그림이다.
밴프의 산을 보고 ‘선인들의 표현’을 대신한다고 하면 좀 얍삽해 보일 것 같아, 내 느낌도 적어 본다. ‘알프스산맥의 하얀 산 <뚜르드 몽블랑>을 도끼로 뭉텅 쪼개, 재스퍼는 30km마다 펼쳐 놓았고, 밴프는 5km마다 세워 놓은 것 같다.’ 로키 산행의 일정과 숙소 등의 정보는 스케줄을 참조하면 될 것 같아 설명을 건너뛴다.
한식을 먹고 싶어 밴프 다운타운에 있는 <서울옥>을 갔는데, 내부도 깔끔하고 테이블이 30개쯤 있는 제법 큰 곳이었다. 미식가인 장영숙의 추천으로 꼬리곰탕을 시켰는데, 국물이 기가 막혔다. $20에 앨버타 소고기 꼬리를 먹을 수 있는 의외로 가성비도 좋은 곳이다.
광활한 대자연을 오감으로 경험한 이번 산행은 15명의 <아리랑산악회> 멤버들과 함께 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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